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도 ‘계급’이 있다. 여행객과 유학생(에도 인종주의가 작동하지만)에는 차별적인 시선이 덜하고, 결혼이주민은 ‘교화의 대상’이다. 그리고 맨 말단에 이주노동자가 있다. 특히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제63조 ‘근로시간, 휴일, 수당에 관해 근로기준법의 예외’ 대상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집단이다.

지금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Employment Permit System)’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노무현 정부는 산업연수생 제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이 제도를 만들었다. 올해로 십 년이 됐다. 그런데 현실에서 고용허가제는 ‘사장님허가제’다. 사장님의 임금체불에 불만을 갖지 않고, 먹지 못할 밥과 입지 못할 옷과 지내지 못할 숙소를 견뎌야 쫓겨나지 않고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퇴직금을 본국에 도착해서야 받는 게 한국정부가 이주민에게 제공하는 ‘코리안드림’이다. 이주노동자의 진짜사장은 한국 정부다. “사장님, 나빠요.”

고용허가제는 한국이 ‘송출’ 국가와 매년 송출 규모를 정하면, 이 국가들이 노동자를 보내는 방식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일반 외국인력(E-9)은 태국 인도네시아 등 15개 국가, 방문취업 동포(H-2)는 중국・구소련 국가다. E-9 송출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업종은 중소제조업과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서비스업에서 일할 수 있고, 방문취업 동포는 음식점, 가사‧간병 등 29개 업종에서 일할 수 있다.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2014년 11월30일 현재 취업자격 체류외국인은 61만7194명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전문인력과 단순기능인력으로 분류하는데, 각각 5만110명과 56만7084명이다. 합법과 불법으로 분류하면 합법은 54만6688명, 불법(강제추방 대상)은 7만506명이다. 2014년 11월 기준 한국의 취업자수는 2596만8천여 명인데,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 50명 중 한 명은 이주노동자인 셈이다. 이주노동자는 주로 저임금 공단이나 도시의 저임금 사업장, 농어촌에서 일한다.

▲ <지구인의 정류장>이 고용허가제 10년을 맞아 만든 영상보고서에서 갈무리.

애초 이주노동자들은 ‘저항’했다. 2003~2004년 무려 381일 동안 “강제추방 반대! 노동허가제 쟁취!”를 외치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싸웠고, 2005년 4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십 년 넘게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주노조 위원장들을 이 땅에서 쫓아냈다. 이주노동자들은 공장과 식당, 논밭과 염전으로 돌아갔다.

이주민에 대한 착취는 가장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이 일하고 현장은 한국 정부와 사장님들이 가장 은폐하는 곳이다. 최장 9년8개월[=최초 3년+1년10개월 연장+(출국 후 재입국)+3년+1년10개월 연장]을 일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사장님의 ‘요청’이 있어야 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절대복종’은 필수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숨어’ 지낸다.

지금 한국에서 드라마 <전원일기>를 촬영한다면, 이주노동자는 ‘주연’이지만 정작 농촌의 실상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박진우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 활동가는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나 이주센터들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접할 수 없다”며 “특히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이 워낙 외지에 있는 경우가 많아 외부와의 접촉이 없는 탓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이주노동자들이 조심스럽게, 스스로 ‘미디어’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현장’과 자신이 당하는 ‘착취’를 촬영한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유튜브에서 ‘stop eps’를 검색하면 나오는 <지구인의 정류장> 다큐멘터리가 그렇다. 최종만 사무국장은 18일 서울 창전동에 있는 미디액트에서 열린 포럼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미디어 활동을 소개했다. 정류장은 2009년 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을 위해 만들어졌고, 2011년부터는 쉼터 사업까지 함께 하고 있다.

▲ <지구인의 정류장> 페이스북 소개 사진. (사진=<지구인의 정류장> 페이스북)

시작은 ‘음성파일’이었다. 2011년 강원도 양구에 있는 한 농장에서 일하던 12명의 이주노동자가 사장에 항의해 싸우고, ‘실상’을 담은 음성녹음파일을 들고 정류장을 찾아왔다. 그리고 <지구인의 정류장>은 2012년 8월19일 “예상 밖의 집회대오가 모인” 집회에 특이한 유인물을 배포했다. 최종만 사무국장은 “(당시) 유튜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개해, 하고픈 말이나 영상이 있으면 공유해 달라고, 각 나라말로 업로드 방법을 알렸다”고 말했다.

반응은 즉각 왔다. 2012년 <지구인의 정류장>은 다큐멘터리 제작단을 만들어 이들이 만든 풋티지를 재가공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일명 ‘크라우드(crowd) 다큐멘터리’다. 최종만 사무국장은 그해에만 “풋티지를 가공하고 재인용하고 첨언해 총 4개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전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미디어가 되면서 공동체가 만들어졌고, 2013년 1월 크메르(캄보디아) 노동권 협회가 만들어졌다. 현재 회원은 500여 명이다.

2013년에는 ‘프로젝트 단짝’이 있었다. 최종만 사무국장은 “(사장님에게) 맞았다고 하면, 그쪽에서는 ‘자해했다’고 항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영상’은 증거가 된다”며 “이주노동자들은 생존본능을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거나 쫓겨나거나 돈을 못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인의 정류장> 영상에 ‘막말’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이 당하는 압박과 착취를 스스로 기록했다.

최종만 사무국장은 “<지구인의 정류장>이 주목하는 것은, 정말 관객수 얼마 되지 않을뿐더러 한국 선주민 관객만을 위한 이주영화제에 상영하고는 ‘이로서 이 미디어들은 한국 사회에 대한 발언이고, 접촉면이다’라고 변명하기보다 차라리 같은 문제를 겪는 이주노동자들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미디어가 현재로서 훨씬 가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통 전술’이라는 이야기다.

이주노동자가 직접 만드는 ‘다큐멘터리’, 공동체 만들기는 계속된다. ‘농업이주노동자제작단’은 2015년 직접 촬영한 작은 영상조각(풋티지)를 모아 다큐멘터리 ‘신 전원일기’를 만들 계획이다. 최종만 사무국장은 “‘신 전원일기’는 농업이주노동 영상백서”라며 “한국 농촌사회와 우리 식탁 위에 오른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지, 노동자의 노동력을 얼마나 착취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 (사진=<지구인의 정류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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