게임은 아직까지 주류 매체가 아니다. 금융회사나 공기업에 지원하는 이가 이력서 취미란을 게임으로 채우는 것은 2015년 현재 기준으로 아직까지는 용기있는 행위다. 어설프게 지능계발이라는 표어를 붙여 가며 스스로를 변호해야 했던 80년대 오락실 시절부터 폐인집합소의 오명을 들어쓰고 있는 PC방까지, 그리고 그나마도 싫어 집에서 게임하는 이들에게 따라오는 히키코모리라는 이미지까지 게임과 게임 환경에 대한 사회의 이해는 늘 부정적이었다.

게이머들은 그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게임 좀 그만하라는 연인과의 말다툼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쏟아내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콘텐츠들의 댓글란에서 게이머들은 게임의 위상을 잡기 위해 싸우고 주장하고 떠들어 왔다. 그리고 이런 말과 글은 조금씩 축적되면서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웹진과 커뮤니티의 설립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에는 많은 언명이 포함된다. 게임은 예술의 일종이라는 아직까지도 여러모로 논란을 부르는 주제가 대표적이고, 그밖에도 게임만이 갖는 다른 매체와의 차별성을 강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다. 글을 쓰는 나 또한 게이머의 한 사람이고, 길지 않은 연재 속에서 게임만의 특이점을 강조해 왔다. 그중 가장 여러 모로 자주 쓰이는 개념은 게임의 자유도라는 개념이다.

게임에서의 자유도는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면 다른 매체와 달리 사용자의 의지가 보다 자유롭게 콘텐츠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으로 묶을 수 있다. 수용이 아닌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의 매체적 특징이 갖는 근본적인 차별점이다.

게임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좋은 예시가 소설 <삼국지>와 고에이 게임즈의 턴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의 비교다. 게임의 원작이 되는 고전소설 <삼국지>는 실제 일어난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저자의 윤색을 거쳐 고정된 이야기를 갖는다. 반면 게임 <삼국지 시리즈>는 실제 인물과 배경을 가져다 쓰되, 플레이어가 군웅할거 시대의 한 인물이 되어 천하통일을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을 제시한다. 원작소설에서 관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유비의 충신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조조를 플레이하며 관우를 선봉장으로 세울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제갈량과 사마의를 모두 신하로 부릴 수도 있다. 소설 <삼국지> 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만한 드림팀의 구성도 가능하고, 소설의 결과와 다르게 뜬금없이 지방군주 엄백호가 천하를 통일하는 장면도 그려낼 수 있다.

▲ KOEI의 삼국지 시리즈 최신작인 <삼국지 12>. 국내 정발이 되지 않아 일본 공식 홈페이지의 스크린샷이다. 시리즈의 명성과 걸맞지 않게 혹평을 받은 최신작.

다른 매체에서는 그려내기 힘든 이러한 자유로움은 게임의 특징이자 매력임이 분명하다. 나 또한 게임을 접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게임만의 매력을 설명할 때 이 자유로움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자유도라는 단어로 이 생각을 설명하려 해 보면,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게임의 자유도에 대해 열정을 튀기며 게임 초심자에게 설명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아 정말 게임은 자유로움이 구현된 장르구나!’인 경우는 기억나지 않는 수준이다. ‘정말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을 자유도라고 부르는 게 잘 맞는 설명인 걸까?’라는 의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이 자문에 대한 설명과 탐구이다.

자유도는 정말 자유롭다는 단순한 의미가 전부일까

딱딱하게 자유라는 단어의 원론적 의미를 파헤칠 필요는 없다. 높은 자유도로 큰 인기와 칭송을 얻은 대작 게임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2011)을 통해 질문에 답해 보자.

