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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도 정당해산 따위는 없다[Play the Game #04] 민주주의의 ‘Democracy 3’, 독재정치의 ‘Tropico’
Redder / 게이머 | 승인 2014.12.26 09:15

게임 칼럼에서 무슨 정치 이야기냐고 갸웃거릴 사람들이 많겠지만, 게임은 다른 어느 매체보다도 정치가 자주 등장하는 매체다. 매체와 수용자의 상호작용이라는 게임의 가장 큰 특징부터가 정치가 가지고 있는 권력주체간의 상호작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정치는 몇 가지 테마로 구분이 가능한데, 첫 번째가 정치 자체를 게임 요소로 들여온 경우, 두 번째는 게임 스토리 진행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서의 정치적 배경, 세 번째가 멀티플레이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이른바 ‘정치질’의 경우이다.

각각의 경우에서 정치라는 단어가 갖는 개념은 조금씩 다른데, 특히 앞의 두 요소가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라면, 마지막 세 번째의 멀티플레이어 간 정치는 보다 확장된 의미에서의 정치이다. 오늘은 그중 첫 번째 의미, 일반적인 정치의 개념이 게임 내에서 어떻게 소화되는지를 다뤄보고자 한다. 후자의 의미는 후일 온라인 게임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의 입장에 대해 다룰 때 깊게 다뤄질 것이다.

정치가 게임의 요소가 될 수 있을까?
선진국 민주주의 시뮬레이션 <Democracy 3>

정치가 가지고 있는 경쟁적 속성과 복잡한 결정요소들을 생각해 보면 정치의 동작 구조 그대로를 전산 로직으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게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정치를 게임 안에 넣으려는 시도들은 게임 역사 안에서 꽤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다. 그 중에서도 현대 정당정치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수준의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는데, 2013년 발매된 인디 게임인 <Democracy 3>다.

제목부터가 대놓고 민주주의 3인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정권을 쥔 여당의 수장이 되어,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통해 지지도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다가오는 다음 선거에서 재선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플레이한다. 이를 위해 플레이어에게는 국정 운영에 필요한 정책들을 통제할 수 있는 거대한 보드판이 주어지고, 플레이어는 이 판 안에서 자신의 자원을 총동원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말그대로 정당민주주의 수권정당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Democracy 3’의 게임 플레이 화면. 중앙의 네모 박스는 성향별 유권자들의 지지도 현황이고, 주변의 동그라미들은 국정 운영에 이용되는 각각의 정책들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Democracy 3>를 처음 접해보는 플레이어들은 저 메인화면만으로도 ‘헉’ 소리를 내게 마련인데, 일단 현실 정치에 근접할 정도로 복잡한 정책이 주는 압박감이 심각하다. 동그란 아이콘으로 표기된 정책들은 각기 재정, 복지, 경제, 공공서비스 등의 카테고리 안에서 각각의 영향력을 갖고, 이 영향력은 궁극적으로 화면 가운데에 정리된 각 성향별 유권자들의 지지도에 영향을 끼친다.

   
▲정책 영향력 화면 예시. 그나마 단순한 법률 카테고리의 CCTV 정책의 경우, 폭력범죄/일반범죄에 감소 영향(붉은 화살표)을 주지만, 궁극적으로 자유주의적 유권자들의 지지도 감소에도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보수주의자의 지지도를 얻기에는 최적의 정책임이 초록 화살표로 확인된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심각하게 복잡한 GDP 항목의 영향력 그래프. 환율, 유가, 복지, 기술, 범죄 등 제반 영향력들에 모두 영향이 오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GDP는 자본주의자들의 지지도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정치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체감할 수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지지층에 대한 탄압에 가까운 포기를 해야 할 경우도 발생한다. 무서운 것은 그러다보면 반발이 발생하는데, 극단적인 경우 암살자가 플레이어를 암살하러 등장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사회복지 투자는 자본주의자들의 불만을 불러오고, 일정 수준 이상의 불만론자가 발생하면 암살 시도가 발생한다. 역의 경우 최저임금을 몇 년간 강하게 제한하고 투자 위주의 정책을 펴면 바로 사회주의자 진영에서 신호가 발생한다. 그리고 혹여 암살당하게 되면 바로 게임 오버.

특별한 게임성 높은 로직이나 스토리 없이 단지 주요 선진국들의 정치환경 세팅과 정책간의 영향력만으로도 게임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Democracy 3>의 사례는 정치가 이미 게임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Democracy 3>안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은 표면적으로는 플레이어와 제공된 로직 간의 상호작용이지만, 그 모사의 대상인 국가는 각각의 정치적 입장을 가진 세력들이 정책과 지지도를 기반으로 한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기존에 작동하고 있는 상호작용 모델에 플레이어의 개입가능 요소를 부여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게임성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 소자본 인디 게임인 <Democracy 3> 가 보여준 놀라운 부분이다.

정치가 민주주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남미 독재에 대한 풍자, Tropico 시리즈

<Democracy 3>는 정치를 다룬 게임이지만, 정치가 민주주의와 동의어는 아니다. <Democracy 3>는 사실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전제를 깔고 있어, 등장하는 국가들이 영국, 미국, 북유럽 등 소위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국한되어 있다. 그 밖의 정치를 맛보고 싶다면 코믹한 분위기의 패러디로 이름을 날리는 <Tropico> 시리즈가 적당하다.

