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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원래 good guys였잖아, 왜 이렇게 변한거지?”[옥인동 샤우팅]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좀비 아포칼립스
홍명교 / 활동가 | 승인 2014.10.24 11:36

그들도 사람일까? 그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사소한 기억은 갖고 있을 것만도 같은데, 이내 짐승처럼 달려들어 내 옆에 있던 동료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동료. 역시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좀비들에게 조금이라도 물어뜯긴 사람은 이내 좀비가 되어 사정없이 인간들을 향해 공격해 들어온다. 그들은 그저 피에 굶주린 존재가 되어버린다.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드 <워킹 데드>가 시즌5를 시작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긴장감의 파고가 이어지고, 참혹한 상황이 만들어진 원인도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인류가 질병처럼 좀비가 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시즌을 더해가면서 <워킹 데드>는 과연 좀비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인간’조차 여전히 ‘인간’으로 살 수 있는지 묻는다. 타인을 재물로 바치거나 사지로 내몰아버림으로써 살아남게 되는 기억들이 인간성을 좀 먹게 만들고, 인간조차 ‘인간’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시즌5의 시작은 이미 그 극단에 다다른 한 그룹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다른 그룹에게 참혹한 폭력적 경험을 수행하고나서 사람고기를 먹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워킹 데드>의 ‘좀비 월드’는 그 끔찍한 비주얼을 밀도 있는 이야기, 살아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오늘날 서로가 물고 물어뜯기는 세계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뛰어난 특수분장으로 좀비들이 사람의 살갗을 물어뜯는 끔찍한 장면들을 구현해내고 있지만, 이보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런 지옥 같은 세계에서 점점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잃어가는 살아남는 이들이다. 시즌이 더 해갈수록 좀비들로부터 희생당하는 사람보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속이고 죽이는 참극이 늘어난다. 참혹한 사태의 전조마다 그들은 항상 그들 자신에게 되묻는다. “우리 원래 ‘good guys’였잖아. 근데 왜 이렇게 변해버린거지?”

   
▲ 미드 <워킹 데드>

좀비 영화의 현실반영

미국의 ‘저예산 B급 영화’의 한 갈래로 시작된 좀비 영화는 어느덧 영화의 주요한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 기원을 따지면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으로 시작된 조지 로메로의 좀비 3부작이나 2000년대 전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28일 후>, <28주 후> 연작, 미국에서 몇번이고 리메이크 된 <나는 전설이다> 같은 작품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계 또는 인류의 종말을 다루는 SF물 중에서도 ‘좀비’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성의 존재 의미를 묻는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들이다.

과거 좀비 영화는 죽은 줄만 알았던 시체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강시처럼 걸어다니며 인간을 향해 공격해온다는 설정이 대부분이었다.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대중영화이기보단 소수의 매니아들이나 찾아보는 B급 장르영화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블록버스터급부터 드라마까지 메인 장르로 급부상했고 내 옆에 있던 이웃과 친구, 가족,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 온몸이 헐뜯겨진 시체의 모습이 되어 공격해온다는 설정이 많아졌다. <워킹 데드>는 이보다 더 나아가 아직 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상실하며 유사-좀비가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미지보다 등장인물의 변해나가는 모습 자체가 더 잔혹하게 느껴져 비주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런 점은 좀비 영화나 드라마의 사회적이며 현실반영적인 성격을 더 드러내는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지금 우리의 얘기인 것 같아 섬뜩하다.

2014년 대한민국의 좀비들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좀비’가 있을까? 우리는 종종 내 이웃, 동료와 가족을 향해 칼날을 세우는 ‘좀비’가 되어버린 인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각자도생하는 경쟁사회의 필연인가? 그리고 이보다 더 괴물화된 좀비들이 언제고 우리의 목덜미를 노리며 더 많은 피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내놓고 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피말리는 시스템, 그것이 좀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얼마 전 새누리당 권성동, 이자스민 등 몇몇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현행 주 68시간 근로를 사실상 60시간으로 줄이는 방안이 포함되어있지만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 임금 조항을 없애겠다는게 골자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노동자 1명당 연간 수백만원의 임금이 삭감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도 하루 12시간씩 근로기준법의 적용도 받지 못하며 일하는 중소공장 소속의 수많은, 노동조합조차 없는 노동자들은 보다 더 참혹한 수렁으로 내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들은 뻔뻔하게도 이런 좀비-법안을 내놓고 이것이 근로시간을 줄이는 민생법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노동자들의 피를 요구하는 또 다른 좀비다. 그들은 여지 없이 “경제 성장”이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 “경쟁력 강화" 따위의 좀비가 된 자본가들의 오래된 레퍼토리를 읊으며 “파견업종 제한, 파업시 사업장 점거 허용 및 대체근로제한 등 선진국에 없는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런 조치는 제조업에서는 할 수 없는 파견근로를 이제 제조업이나 기타 업종에서도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언제고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하고, 아주 낮은 임금에 부려먹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유일한 힘인 ‘파업권’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듦으로써 노동자들을 완전한 노예 상태로 전락시키게 될 것이다.

