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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어스,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가[Play the Game] SF 탈주 서사를 다루는 문명 시리즈 최신작, 비욘드 어스
Redder / 게이머 | 승인 2014.11.14 10:03

세계 최고의 인기 게임 시리즈, SF의 탈을 쓰고 돌아오다

서구 문명권에서는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박차고 나가는 이른바 대탈주를 다루는 서사들이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 동방의 신비국가 프레스터 존 설화와 같은 신화 전승을 차치하고서라도 미국 서부 영화나 스티븐슨의 ‘보물섬’ 같은 모험 소설류,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각종 SF물에서 볼 수 있는 외행성계로의 진출 등 서사의 시공간은 다양하나 그 핵심에 존재하는 현재를 벗어난 새로운 시공간으로의 진출이라는 대탈주의 덕목은 동일하게 존재한다.

대탈주는 4대문명의 발상지라 불리는 비옥한 농경지를 보유했던 문화권에서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주제다. 어지간하면 외부보다 현재가 낫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문화권과 달리 유럽-북미권은 문화권의 성립 자체부터가 위기에 의한 대규모 이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프랑크족 대이동으로 형성된 프랑크 문화권, 청교도 박해로 시작된 메이플라워호의 미국 진출, 강한 장자상속제 하에서 물려받을 것이 없었던 막내들이 대부분이었던 스페인 콩키스타도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 유럽-북미 문화권에서는 타 문화권보다 외부로의 대탈주에 대한 서사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SF의 영역으로 대탈주가 넘어가면 클리셰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지구 멸망이다. 대탈주의 기본인 현재 세계의 멸망은 SF에서 지구 멸망으로 드러나는데, 최근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영화 ‘인터스텔라’도 서사의 배경을 지구 멸망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게임 또한 멸망을 눈앞에 둔 지구인들의 외우주 진출을 다룬다. 2014년 10월 22일 발매된 파이락시스의 문명 프랜차이즈 신작, <비욘드 어스>다.

세계 3대 막장제조 게임의 본좌로 불리며, 게이머들의 시간을 약탈해가는 시간약탈자로서의 위용도 뽐내는 인기게임인 <문명> 시리즈의 최신작, <비욘드 어스>는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장점들을 그래도 유지한 채로 다루는 주제를 기존의 역사에서 미래로 돌렸다.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미래의 어느 날, 인류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현대문명의 몰락을 맞이하게 되며, 몰락 이후 새롭게 형성된 국가공동체들은 남은 여력을 쏟아부어 새로 발견된 외우주 어딘가의 거주가능 행성에 자신들의 희망을 건 탐사대를 출발시킨다.

<비욘드 어스>는 그렇게 시작한 탐사대가 새 행성에 도착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새로운 행성은 인류가 거주할 수는 있지만 여기저기 위험한 독기들이 넘쳐나고, 이미 존재하는 외계 생명체들의 위협이 상존하는, 아직 안전하지 못한 곳이다. 게다가 플레이어의 탐사대는 인류의 대표가 아닌 특정 공동체의 대표로, 행성에 비슷한 시기에 도착한 다른 문명권의 탐사대와 영토 분쟁과 자원 경쟁까지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거주지와 영토를 확장해 새로운 자원을 얻고, 일할 수 있는 인구를 늘려 생산력을 증대하고, 새 행성에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난관을 극복함으로써 플레이어는 멸망 직전의 인류에게 새로운 구원을 내려주는 것이 게임의 승리 목표이다.

