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건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 한 분이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는 한전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 결국 분신자결하셨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더욱이 지난 몇 년 간의 긴 싸움이 할매 할배들 싸움으로만 사실상 방치되어 생겨난 일이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겹쳤다. <밀양, 반가운 손님>을 보며 그때 감정이 살아났다. 외롭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감수성,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싸움에 제 나름의 방법으로 힘을 보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밀양, 반가운 손님>은 다섯 편의 작품들을 모아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를 맞이하는 고향 후배들의 술자리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샛별 감독의 <좋은데이>다. 술잔이 오가는 사이 한전 직원 후배의 복직 투쟁이나 할 것이지 밀양에 왜 가느냐며 묻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논쟁으로 흐른다. 한전의 일방적인 고소 고발과 부당한 보상처리 문제, 국가가 필요해서 하는 일에 왜 반대하는가, 산골에 잘 닦인 길을 이용하면 예산도 적게 드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전기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핵발전소와 언제 일어날지 모를 핵폭발 사고의 위험 등 밀양 송전탑 싸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어느 문제하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밤은 깊어가지만,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철탑 위 농성을 했던 노동자는 철탑에서 내려 온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이 좋지 않다며 송전탑 아래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밀양, 할매들과 경찰들이 마주보며 웃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펼쳐지기도

카메라는 이제 밀양을 둘러싼 논쟁에서 밀양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긴다. 노은지 감독의 <할매들은 알고 계셔>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골안마을 할매들의 이야기다. 매일 오후 2시 마을 입구에는 밭일하다 나온 할매들이 모인다. 하루 15분이라도 공사 지연을 막기 위해 공사장 가는 길목 차가운 바닥에 앉아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는 할매들의 싸움은 겨우 서너 명의 할매들에 맞선 어마어마한 경찰 무리 속에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찰이 내세우듯 주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출동했다는 뻔한 거짓말이 마치 사실인양 할매들과 경찰들은 서로 마주보며 웃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은 할매들의 세월이 버려지듯 지속되고, 일상이 되어버린 싸움은 할매들을 지치게 한다. 잠에서 깬 한 밤 중 한숨은 깊어가고, 그만하고 싶기도 하지만 힘없고 돈없는 할매들이 적정한 보상 없이 마을을 떠나지도 못하고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런지 답답할 뿐이라며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허철녕 감독의 <말해>는 팔순을 훌쩍 넘긴 상동면 도곡마을 김말해 할머니의 서글프고 한 많은 과거와 현재이야기다. 보국대를 피해 결혼을 선택하였으나 보도연맹 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자식들과 살기 위해 죽음의 문턱을 넘었던 말해 할매는,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에서 개인의 삶이 무참히 짓밟힌 삶을 증언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였는데도 할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집 앞을 지나는 공사 차량과 경찰 무리에게 욕설을 퍼붓는 할매의 모습과 ‘아무도 내 삶을 몰라준다 싶어’ 억울하고 원통한 할매의 심정은 그 비극적인 과거 못지않은 참혹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노구를 이끌고 ‘김말해’라는 세 글자를 스케치북에 써서 온 몸으로 저항하는 할매는 전쟁보다 더한 참혹한 현실을 견디고 있다.

▲ <밀양, 반가운 손님>의 한 장면(출처=서울인권영화제)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뒷산 101번 송전탑 예정지 작은 움막에는 음식 솜씨 좋은 용회마을 살림꾼 옥희씨가 있다. 그녀의 곁에는 늘 또 다른 매력의 강단 있는 구미현 형님이 함께한다. 넝쿨 감독의 <나의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는 할매들과 용회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용회마을은 오랜 시간동안 함께 농사짓고 밥 먹으며 살아 온 토박이들이 많은 동네다. 그러나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면서 송전탑 공사에 합의한 주민들과 반대 주민들로 나뉘어 마을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집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서로 나누던 친척과 이웃들 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한전은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을 매수하며 마을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홍보하는 치졸함을 보이고,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며 황폐화되어 간다. 마을이 갈라지고 이웃이 원수지간이 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옥희씨는 돈 몇 푼에 항복한 마을 주민들이 괘씸하고 화도 나지만, 주민들을 설득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한편 101번 공사 강행이 다가올수록 움막 안에서는 목에 쇠사슬을 걸고 어떻게 버틸 것인가를 처절하게 고민하며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 <밀양, 반가운 손님>의 한 장면(출처=서울인권영화제)