2011년 GOTY(Game Of The Year) 1위에 빛나는 롤플레잉게임 <스카이림>은 놀라운 수준의 자유도 구현으로 이름높은 게임이다. 바이킹을 모델로 한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대륙 북반부인 스카이림 지역에서 벌어지는 제국 중심과 변방의 대립, 원시 용과의 갈등 등이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풀려 나온다. 그런데 이야기를 푸는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다.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의 인게임 스크린샷. 높은 자유도로도 유명하지만, 화려한 그래픽도 빠지지 않는 수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게임 내 정치상황에 대한 플레이어의 선택과 개입이다. 플레이어는 스카이림 지역에서 대립하는 두 세력인 제국군과 스톰클록 군으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는데, 어디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스토리와 배경 도시가 변화한다. 그리고 이 선택에서 게임은 어느 한쪽에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두 세력의 갈등은 시로딜 제국이라는 거대 제국의 변방인 스카이림의 지역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데, 자부심 강한 노르드족의 스톰클록 군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원하는 제국군이 자신들 고유의 문화를 억압하는 것에 부당함을 느끼고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노르드 고유민족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다. 반면 제국군은 당연히 스톰클록 군의 이러한 저항을 반란으로 취급하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스카이림에 등장한 상태다. 어느쪽도 각자의 명분이 살아 있기에 선택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에 달린다. 게다가 두 세력 어디도 선택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다.

서사에서의 선택만이 이처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스카이림>의 자유도는 서사 뿐이 아니라 게임 내 여러 상호작용에서도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도둑 길드의 수장이 어느 마을 촌장의 결혼반지를 훔쳐와야 네가 원하는 물건을 주겠다고 이야기하면, 그 해결 방법이 꼭 가서 훔쳐오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도둑을 설득해서 그냥 받거나, 돈주고 사거나, 아니면 도둑을 죽이고 빼앗는 방법도 있다. 밤에 몰래 마을 촌장의 집에서 직접 절도해도 상관없고 촌장을 죽여도 되며, 촌장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잠시 반지를 빌리는 법도 가능하다. 전적으로 게이머의 선택이다.

단순한 아이템과 오브젝트 또한 자유도 구현의 대상이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가방 안에 사과가 있으면 보통 먹어서 체력을 회복하는 용도로만 쓰이는데, 스카이림에서는 활용도가 폭넓다. 가방 안의 사과에 독을 발라서 길에 던져 놓으면, 지나가던 마을 주민이나 병사가 사과를 주워 먹고 죽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개의치 않는 시나리오 상의 자유로움, 퀘스트의 수행에 있어 수단을 제한하지 않는 방법론상의 자유로움, 아이템 하나 마을주민 하나도 일회성 용도로 구현되지 않은 상호작용의 가변성은 <스카이림>을 역대 최고의 RPG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플레이어는 <스카이림> 안에서 자유로운가? 그 자유로움은 정말 자유로움 그 자체로 비롯되는 즐거움인가?

자유도라는 이름 안에 숨어있는 다양성

시나리오상의 선택지가 다양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아니다. 스톰클록 군과 제국군 중 하나를 선택하여 도울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플레이어가 제국군의 황제가 될 수는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가 <스카이림>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도는 자유도라기보다는 선택지의 확장에 가깝다. 베스킨라빈스 31의 매장 진열 아이스크림에 신메뉴가 추가되었다고 해서 선택의 자유가 폭넓어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방법론에서의 자유도 또한 자유도라는 단어보다는 다양성이 더 적합해 보인다. 아이템의 다양성도 결국 사과로 사과파이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러나 <스카이림>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단점 지적이 결코 아니다. 다양성과 자유도는 다른 개념이라는 이야기다. 다양성은 선택지의 1/n에서 n값을 키우는 것이고, 자유도는 n값을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게임의 자유도를 이야기할 때 큰 납득을 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비게이머들 또한 다양성과 자유도의 차이를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이림>의 독사과 이야기를 신나게 비게이머에게 해 주면 이런 반응이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사과로 누구 뒷통수라도 맞추면 화내는 캐릭터도 나와?”