<비욘드 어스>가 주목한 탈주 서사의 개척/정착 과정

<비욘드 어스>는 대탈주 서사의 구성 요소 중에서도 마지막 단계인 개척과 정착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탈주 서사는 크게 세 가지의 갈등 단계를 거치는데, 고통-탈주-정착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집트에서 박해받는 시절이 ‘고통’이고, 홍해를 갈라 건너서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이 ‘탈주’다. 그리고 가나안에서 다른 부족들과 경합을 벌여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 ‘정착’인데, <비욘드 어스>는 출애굽기가 묘사하는 정착의 과정과 유사한 게임 전개를 보인다. 함께 행성에 도착한 다른 문명의 탐사대와 갈등을 겪고, 성경의 팔레스타인 원주민과 같은 역할은 외계 생명체가 맡는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탈주 단계에서 벌어지는 탐색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같은 주제임에도 그 세부 묘사의 지점이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이 개척과 정착의 단계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도전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 구성되는 갈등 단계인데, 게임 장르의 구분에서 이 부분이 두드러지는 게임을 4X라고 부른다. 4X는 eXplore(탐험), eXpand(확장), eXploit(개척), eXterminate(섬멸)의 약자를 조합한 개념으로, 미지의 세계에 떨어진 주인공이 마주치는 환경에서의 도전을 그린다. 1993년작 <마스터 오브 오리온>에서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이후 많은 유사 게임에서 사용되는데, 탈주의 과정 중에서도 가장 무작위 요소가 빈번하고 매 플레이마다 다른 상황이 도출될 수 있어 가장 게임의 재미가 두드러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미래 인류의 길을 제시하는 세 가지 지향성의 갈등

<비욘드 어스>는 4X 장르의 전형성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성을 잃지 않는데, 그 독창성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미래 인류에 대학 철학적 질문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이 질문은 요약하자면 ‘미래의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가?’이다. 지구에서 진화해 온 인류가 새 행성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행성이든 인류든 변화가 필요한데, <비욘드 어스>는 변화의 방향에 대해 세 가지 갈랫길을 플레이어에게 제시한다. 게임 내에서 ‘지향성’이라고 불리는 이 세 가지는 각각 순수(purity), 조화(harmony), 우월(supremarcy)이다.

순수론은 새 행성을 지구인에 맞게 변화시키고, 최종적으로 개척된 행성에 구 지구 거주인들을 불러들여 정착하는 것이 목표인 철학이다. 조화론은 이주해 온 인간이 행성에 맞게 변화해야 하며,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새 행성의 생명체와 환경에 인간이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하여 행성 안에 존재하는 거대 지성체와 교감을 이루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우월론은 인간의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여 새 행성 하나만이 아니라 우주 어디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기계인간으로서의 변화가 인간 진화의 최종점이라고 생각하며, 궁극적으로 신체 기계화를 완료한 탐사대가 기계군단을 지구로 보내 남은 인류들도 모두 기계화시키는 형태의 엔딩을 추구한다.

   
▲순수론을 선택한 플레이어에게 조화론자인 프랑코 이베리아의 인공지능이 던지는 경고.

재미있는 것은 이 세 가지 입장이 게임 내에서 중요한 갈등의 축이 된다는 점이다. 게임의 참가자인 플레이어와 인공지능들은 행성 개척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결국 세 가지 지향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 선택이 각 플레이어 간의 상호 협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조화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순수론자를 거부하는데, 애초에 지구가 멸망하게 된 계기가 순수론자들의 과도한 개발과 기술맹신에 의한 행성 파괴였다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수론자들의 행성 개척은 결국 또 다시 지구와 같은 파멸의 길로 가는 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순수론자들은 조화론자들이 벌이는 외계종과의 유전자 교배와 같은 행위가 결국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포기한 새로운 종의 출현이며, 인류가 외행성에 탐사대를 보낸 목적인 인류 구원과 거리가 먼 결과라고 비난한다. 한편 우월론자는 순수, 조화 둘다 모두 궁극적인 형태의 완성형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나머지 두 입장은 우월론자를 그냥 기계덩어리로 취급한다.