산꼭대기 움막에서 할매들과 함께 밤을 새고 아침을 맞이하며 공사강행을 위한 송전탑부지 농성장 철거 통보에 따른 행정대집행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던 시간이 흘러갔다. 6월 11일, 밀양 주민들을 향하여 국가는 2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101번 단장면 용회마을, 115번 상동면 고답마을, 127번 부북면 위양마을, 129번 부북면 평밭마을 농성장에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공사 확대를 온몸으로 막아 선 할매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농사를 짓고 이야기를 나누던 평화로운 마을은 한전과 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혔고, 그 자리에서 여경들은 V자를 그리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정부는 돈과 핵발전 사업을 택하였고, 노인들을 향하여 전기톱과 칼을 들이대며 온 마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9월 23일, 한전은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99번 철탑 조립을 끝으로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밀양구간 철탑 공사를 완료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그들의 ‘완공쇼’에도 불구하고 밀양시 4개면 총 260세대 경과지 주민 12%에 해당하는, 그리고 핵심 피해지역 주민만 따지고 보면 1/3을 넘는 주민들은 밀양시청 앞에서 한전 및 공권력 규탄 집회를 가졌다. 시청 점거라도 대비하듯 로비를 채우고 서성이는 시청 직원들과 빽빽하게 시청 주위를 에워 싼 경찰들의 숫자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집회 내내 웃음소리와 활기가 넘쳤다. 오히려 철탑을 등에 업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오늘부터 철탑 뽑는 그날까지”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자며 외치는 함성에서 패배의 기운과 절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기운의 원동력이 규탄 집회 불과 며칠 전 다녀오신 서울에서의 ‘밀양법률기금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을 향한 끊임없는 연대 시민들의 발걸음 덕분이었다는 후문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초고압 송전탑과 핵발전소

12월이면 초고압 송전탑으로 송전이 시작된다. 마을을 지나고 뒷산에 떡하니 자리 잡은 송전탑을 올려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고, 전자파로 인한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할매들이 홀로 순간순간 절망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양은 지금 <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시작했다. 잡은 손 놓지 않겠다며 찾아와 할매들과 밥상을 나누고 바느질을 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정직한 농사를 통해 배우는 <미니팜 협동조합>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소박하지만 더욱 풍요로운 일상을 일구고 있다.

▲ 할매들과 밥상을 나누고 바느질을 하는 모습

영화는 우리가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초고압 송전탑과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란들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으로 속 시원하게 풀어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왜 이 싸움이 정의롭지 못한 것인가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영화가 싸움의 현장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거대한 국가 폭력이 힘없는 민중의 삶을 얼마나 짓밟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 할매들의 입이 되고 눈이 되어 억울함을 여과 없이 전해준다. 가끔은 억울한 심정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거나 실컷 울고 나면 조금 풀리곤 할 때가 있다. 이 영화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이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닐까?

더하여 카메라를 통해 전해진 할매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땅 밀양의 모습이 우리 가슴에 들어와 밀양 할매들을 만나러 가고 싶어지게 한다. 조용히 읊조리며 부르는 노랫가락 ‘그대만 있어 준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그 말을 외면할 수가 없다. 영화 초반 철탑 위에 올라갔던 노동자는 말한다. 두렵고 참담한 마음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철탑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나의 앞날, 동지들의 앞날 같다고. 고통 받고 힘없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고민이라고. 그리고 그가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뱉은 말은 ‘너무 억울하니까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할매들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끈질긴 싸움이 가능한, 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본다.

▲ <밀양, 반가운 손님>의 한 장면(출처=서울인권영화제)

밀양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아랑전>에서 신임 부사는 원혼이 되어 찾아 온 ‘아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조사하여 그 원한을 풀어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일이 아랑을 욕보이려던 한갓 관노의 잘못이 아니라, 고관대작들이 관여된 일임을 알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한다. 참으로 원통하고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수없는 억울함을 가진 민중들에게 마치 아랑이 된 듯 그들의 속내를 털어내고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밀양의 할매들 역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아랑을 죽음에 이르게 한 실체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당당하게 맞서며 살아갈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원통함을 나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손잡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려 줄 많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재환 감독의 <한 가락>은 치열했던 현장 투쟁이 사라지고 여론에서 밀려 난 현재까지 밀양의 싸움이 왜 여전히 이어지고 끝날 수 없는지 보여준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그랬던 것처럼, 폭력으로 얼룩진 송전탑 공사의 정당성을 덧칠하기 위해 공권력과 정부와 밀양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금전을 동원한 파상공세가 시도되고 있지만, 할매 할배들의 저항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서로의 아픔을 도닥거리며 같이 밥을 먹고 논밭을 일구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살아갈 힘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절망의 순간에도 새로운 희망을 품는 불굴의 의지는 밀양을 만나는 이들, 손잡은 우리들에게 함께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이 글은 미디액트 <act!> 91호에 실린 글입니다. 홈페이지(http://actmediact.tistory.com/category)로 가면 91호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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