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하지 않을 것으로 방침을 정한 가운데 그렇다면 기초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독식'을 할 거라는 야권 입장에선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 출마한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도 최근 논평을 내고 기초공천 폐지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 전 처장은 성남시 분당갑 지역을 예로 들며, "4개의 기초의원 지역구에서 야권의 12~15명의 후보가 난립한 상태다. 이들은 단 1명의 ‘1번 새누리당’ 후보와 경쟁했을 경우 ‘전멸’할수 있다는 심각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새누리당이 ‘기호 1번’을 고수하면서 보수세력은 결집하는 반면, 무공천으로 졸지에 ‘기호 2번’을 잃고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할 통합신당 후보들은 분산된 표와 가늠하기도 힘든 무효표로 인해 최악의 선거를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개탄하였다. 심지어 2위까지 뽑는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2명을 내보내 ‘싹쓸이’할 수 있을 거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있다.
새로 창당되는 당의 통합명분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되고 이것이 정치개혁의 대안으로 불리게 된 현실은 각 정치세력들의 몇 번의 악수가 중첩되어 생긴 것이다. 먼저,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모두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 여론은 언제나 폐지 쪽이 더 높게 나온다. 게다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라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 측의 극단적인 ‘반여의도 포퓰리즘’ 공약이 효과를 보는 것을 목도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양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약속했다. 제도의 장단점을 섬세하게 따지지 않은 선거용 공약이었다.
▲ 민주당 소속 의장단은 13일 수원시의회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회 정당공천제 폐지를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촉구했다. (연합뉴스)
대선 이후에는 민주당이 몇 번의 과정을 거쳐 이 조치를 점점 더 뒤집을 수 없는 종류의 당론으로 만들었다. 당내에서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자 당 지도부는 찬반검토위를 구성해 폐지 여부를 검토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2013년 7월 4일 민주당 정당공천 찬반검토위원회가 정당공천 폐지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당 지도부에 건의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논란이 그치지 않자 전 당원투표 실시를 통해 당론을 확정지었다. 전 당원투표는 지난 1년 동안 한 차례 이상 당비를 낸 14만 7천여 명의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닷새간 ARS와 문자메시지 조사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민주당 역시 차라리 새누리당처럼 이 공약을 폐기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우물쭈물 논의를 지시했고 논의를 한 번 더 할 때마다 ‘뒤집기 어려운 방식으로 결정된 당론’이 탄생했다. 15만명에 가까운 권리당원을 대상으로 한 투표로 결정된 당론을 뒤집기는 어렵게 되었다.
민주당이 그렇게 당론을 결정했을 때, 새누리당과의 협의를 통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면 차라리 폐해가 덜했을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몫으로 존속하면서 지역구에서만 정당표방제를 실시하거나, 비례대표제까지 없앴을 경우 여성명부를 따로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정책대안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론을 확정하고 새누리당의 경우 이를 뒤집으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안철수 의원 측이 민주당에 대해 함께 정당공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이 ‘약속을 지키는 길'이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공동준비위원장이 16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에서 기타 안건과 관련해 의결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오른쪽은 김한길 공동 창당준비위원장. (연합뉴스)
이는 법안을 통해 실시되는 제도적 정당공천 폐지와도 전혀 궤가 다른 얘기다. 비유하자면, 두 가지는 대학평준화를 지지하는 것과 ‘좋은 대학’(정확히는 수능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이지만) 지망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우리는 정책적으로 대학평준화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대학평준화를 지지하는 개인에게 현 체제에서 니 성적과 관계없이 아무 대학에나 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제도 속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개인이 불필요한 손해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의 안철수 의원 측이 민주당에게 요구한 것이 딱 그렇게 ‘정책적으로 대학평준화를 지지한다는 걸 보이기 위해 본인 성적과 상관없이 아무 대학이나 가는 행위’다. 안철수 의원 측은 그렇게 해야만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권력 자원의 배분이고, 그렇게 배분된 권력을 사용하는 활동이다. 민주당더러 권력을 다 놓아 버리라고 요구한다면 민주당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새정치연합 측은 사실상 사람도 조직도 없기에 큰 손해를 보지 않아도 기득권을 놓아 버린 양 처신할 수 있지만 말이다. 더 웃긴 것은 이렇게 ‘놓아버린 권력’이 안철수 측으로 배분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앞선 전망에서 나왔듯 민주당이 ‘놓아버린 그 권력’은 상당수 새누리당 쪽으로 빨려 들어갈 공산이 크다.
안철수의 ‘새정치’가 ‘탈정치’이며 ‘반정치’라는 비판은 타당하다.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는 일종의 ‘반여의도 포퓰리즘’이며, 좀더 작은 영역에서 구현된 ‘국회의원 정수 축소’ 제안이다. 문제는 그러한 안철수의 제안에 전 야권이 휘둘려 제 정치역량을 까먹을 상황에 처한 웃지 못할 현실이다. 민주당은 안철수 측과의 통합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지만 만약 민주당이 이를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어도 안철수 측은 다른 명분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보여준바 안철수 의원은 어떤 명분을 가지고 행동한다기 보다는 지지율과 트위터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정치를 모르는’ 안철수에게 ‘정치를 잘 아는’ 민주당이 휘말려 일패도지할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야권 후보들을 좀더 잘 통제한다면 최악의 결과는 막을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가 이러한 위험을 감당하면서 얻을 수 있는 정치개혁의 성과는 도대체 무엇인가. 권력자원이 더욱 더 보수에 불공정하게 배분되고, 진보정당의 눈앞에 있는 문턱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 정치개혁이란 말인가. ‘정치의 문제를 정치를 더욱 약화시켜 해결하자고 하는’ 이 모순은 거듭 반복될수록 정치의 몰골을 앙상하게 만들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공부를 못하니 징벌적으로 밥을 더 줄이자는 식의 대안을 기성정치권의 한축이 받아들여 실천에 옮기려고 모습은 한국 사회의 정치담론이 얼마나 황량하고 무력한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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