각 탐사대의 입장 차이는 실제 게임 내에서 중요한 갈등 요소다. 서로 오랫동안 협력과 교류를 이어온 문명권일지라도 이 미래철학의 지향성이 갈라서면 오래지 않아 상호 비난이 오고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최종적인 목표인 게임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지향성별로 주어진 승리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데, 다른 지향성의 승리목표 달성이 곧 패배이기에 이를 막기 위한 군사적, 경제적 총력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기존의 문명 시리즈에서도 이렇게 설계된 갈등유발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명 4>의 경우 과학기술을 개발하다 보면 종교가 창시되는데, 국가별로 믿는 종교에 따라 외교관계가 성립되며 대략 중세 시기에 접어들면 각 종교별 교황청이 설립되면서 종교전쟁과 같은 양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구 시리즈의 종교와 달리 <비욘드 어스>의 지향성은 보다 게임의 전개에 깊게 관여한다. 예를 들어 조화론 지향성을 선택한 플레이어는 외계 생명체를 가축으로 활용해 식량자원을 추가로 확보하는 기술을 얻을 수 있는데, 과거 역사를 다루는 문명 구 시리즈의 경우 특정 종교가 별도의 기술을 독보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경우는 없다. (실제 역사도 그러하지만.)

<비욘드 어스>는 이처럼 미래 개척에 대한 과감한 상상력으로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재미를 구현해 냈지만, 그것이 게임의 전부는 아니다. <문명> 시리즈가 최고의 게임으로 꼽히는 이유는 여전히 <비욘드 어스> 안에 살아 있으며, SF콘텐츠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임이 지난 20여년의 <문명> 역사에서 증명된 바 있다. 그래서 ‘문명 시리즈는 왜 재미있는가?’, <문명> 프랜차이즈 전반에 대한 질문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문명> 시리즈의 재미요소 1: 시뮬레이션 게임의 기초, 추상화

1991년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인 <문명 1>은 실제 시간으로 5천년이 넘어가는 인류의 역사를 한 게임 안에서 구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찬사를 받았다. 게이머는 나무 몽둥이를 든 전사 하나와 인구 1짜리 촌락 하나로 시작해서 핵무기를 만들고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시대까지의 변화를 자신의 의사결정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순수 플레이타임 기준 약 10여 시간, 게임을 저장하고 쉬면서 대략 1박2일의 시간 동안 인류 문명사 전체를 겪어보는 과정이 전통적으로 <문명> 시리즈가 게이머에게 주는 재미의 핵심이었다.

5천년을 10여시간 안에 구현하면서도 그 정수를 살려 몰입감을 만들기 위해서 <문명> 시리즈는 과감한 도식화와 추상을 적용했다. 현실 세계에서 돌아가는 논리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재현하는가가 핵심인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추상은 게임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과도하게 현실요소를 배제하면 바둑, 장기가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면 게이머가 게임이 아닌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명> 시리즈는 실제 역사에서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던 주목할 만한 기술적 발전들을 정리하고, 그 기술들의 연관관계를 일종의 트리(tree) 구조로 배열했다. 문자를 연구한 뒤 수학을 개발할 수 있고, 수학이 완성되면 화폐를 연구할 수 있는 식의 연관구조를 그려냈고, 게임 내에 등장하는 유닛과 그래픽을 해당 기술단계와 연동되도록 구현했다. 기술의 발전과 같은 통시적 요소 뿐 아니라 철과 석유, 대리석과 식량자원 같은 자원 요소들도 최대한 대표성만을 남긴 채 추상화한 아이콘으로 넣었다. 그러면서도 디테일을 놓지 않아 구대륙에서는 식량 자원으로 옥수수가 초기에 등장하지 않고, 석유는 특정 지형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등의 현실적 요소를 반영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의 연구 투자를 통해 게임 내에서 서서히 원시 문명이 단계적으로 진보하는 과정을 현실감있게 접할 수 있었고, 현실의 모든 요소를 컨트롤해야 하는 부담감 대신 상징적인 자원과 요소들을 통제하면서도 문명 전체를 통제한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설득력있는 추상 단계가 문명만의 독특한 게임성을 규정하는 요소가 되었다.