* <Tropico 4>의 메인 테마 OST. 중남미풍이 물씬 풍기는 테마 음악이 게임보다 더 일반인들에겐 유명하다.

앞서 언급한 <Democracy 3>가 유머를 쫙 뺀 담백한 시뮬레이션이라면, <Tropico> 시리즈는 개그와 패러디, 유쾌함으로 중남미 독재국가들을 풍자하는 정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독재자 ‘엘 프레지덴떼’가 되어 중남미 어느 섬을 통치하며 국민들을 부양하고 산업을 키워 미국, 소련, 중국, EU 등 세계 열강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 놓아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참고로, 서브 미션으로는 독재자가 스위스 은행에 개설한 비밀 계좌에 얼마를 채울 수 있는지가 등장하여 독재자의 앞뒷면을 모두 그려낸 작품이다.

게임은 대놓고 중남미 독재자들을 우스꽝스러운 아이콘으로 등장시킨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에는 칠레의 피노체트, 쿠바의 카스트로, 아이티의 뒤발리에, 파나마의 노리에가 등이 등장한다. 각 캐릭터는 성장 배경과 집권 동기들을 가지고 있고, 이는 게임 내 능력치에 영향력을 준다. 이도저도 아니다 싶으면 플레이어가 직접 자신만의 독재자 캐릭터를 생성할 수 있는데, 구두쇠, 알콜중독자, 살인광 등의 능력치를 부여해 볼 수 있다.

   
▲‘Tropico 4’의 캐릭터 선택화면 중 카스트로와 피노체트의 캐릭터 화면. 왼쪽 명단에는 중남미의 유명 독재자들이 잔뜩 리스팅되어 있다. 나름 설득력있는 초상화와 캐릭터에 주목해 볼 것.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Tropico>는 비록 개그물다운 유머로 한껏 들어차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 중남미 국가의 문제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과도한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게 되면 미국으로부터 무역 제재가 들어오며, 미국과의 거래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련으로부터의 압박과 뇌물 요구가 커진다. 눈치껏 미소 양국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며, 그 외의 EU나 중국 등과의 세력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국제정치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Tropico> 시리즈는 <Democracy 3>와 마찬가지로 국내 국민의 정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사회주의자와 자본주의자 간의 갈등, 독실한 카톨릭 신도가 대부분인 중남미 제도의 현실을 반영한 카톨릭 사제단의 압박 등이 게임 안에 강하게 구현되어 있어, 시가 공장 만들어서 돈벌겠다고 신나게 돌리면 바로 환경주의자들이 일침을 가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특히 불만분자가 늘어날 경우 <Democracy 3>의 선진국과는 다르게 바로 숲 속에 게릴라 집단이 출현하기 때문에 더더욱 불만 관리가 중요한 게임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과 불만관리를 다루는 방식이 현실에 기반한 충만한 패러디로 장식되어 있어 게임으로서의 가벼운 재미는 <Democracy 3>보다 훨씬 뛰어나다. 라디오 방송국을 세워도 방송 내용을 자신에 대한 찬양으로만 도배할 수 있고, 신문사는 일부러 야당지 비슷한 기관지를 가짜로 만들어 진정한 비판을 막아버릴 수도 있다. 새 건물을 지을 때마다 건축비의 일부를 자신의 스위스은행 비밀 계좌로 빼돌릴 수 있는 기능은 풍자의 백미다.

   
▲‘Tropico 4’의 정책화면. 야당 지도자에게 뇌물 먹이기 쯤은 기본이고, 추방과 독점방송 등이 세밀하게 구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정치를 직접 다루지 않는 게임에서도 정치는 게임 내 배경과 스토리 설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서사에 개입하는 과정이 발생하고, 이 서사가 가급적 거대할수록 게임 스토리가 플레이어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게 마련인데,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스토리와 세계관을 포함한 롤플레잉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행위가 게임 내 역사에서 중대한 향방을 결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판다리아의 안개> 에서는 새롭게 호드 대족장으로 취임한 오크 가로쉬 헬스크림이 오크 위주의 인종차별 정책을 펼치고 과도한 호전성으로 인해 호드 부족 내의 다른 종족인 트롤, 타우렌, 고블린 등으로부터 불신임받는 내용이 등장한다. 결국 게임 후반에 가로쉬 헬스크림은 타 종족 연합세력에 의한 쿠데타를 맞이하여 권좌에서 끌려내려온다. <스타크래프트> 에서는 지구인 중심의 테란 연합이 악튜러스 멩스크라는 황제의 등극으로 인해 독재 체제로 전환하자, 이에 저항하기 위한 레이너 특공대가 등장하면서 게임의 중심 시나리오를 이끌어 나간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정치를 다루는 모든 게임에서 적대자를 다루는 방식이다. 선진국 중심의 정당정치 시뮬레이션 게임 <Democracy 3>는 자신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없애버린다거나 하는 기능은 구현되어 있지 않다. 독재 시뮬레이션 <Tropico>에서는 불만분자들을 미국 해변으로 추방하는 기능이 있지만, 기능 이름이 ‘플로리다로 꺼져!’인 것으로 보면 사실상의 풍자적 기능이다. 아마도 이념이 다른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기능이 게임 안에 구현된다면, <Democracy 3>보다는 <Tropico>에 구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Redder / 게이머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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