그러면 시나리오가 중심이 되지 않는 게임은 어떨까? 도구와 환경만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플레이어의 역량에 맡기는 이른바 샌드박스(sandbox. 미국 등지에서 뒷마당에 놀이터로 설치하는 모래를 채운 상자에서 기인함) 게임의 대표주자, <마인크래프트>(2011)를 살펴보자.

특별한 스토리 없이 주인공 캐릭터와 땅, 돌, 광석 등 마치 레고 블록과 같은 요소들과 이 요소들을 가공할 기술 등만이 주어진 게임 <마인크래프트>는 별도의 목표라고 부를 만한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게임은 그저 플레이어가 자원들을 모아 짓고 싶은 건물을 짓거나 무한정 땅을 파들어가거나 하는 데서 재미를 준다. 자유도라는 관점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스카이림>에 비해 양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 *<마인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들이 직접 구현한 <에반게리온>의 사도 침공 장면. 하나하나의 블록을 플레이어들이 직접 쌓아올린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beforu.egloos.com/4531470#none 에서 더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건축자는 <마비노기>의 제작팀인 Devcat Studio.

*<마인크래프트>의 자유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영상. 게임 내 제공되는 논리 블록을 이용해 아예 8비트 CPU를 게임 안에서 만들어 버렸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32비트 CPU를 만든 사람도 있고, 아예 LCD모니터를 구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크래프트>가 높은 자유도를 가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게임만의 차별적 특이점을 표현하기에 효과적인 설명은 아니다. ‘게임 따위’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누군가는 또 자원 블록이 네모 모양만 있고 동그랗게 못 만드는데 무슨 자유도가 높느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인크래프트>가 폭넓은 선택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합당한가? 아니다. 폭넓은 다양성은 오히려 <스카이림>의 경우처럼 선택의 가짓수가 제한적인 경우에는 유의미하겠으나,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수준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경우를 설명하기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게임에서 느끼는, 다양하면서도 자유로운 그 느낌은 말 그대로 사실 두 가지 개념이 섞여있는 상태다. 일반적인 생각 이상의 선택지를 구현하여 표현해 낸 다양성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 자유도라고 우리가 부르는 개념은 굳이 규정짓자면 ‘상상의 질료성’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자유도의 두번째 요소: 상상의 질료성

상상의 질료성이란, 플레이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얼마나 제한없이 넓힐 수 있는가로 판단할 수 있는 척도다. 다양성이 선택지의 개수를 2지선다에서 4지선다로 늘리는 방식이라면, 상상의 질료성은 플레이어가 직접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의 단초를 게임 안에서 제시함으로써 플레이에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더 많이 투여할 수 있게 해주는 재료와 같은 역할을 가리키는 속성이다.

<마인크래프트>에서 이 상상의 질료성은 잘 드러나는데, 게임 내에 구현된 철과 암석을 상징하는 정육면체 블록 하나 하나가 상징으로서 실제 플레이어의 심상에 존재하는 ‘철 광석’과 ‘암석 덩어리’와 각각 이어져 있다. 그냥 모니터 안에 그려진 네모난 검은박스 하나가 철이고 암석인 것이다. 플레이어가 암석 블록을 캐어 땅 위에 높게 쌓는 행위는 전산상으로는 동일한 좌표 위에 암석 오브젝트를 높이 축으로 겹칠 뿐이지만, 이 행위를 직접 하는 플레이어에게는 탑을 쌓는 행위가 된다.