   
▲<문명 5> brave new world의 기술연표. 선행기술이 연구되어야 다음 기술의 연구활용이 가능하다.

<문명> 시리즈의 재미요소 2: 서사가 아닌 서사 구조

설득력있는 추상을 통해 인류의 발전을 모사해 냈지만, <문명>은 거기서 인류 역사를 고스란히 반복시키는 방식이 아닌 객체간의 자연스러운 반응행동을 통한 서사를 선택했다. 똑같은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다룬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와 <콜 오브 듀티 2>는 서사를 다루는 영화와 서사구조를 다루는 게임의 방식 차이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는 주인공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가 겪는 이야기를 사전에 스크립팅해 두고 스크립트대로의 진행을 영상에 담아 전달하고, <콜 오브 듀티 2>의 소련군 미션은 플레이어가 직접 바실리가 되어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주어진 환경에 존재하는 각종 오브젝트들(소련군 병사, 독일군 병사, 엄폐물, 무기 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제시된 스크립트를 수용자가 직접 완성해 나가는 과정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게임 장르가 서사를 다루는 방식 중의 하나로, 서사를 직접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로직(logic)을 통해 제한된 범주를 마련하고, 설정된 장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서사를 만들어 가는 형태이다. 이는 게임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자유도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데, 후에 다른 연재에서 다루겠지만 사실 자유도가 말하는 자유는 자유를 가장한 형태이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설정의 범주를 벗어나는 자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유도가 진짜 자유이던 가상의 것이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의 몰입도는 서사 자체보다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상호작용(interaction)을 전제로 하는 장르이고, 이 상호작용의 기회가 많아지고 의미가 두꺼워질수록 게임으로서의 재미가 상승한다. 반면 서사구조의 규모를 줄이고 상호작용을 제한시키면 게임보다는 인터랙티브 영화, 게임북, 비주얼노벨과 같은 형태에 가까워진다.

문명 시리즈는 플레이어와 동등한 입장에 서 있는 각각의 문명권 리더들에게 인공지능을 부여하고, 게임 내에서 최초 부여된 인공지능 외에 별도의 서사를 진행시키기 위한 강제적 스크립팅(영화로 치면 대본)을 진행하지 않는다. 구현된 객체들의 상호 작용으로만 이루어진 이 서사 구조는 플레이어의 행동, 무작위 요소, 설정되는 값들의 변화 등에 따라 매 실행마다 다른 형태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통해 게이머는 게임을 한번 플레이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른 설정으로 계속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다. 서사 구조를 세팅하는 방식은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의 중독성이 발생하는 원인인데, 이 부분 역시 차후에 다룰 기회가 있을 듯 하다.

전작까지 일구어 온 프랜차이즈의 역사가 달성한 강력한 추상화와 서사구조 확립은 <문명> 시리즈의 재미를 보장하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고, 이 든든한 기반에 SF의 설정을 덧씌워 완성한 것이 <비욘드 어스>다. 여전히 많은 플레이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예약 구매를 걸고, 릴리즈(release, 출시)되자마자 아프리카 등의 인터넷 방송국에서는 <문명> 플레이 생방송이 시작되는 등 예상했던 만큼의 인기 몰이를 보여주었다.

높았던 기대, 그러나 전작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전작들이 보여준 재미 요소를 그대로 간직한 플랫폼으로 구현한 미래 SF물인 <비욘드 어스>는 역사의 공식이 미래에도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고전적인 게임 애호가들과 더불어 SF 매니아들까지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 발매가 된 이후 주요 게임평론지들의 점수와 유저 평점은 발매 이전의 기대치를 충족하지는 못하고 있다. 메타크리틱 사이트에서의 <비욘드 어스> 스코어는 81점으로, 전작이자 원천 플랫폼인 <문명 5>의 90점에 못미치며, 역대 최고의 평점을 보유한 <문명 4>의 94점에 비하면 심각하게 떨어진 수치다.

