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좋은 글, 좋은 영상은 어떻게든 보게 돼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손 안에 들어오고, 누구나 ‘미디어’가 돼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이 만들거나 공유하고 싶은 글이나 영상을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실제 ‘대박’이 터지기도 한다. ‘희망’은 커졌다. 미디어, 특히 대안미디어는 트위터 리트위트와 페이스북 좋아요·공유하기 숫자에 민감해졌다.

SNS로 사정이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SNS에 ‘도는’ 영상은 실시간검색어 등 ‘핫이슈’거나 반려동물 정도다. 트친, 페친이 공유하는 좋은 글도 많지만 소스는 기성언론이나 ‘선수들’인 경우가 많다. 진보정당, 미디어활동가들이 만드는 ‘대안’ 콘텐츠는 여전히 그 바닥에서만 유통된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가재울라듸오>를 만드는 활동가 나비는 “이미 콘텐츠는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발터 벤야민은 “기민한 언어만이 순간순간을 능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전단지나 팜플렛, 신문기사나 플래카드” 같은 “언뜻 싸구려처럼 보이는 형식들”이 설 곳은 여전히 좁다. 현장과 지역에서 공들여 만든 ‘대안’은 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마트폰 앱이나 대안 플랫폼을 구축할 ‘돈’도 ‘기술’도 없다. “2000년대 초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가 주춤한 미디어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사진=미디액트)

상황부터 진단해보자. 지역 케이블조차 ‘퍼블릭 액세스’를 좁히고, 언론은 서울과 권력에 집중한다. 지역과 현장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던 플랫폼은 대부분 사라졌다. 미디어운동은 전체운동에서도 ‘곁가지’ 취급을 받는 탓에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최근 미디어운동이 파고드는 SNS도 녹록치 않다. 이용자들은 충격적이거나 재밌거나 매우 세련되거나, 셋 중 하나라도 만족해야 눈길을 준다.

문제는 미디어운동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진짜 ‘공익광고’ <공존:광고>만 하더라도 서울시 지원금이 없다면, 4편까지만 제작이 가능한 상황이다. 김형남 감독은 “공존광고가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없을 때도 자생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이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가 기록한 영상에 헐값을 매기는 것도 문제다.

미디어운동을 지원하는 ‘공적 영역’도 줄고 있다. 올해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삼척> 프로젝트를 진행한 미디어활동가 이마리오는 “미디어활동가들을 지지하고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지역의 미디어센터들 또한 자신들의 명백 유지에도 벅찬 상황에서 느슨하게나마 유지되고 있었던 퍼블릭엑세스네트워크는 유명무실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전했다. RTV 또한 이미 공익채널에서 제외된 지 오래됐다.

18일 오후 서울 창전동에 있는 미디액트에서 열린 포럼 <미디어가 공동체를 만났을 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공동체를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참석한 활동가들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했다. ‘자본’과 ‘서울’이 중심인 세상에서 언론이 다루지 않는 노동과 지역의 이야기, 진보적 담론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유통할 것인가. 또 미디어운동이 지속가능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인가.

▲ (사진=미디액트)

이주노동자들이 촬영한 풋티지를 활용해 ‘크라우드(crowd)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지구인의 정류장>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최종만 사무국장은 “이주민이 직접 촬영한 풋티지를 SNS에 올리면, 이를 가공하고 재인용하고 첨언해서 심층 다큐멘터리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크라우드 방식의 미디어운동은 이주노동자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또 스스로 미디어가 돼 운동을 풍부하게 만든 효과가 있다.

구체적인 사실과 불만이 있는 ‘수용자’를 직접 만나고, 이들이 ‘미디어’가 되는 과정이야말로 공동체 만들기다. <가재울라듸오> 활동가 나비는 “생산한 사람들의 자기만족, 그리고 미디어 활동들끼리 돌려보는 수준의 제작물을 반복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리고 개발할 수 있도록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미디어를 생산하는 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활동가들이 ‘만들어졌지만 주목받지 못한 공동체’에 깊숙이 들어가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강원지역 미디어활동가들은 2012년 지역의 쟁점과 복지 이슈를 제기하기 위해 <복지갈구화적단>을 만들었다. 이 지역 활동가들은 올해 ‘삼척 핵발전소’ 주민투표 전 <미디어로행동하라 in 삼척> 프로젝트를 가동해, 삼척시민들의 반핵활동을 다양한 형식으로 전달했다.

물론 콘텐츠는 ‘현장’에서 나온다. 쌍용차 노동자를 꾸준히 기록한 <대한문 영상팀>은 쌍용차 노동자가 촬영한 영상을 가지고 <대한문을 지켜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같은 현장이라도 색다른 콘텐츠가 필요하다. 하샛별 활동가는 대한문에서 노동자들과 가장 크게 갈등을 빚은, 그래서 ‘대한문 대통령’으로 불린 최성영 전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에 대한 다큐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 (사진=미디어스)

콘텐츠는 현장과 지역의 언어로 만들어야 사회운동과 기민하게 결합할 수 있다. <가재울라듸오> 나비 활동가는 “(지금 미디어운동은) 지역의 이슈를 너무 전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인의 정류장> 만이님(최종만 사무국장)의 지적처럼 그들의 문제와 함께 호흡하면서 문제해결로 나아갈 수 있는, 실질적 반응과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미디어 생산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급’에 대한 고민도 필수다. 노동당 서울시당 백상진 총무부장은 미디어운동에 아쉬운 점은 “확장(마케팅)에 대한 고민”이라며 “콘텐츠에 대한 성실한 고민에 비해서 ‘영악한 수완’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미디어운동이 공동체들 그리고 사회운동과 더 잘 조우하기 위해”서는 ‘아카이브’ 용도의 SNS계정을 만들고 “사람 중심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운동의 영역은 시간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지만 사람은 줄고 있다. “마음아픈 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해야 하고, 뭘하는지 모르게 바쁘고, 때때로 서운하고, 누군가 크게 알아주지도 않고, 현장에서 속보영상들을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현실”(하샛별 활동가)이다. 공적 지원도 줄고, 플랫폼도 누군가가 장악해버렸지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 줄 수 있는 사회운동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현장미디어 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이들의 곁에서 그들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눈물나고 행복한 일인지 알아버렸다는 말로 설명이 될까. (중략) 누군가가 자기 삶을 오롯이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기꺼이 열어주었다면 카메라를 든 나 역시 그 마음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샛별 활동가)

▲ (사진=미디액트)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