단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만이라면 그냥 상상력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만, 상상의 질료성은 그냥 상상력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서두에 언급했던, 소설 <삼국지>와 게임 <삼국지 시리즈>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상상력에 크게 기반하는 문자매체인 책과 게임의 비교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삼국지>의 적벽 대전을 그린다면, 문장을 읽어가는 독자의 마음 속에는 장강의 넓은 강폭 북편에 진을 친 조조의 백만 대군과 동남풍을 기다리며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리며 화공을 준비하는 제갈량과 주유를 상상할 수 있다. 같은 장면에서 게임 <삼국지> 는 아래 그림과 같은 아이콘으로 구현된 병사와 수치화된 병사 수, 장군들의 이름과 배치를 시각화하여 보여 준다. 그리고 소설의 상상력이 조조가 화공에 의해 패하는 이미 정해진 서사에 대해 심상을 그려나가는 형태인 반면, 게임에서의 상상력은 직접 병력을 조작하고 전략을 수정하면서 직접 서사 자체를 상상해 나가는 형태다. 서사마저도 고정되지 않고 플레이어의 상상에 맡기는 형태가 게임의 상상력이고, 그 서사를 조립해 나가기 위한 상상력의 단초로 제공되는 것이 룰과 오브젝트라는 게임의 기본 요소들이다. 바둑으로 치면 바둑 두는 법과 흑백의 바둑돌이 그것이고, <리그오브레전드>라면 ‘소환사의 협곡’ 지형과 승리조건이 룰, 챔피언과 맵오브젝트가 오브젝트일 것이다.

▲KOEI의 <삼국지 11> 전투장면. 아이콘으로 구현된 각 장수들의 부대와 수치로 표현한 병력상태를 추상화된 지형에 붙여 전장 상황을 표현한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상상의 질료성은 사실 단어만큼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게임 매체의 등장 이전부터 상상의 질료성은 아이들의 장난감에 이미 녹아 있는 개념이었다. 초등학교 정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군인 모형 장난감이나 미니어처 게임에 사용되는 고가의 주석 미니어처 인형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으로, 단순히 머릿속에서 전쟁놀이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질 수 있고 형태를 볼 수 있는 상상의 질료로서 기능하는 장난감을 통해 놀이는 더욱 생동감을 얻고, 서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장난감 사용자는 장난감이라는 질료를 기반으로 서사에만 집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니어처 게임의 대표작 <Warhammer 40,000>의 플레이 시연 영상. 정교하게 제작된 미니어처 인형들로 테이블 위에서 벌이는 게임이다. 국내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니아층이 존재하며, 미니어처의 정교함에서 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가 자유도라고 부르며 게임을 평가하고 게임만의 차별점으로 꼽는 개념은 사실 다양성과 상상의 질료성이라는 두 가지 속성이 결합되어 나타난 복합 현상이다. 모든 컴퓨터 게임은 기본적으로 전산 프로그램에 의해 구현되며, 프로그램은 당연히 프로그래머의 의도에 의해 인위적으로 ‘설계된’ 산물이다. 따라서 의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자유로움은 당연히 의도된, 자유롭다고 느낄 수 있는 구현의 결과물일 수 밖에 없다. 이 의도된 자유로움을 구현하는 두 가지 방법이 바로 선택지 확장을 통한 다양성 제시와, 플레이어의 상상력에 서사 자체를 포함한 많은 것을 맡기는 상상의 질료성 구현이다. 넓어진 선택지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재현력을 가진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상상의 질료성 구현을 통해 다른 매체가 표현하지 못하는 게임만의 독특한 표현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추상에서 구체로, 구체에서 추상으로 - 자유도를 위한 두 속성의 변주

다양성과 상상의 질료성이라는 두 속성은 함께 자유도라는 특장점을 만들어 내지만, 사실은 대단히 상반된 성격을 지닌 속성이다. 전자는 구체적일수록 빛을 발하고, 후자는 추상적일수록 의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게임에서 자유도라는 이름은 이 둘의 적절한 조화 또는 둘 중 하나의 발현을 통해 드러난다.

아래 표는 상상의 질료성이 두드러지는 순서대로 여러 장르의 게임들을 나열한 것이다.

▲ 게임북=책으로 되어 있으나 스토리 분기로 선택지에서 ‘A선택시 X페이지로 이동’ 등이 포함된 책. 비주얼노벨=일본에서 주로 제작되는 게임으로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선택지가 없이 정해진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장르.