설상가상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줘야할 고용노동부마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뒤따라 달려오는 좀비들 중 하나다. 23일 세계일보의 <비정규직 고용기간 3년으로 늘린다>라는 기사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현재 ‘2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비정규직 고용개선 종합대책’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3년으로 늘리면 그만큼 비정규직인 상태로 고용이 유지될 노동자의 숫자는 늘어나고, 기업으로선 숙련된 노동자를 계속 부려먹으면서 정규직화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4년쯤 되면 근로자가 숙련되니까 해고하기 어렵다. 일본은 5년으로 돼 있어 합리적이고 아예 기간 제한이 없는 나라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불안정한 고용 상태는 계속 묶어두면서 숙련된 노동자들의 노동을 계속해서 착취하려는 친자본 행정관료들의 속셈이 옅보이는 대목이다. 아무리 번지르르한 말로 치장하더라도 우리의 노동이 뜯기고 또 뜯기는 흐름만 알아챈다면 그들이 내 피를 빨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인지 구세주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아포칼립스’는 종말기적 상태를 의미한다.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속 살아남은 인간들의 흔한 특징은 그 어두운 상황을 돌파함으로써 난관을 해결하기보다 비관주의나 극단적인 각자도생의 길에 빠져 어떤 행위조차 실천할 의지 자체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상황에 쳐했을때 극기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극단적인 절망을 체현하고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오늘 자본이라는 좀비들에게 쫓기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리는 바로 그런 무기력증(burn out)에 놓인 건 아닐까?

   
▲ 영화 <월드워Z>

공포에 맞선 두 가지 상반된 반응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좀비 영화 <월드워Z>에서 예루살렘 시퀀스는 인기리에 방영되다 중단된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과 닮아 있다.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도시가 살아남았듯 전세계 모든 도시가 인간을 씹어먹는 좀비들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을때 예루살렘만은 살아남는다. 아주 높은 성벽을 쌓아 점령지역 전체를 보호하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가 예루살렘에 간 바로 그날 그곳 역시 좀비들의 땅이 되고만다. 마치 <진격의 거인>에서 그 거인좀비들이 성벽을 넘거나 부숴 몰려왔던 것처럼 무수히 많은 성벽 바깥 좀비들이 자신들의 몸뚱이를 계단 삼아 그 높디높은 성벽을 뛰어넘어왔기 때문이다. 그 순간 성벽 안의 시민들이 지르는 비명, 아비규환의 풍경은 세상 그 어느 공포보다도 거세고 끔찍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스펙타클에서 오늘날 문명이 공히 갖고있는 외부 세계에 대한 히스테리증적 공포를 볼 수 있다. 어떤 침입, 무수히 쏟아지는 살아있는 것들의 물결.

이런 공통점들에도 불구하고 <진격의 거인>과 <월드워Z>의 결말은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다. <월드워Z>의 마지막 메시지 “철저한 준비”, 즉 “만반의 준비테세”는 외부 세계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강화시키는 상징적인 메시지에 가깝다. 반면 <진격의 거인>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사, 주인공 에렌 예거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향해 외는 주문은 이것 하나다. “싸워!!!”

자기애로부터 벗어나와 싸우고 저 멀리 어딘가에 있다는 얼음 바다라는 곳에 가고야말겠다는 꿈을 지닌 에렌 예거. 모든 문을 걸어잠그고 저마다의 삶을 지키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우리에게도 그런 미래에 대한 상상과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아닐까? 성벽 안에서 공포에 질린 채 천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그 편이 보다 할만한 내기 않을까? 좀비가 되어버린 세계, 좀비처럼 우리의 삶과 노동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드는 자본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서 말이다.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놈들이 지배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지낸 굴욕을…” - <진격의 거인> 초반 내레이션 중

   
▲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홍명교 / 활동가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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