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가 본사 차원에서 간접고용노동자(하도급업체 소속)의 성향을 분석하고, 하도급업체 노사가 교섭 중에 ‘파업 무력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SK 행복기사로 불리는 노동자들은 SK브로드밴드의 IPTV를 설치, 개통하는 비정규직노동자로 6일 파업에 돌입했다. 하도급업체들은 자신의 사업장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방노동위원회에 신청했다. SK 원·하청이 노조 깨기에 나선 것.

▲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이 공개한 SK브로드밴드 내부문건. 이 문건은 SK브로드밴드 수도권 Network본부가 지난 9월4일 각 센터에 보낸 전자우편이다. 이 문건에는 원청 브로드밴드가 하도급업체에 대체인력을 확보하고, 그 리스트를 작성해 보고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 은수미 의원실은 “9월 초는 각 협력업체별로 노동조합과 한창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던 시기인데, 메일 내용으로 보면 이미 9월 이전부터 협력업체를 통해서 대체인력을 확보해왔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

6일 희망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소속 조합원 천여 명은 이날 오전 8시 경고파업에 돌입했다. 이번 경고파업에는 행복센터(서비스센터) 37개 사업장 소속 천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쟁점은 ‘노동자성’ 인정 여부다. 하도급업체들은 “개통기사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교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조합은 지난달 5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그리고 이달 15일부터 나흘 동안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 파업을 결의한 바 있다. 같은 달 29일 고용노동부는 개통기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고, 업체들이 노동법을 위반한 사실을 발표했다.

지난 2일 SK브로드밴드 하도급업체 노사 간 조정기간이 끝났다. 조정기간 종료 뒤에도 노사는 중노위의 제안을 받아들여 노사 TF를 구성, 집중교섭을 진행했다. 그러나 노동자성 인정 등을 두고 입장 차이가 있어 교섭은 결렬됐다. 하도급업체들은 임금 교섭안을 제출하지 않고, 자재 및 작업복 구입비 등 업무비용을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요구에도 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업체들은 고용승계, 노동강도에 대한 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활동도 ‘회사의 승인을 받은 뒤 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청’ SK브로드밴드는 하도급업체 노사 교섭 전부터 발빠르게 움직였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달 4일 이전부터 각 업체에 대체인력 리스트를 작성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이 공개한 SK브로드밴드 내부 문서를 보면, 브로드밴드는 하도급업체에 대체인력을 요청하면서 본사가 운영하는 행복클리닉을 통해 대체인력을 충원했다.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와 탈퇴자 현황, 그리고 파업 불참 조합원 수까지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업 대응은 물론 ‘노조 깨기’ 노무관리를 직접 시행했다는 이야기다.

▲ SK브로드밴드 원청이 하도급업체에 보낸 전자우편의 첨부파일에는 센터별 노동조합 가입자, 탈퇴자, 파업 불참자 현황이 적혀 있다. 브로드밴드가 직접 대체인력 확보 현황과 대응율을 파악,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은수미 의원실은 “실제로 직접적인 노사관계에서도 알기 쉽지 않은 것”이라며 “이러한 현황을 원청이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위장도급’ 내지 ‘불법파업’의 직접적인 증거도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실)

이를 두고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노동부의 수시근로감독 결과는 한마디로 ‘고용질서가 없다’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파업대체인력 확보 자료를 보면 ‘노동질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원청에 의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문제는 헌법상 노동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국정감사 과정에서 고용노동부에게 대책마련을 강력하게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도급업체들은 파업 효과를 없앨 목적으로 지방노동위원회에 자신의 사업장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2일 업체들은 중앙노동위원회에 “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중노위는 이를 받아들였다. 업체들은 이어 각 지역 지노위에 필공사업장 지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노위는 7일부터 노동자들을 조사할 계획이다. 지노위의 결정에 따라, 노동조합은 필수업무를 유지할 인원을 남기고 ‘반쪽짜리’ 쟁의행위를 해야 할 처지다.

희망연대노동조합 관계자는 6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노동조합이 경고파업을 하는 것은 사측의 교섭해태과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인데, 사측은 오히려 노동조합이 쟁의행위에 나서려고 하자 필수공익사업장 신청을 했다”며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면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다가, 쟁의행위를 하려고 하니 필수공익사업장을 만드려고 하는 것은 사측의 자기모순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부와 지노위가 통신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확하게 판단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원청와 하도급업체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그동안 노동조합이 성실교섭 및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SK브로드밴드 원청과 협력사 사측은 개통기사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조합원들의 일감뺏기로 생존권을 위협하고, 교섭해태로 일관했다”며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신청 이후에도 문제해결에 노력을 보이지 않아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의미로 사흘 동안(6~8일) 경고파업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 홍보팀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노조가 파업까지 가려는 정황들이 있었고, 원청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를 위해서 원청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한 차원에서 파악한 것”이라며 “불법적인 행위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파업을 해서 서비스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원청으로서는 이걸 해소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6일 오전 서울 을지로 SK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경고파업에 돌입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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