가장 우측일수록 상상의 질료성이 높으며, 이는 각 장르가 가지는 추상성과 비례 관계다. 게임북부터 롤플레잉까지는 거의 서사가 고정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갈수록 정해진 서사가 없이 플레이어의 상상에 의해 플레이가 진행됨을 볼 수 있다.

상상의 질료성을 구현하는 방법은 결국 훌륭한 추상화다. 추상(推象, abstraction)을 통해 배제된 상의 영역을 플레이어의 상상력에 맡겨 버림으로써 플레이어의 상상력은 보다 넓은 놀이공간을 얻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자유도는 상상의 질료성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상속의 자유로움을 매체의 자유로움으로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인데, 이 상상 속이라는 극도로 추상화된 영역을 다시 현실로 잡아당겨 오는 것이 다양성의 구현이다. 이를테면 상상에 최소한의 뼈대를 잡는 작업이다.

게임의 기본은 룰에 의한 상호작용이다. 앞서 상상의 질료성을 순서대로 그린 표에서 최우측에 위치한 레고는 사실 게임이 아닌데, 그건 레고 놀이에는 룰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그 룰의 현실적 부과라는 한도 안에서 보장하는 자유로움이다. 그리고 이는 상상의 질료성과 달리 구체적일수록 자유로워진다. 갑자기 게임 안에서 만난 적을 싸워 죽여야 하는 단순경로와 설득, 뇌물, 협박, 회피 등의 선택지가 부여된 다양한 경로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게임 설계상에서 좀더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된다.

게임에서의 자유도란 이 두 가지 개념, 구체적일수록 자유로운 다양성과 추상적일수록 자유로운 상상의 질료성의 조합에서 빚어지는 결과물이다. 자유로움이라는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가진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스카이림>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한 것인데, 하나는 발생할 수 있는 상식적인 확률을 넘어서는 경우의 수를 배제(추상)하고, 발생 가능한 상황들을 플레이어가 구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구현한 경우다. 이를 통해 무한대의 가짓수를 가진 자유로움은 '현실적으로 개발 가능한' 가짓수의 구현으로도 재현이 가능해진다. 반면 <마인크래프트> 는 아예 서사성을 배제하고 추상을 통한 상상의 질료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통해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구현했다.

(단 여기서 언급하고 가야 하는 것은 물리적, 경제적 한계다. 다양성의 구현은 게임에서는 다 돈이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게임 내 오브젝트에 현실과 동일한 수준의 물리적 속성을 부여하면 시스템에 부하가 걸리고, 개발 스케줄은 늘어지며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들어간다. 물리적 한계가 보다 명확한 인디 게임의 경우에는 그래서 다양성보다는 상상의 질료성에 기대게 되며, 블록버스터 류의 게임에서는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다양성을 선보이는 전략을 취하곤 한다.)

자유도, 게임을 대변하는 개념이나 게임의 전부는 아닌

자유도는 게임을 말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 의미있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게임의 전부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요소이다. 서사의 전개에 있어 단선적인 흐름을 고집하는 일본형 롤플레잉 게임들은 자유도라는 관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잘 못만든 게임은 아니듯이 말이다. 다만 다양성과 상상의 질료성이 어우러져 서사까지도 플레이어의 상상에 맡길 수 있는 콘텐츠는 게임이 아니면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며, 게임을 대표할 수 있는 차별점으로서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다만 자유도라는 개념이 최근 출시되는 몇몇 게임에서 단지 할게 많은 게임 정도로만 이야기되는 것은 자유도가 발생하는 본질인 인간의 상상력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우려가 있다.

<Play the Game> 다시 보기

①편: 비욘드 어스,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가

②편: MMORPG의 장르적 특성과 워크래프트의 세계관 그리고 WOW

③편: 게임 속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④편: 게임에도 정당해산 따위는 없다

⑤편:스타크래프트, 윙코맨더3...우주를 다룬 최고의 게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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