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게 쓰자.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이란 당명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 당이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통합세력임을 의미한다. 그러면 새정치연합이란 건 무엇이었나? 안철수와 그 동조세력들의 ‘만들다가 만 정당’이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두 정치세력의 통합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판단할 수 없다.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단 게 아니다. 말 그대로,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판단할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은 ‘이념 및 정책 노선’은커녕 ‘조직구현방식’은 물론이거니와 하다못해 ‘인물’도 정하지 못하고 민주당과 통합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된 안철수는 이 정당 내부의 정치로서 그 세 가지를 드러냈어야 했으나, 그게 뭔지 보여주기도 전에 선거 두 번을 한심하게 치르고 끌어내려졌다.
안철수 의원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안 의원이 대선출마에 선언하며 현실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한 9월 19일을 기억하며 2년 간의 정치활동을 담은 <지난 2년을 돌아보며>란 글을 보면 그 자신도 후회가 많은 듯하다. 일부를 옮겨보자.
“(...) 아쉬운 점들도 많았습니다. 민주당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기로 한 것은 대한민국 정치를 이끄는 거대 양당 중 한축을 개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탄생의 명분이기도 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무산되면서 동력을 잃었습니다.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여론조사에 부치기로 했던 것은, 대표가 된 직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론조사의 승리를 통해 튼튼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국면을 하나씩 돌파해나가면서 인정받는 방법을 택했어야 했는데, 단기간에 안정을 이루려고 했던 것은 제 과욕이었습니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의 두 선거 공천 작업을 하면서 개혁적인 공천과 선거 승리 가능성의 두 가지를 함께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신인은 승리 가능성이 낮고 중진은 개혁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점이 고민이었습니다. 특히 7.30 재보궐선거의 경우에는, 선거 이후 본격적인 정당개혁을 시작할 생각으로, 선거의 승리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합니다. 공천도 중요하지만 과정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도 절감했습니다.
또한 두 차례 큰 선거를 치른 이후로 미뤄두었던 정당개혁을, 대표를 그만두게 되면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창당때 새롭게 당헌당규를 만들면서 중점을 둔 부분 중 하나가 당무혁신실 신설이었으며, 이곳을 통해서 정당개혁을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낡은 정치와 치열하게 경쟁해서 새정치를 구체화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는 참담한 비극이며 어린 생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변화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했음에도, 정치권의 잘못으로 정쟁으로 비판받게 만든 점에서 정치권 모두는 역사에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저도 정치인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대표로 있는 동안 잘 마무리 짓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한국보건산업진흥원·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인구보건복지협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당 대표직 사퇴 이후 80여일만에 언론을 만난 22일 <경향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안철수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경향신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안 의원은 “지금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이 제 전문 분야가 아닌 ‘정치개혁’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잠시 회한에 젖는 표정을 보이더니 “저는 경제와 교육에 전문성이 있다. 사람들도 ‘삼성 동물원’과 같은 얘기를 더 기대했을지 모른다”며 “당시 경제와 교육개혁을 가로막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해서 정치쇄신 얘기를 했는데 되레 오해를 받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경향신문>은 안철수 의원이 지난 3월 옛 민주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기초공천 폐지 문제를 앞세웠던 것도 미숙했기 때문이라며, “정치개혁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내 전문 분야인 경제·교육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다짐을 내세웠다고 전했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은 <경향신문>의 묘사는 너무 나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22일 보도가 나온 후 안 의원은 트위터에 “어제 보도는 식사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여서 진의가 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새정치를 정치개혁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와 교육 등 국민들의 구체적인 먹고사는 문제가 중심이 되도록 했다면 국민들과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였습니다”라고 남겼다.
안철수 의원의 발언에 관련한 ‘혼선’은 그의 입장이 여전히 모호하거나, 정리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른다면 그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내세운 것이 자신의 ‘미숙’이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공식적인 입장이 될 그의 홈페이지 서신을 따른다면, 그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옳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그게 당내에서 실현이 안 되어 정당 개혁의 벽에 부딪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전히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사실 궁금하지 않기도 하다. 안철수 의원은 그간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다기 보단 몇 가지 중도적 입장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인상을 심어줬다. 그의 속내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유권자들 역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새누리당에도 민주당에도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의 ‘크기’를 보여줬던 ‘안철수 현상’은 꺼졌고, 정치에 실망한 부동층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이들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정치인 중 일인’으로 전락한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장래보다는, 이 과제를 입에 담는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이름의 정치세력의 역할에 충실한 것일 테다.
안철수 의원의 역할이 이 영역에 여전히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민생경제를 말했어야 한다는 조언은 처음 정계 입문한 후에도 흔했다. 그런데 그는 그 영역에서 비켜났다. 자신감의 부족으로 보였다. 그랬기에 그는 ‘정치인 중 일인'이 되었고 이제 새정치민주연합이 시민의 관심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의 문제는 안철수와는 큰 상관이 없게 되었다. 물론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장래를 논점으로 잡는다면, 그에게도 재기의 기회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의 ‘안철수 실종'을 ‘안철수 수색'의 필요성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자신의 과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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