전통적인 <문명> 매니아들로부터 듣는 가장 큰 비판은 <문명 5>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게임성에 대한 비판이다. 실제로 <비욘드 어스>는 <문명 5>의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주요 자원들은 단지 철과 석유에서 제노매스와 파이로사이트로 이름과 그림만 바뀌었지 그 활용법은 동일하다.

앞서 <문명> 프랜차이즈가 달성한 재미 요소에서의 성과를 언급했지만, 실제 게임을 구매하고 플레이하는 사용자들의 만족감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비욘드 어스>는 안전한 선택을 했지만, 그 안전한 결정은 게이머들의 기대에는 상처를 준 결과가 되었다. <문명 5>의 확장팩으로 나와서 20달러 수준으로 팔려야 할 콘텐츠가 이름만 독자 브랜드로 뺐다는 이유로 49달러에 판매된 것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는 부분이다.

또한 사실 이러한 SF적 시도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도 마이너스 요소다. <문명> 시리즈 중 평가로는 1, 2위를 달리는 <문명 2>의 엔진을 기반으로 문명 이후의 외계진출을 다룬 <알파 센타우리>라는 게임이 1999년에 같은 회사에서 발매된 적이 있었다. 사실상 이번 <비욘드 어스>는 <알파 센타우리>의 정신적 후속작이라도 봐도 무방한 것이다.

<문명 5>의 플랫폼에 <알파 센타우리>의 정신을 담았으나,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알파 센타우리>가 보여준 것에 비해 지나치게 빈약한 콘텐츠가 <비욘드 어스>의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등장 전투유닛을 무기, 구동부, 장갑 등으로 세부 설계하여 조합할 수 있었던 <알파 센타우리>와는 달리 <비욘드 어스>는 세세한 설정이 불가능하다. <알파 센타우리>의 지형에서는 지형의 고저차에 따른 에너지 생산량이 달라지는 등의 설정이 존재했는데, <비욘드 어스>는 그보다 훨씬 단순한 지형을 이용한다. 이러한 점들은 SF장르 특유의 두꺼운 설정에서 오는 맛을 반감시켰고, 정신적인 모태가 된 원작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낳았다.

   
▲스타크래프트, WOW 등 블록버스터 전문 제작사였던 블리자드는 최근 캐주얼하고 가벼운 게임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게임산업 전반에 불어닥친 캐주얼화는 비단 문명 시리즈만의 경향성은 아니다. 사진은 블리자드의 최근작 <하스스톤>.

그러나 이런 비판은 <문명> 시리즈를 단독으로 떼어 놓고 몰아세우기엔 조금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2014년의 게임산업은 전체적으로 캐주얼화하는 경향성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 시리즈만 해도 2005년 <문명 4>보다 2010년 <문명 5>가 훨씬 더 설정이 단순해졌다. 초 거대 게임사인 블리자드의 신작들 또한 방대한 롤플레잉 블록버스터 중심에서 <하스스톤>과 같은 손쉬운 게임들을 출시하는 형태로 전략이 변하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알파 센타우리>의 SF적 방대함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것이 2014년에 동일하거나 더 두꺼운 형태로 출시되었을 때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은 미디어이자 스포츠이지만, 동시에 산업으로서의 성격이 매우 뚜렷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일회성 콘텐츠가 아니고, 특히 온라인 시대를 맞이하여 게임 콘텐츠는 정식발매 후에도 버그 수정, 시나리오 패치, 확장팩과 추가콘텐츠 구매 등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 되는 형태를 가진다. <비욘드 어스>도 현재 플레이어들로부터 고평가를 받지 못하는 부분을 패치와 확장팩으로 메꿔나갈 것이다. 다만 대중의 요구와 제작자로서의 추구점 사이에서 어떤 중심을 잡고 어떤 결과물을 낼지는 아직 미정이다. <알파 센타우리>와 <문명 4>의 하드코어함에서 매력을 느꼈던 고정 팬층과 새롭게 게임에 유입되는 신규 팬층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Redder / 게이머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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