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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 직접 나와라” 간접고용의 기막힌 역사[토론회]수십 조 버는 재벌은 왜 노동자 일당 몇 만원을 빼먹는가
박장준 기자 | 승인 2014.08.19 13:52

자기 돈으로 영업실적을 채우고(자뻑), 부품을 만지는 시간만 분당 225원을 주고, 다단계하도급으로 진짜 사장이 누군지 알 수 없고, 자신도 모르게 반은 노동자 반은 사장이 되는 한국은 자본에게 간접고용의 천국이다. 역사는 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한국에서 하청·용역·파견 등 간접고용 문제가 최초로 촉발된 시기를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기억했다. 당시 한라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정주영 회장이 직접 나오라”고 외쳤다. 대기업에서 시작한 간접고용 문제는 1998년 IMF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확산됐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권영숙 노동위원장은 “자본에 의한 노동시장 재편”으로 표현한다. 직접고용 정규직이었던 청소, 경비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파견, 용역노동자가 된 시기도 이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류하경 변호사는 “간접고용의 핵심은 형식적 고용주와 실질적 사용자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업 입장에서 하청, 용역, 파견은 비용을 줄이면서 사용자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고용형태다. 9년 연속 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 1위, 2013년에만 45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인천공항의 정규직은 937명뿐이다. 반면 50여개 용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는 5990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86.5%를 간접고용하는 셈이다. 공공운소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에 따르면, 간접고용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정규직 대비 28%다. 믿기 어렵겠지만 208명의 공항소방대원(대장 포함)은 전원 2년 계약직이다. 3조2교대로 편성된 소방대의 담당지역은 여의도의 7배다.

   
▲ 18일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린 간접고용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간접고용 문제는 기업들의 공시자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고용형태 공시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87만 명으로 전체 20.0%다. 직접고용 비정규직 75만 명(전체 17.2%)보다 많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문제는 심각하다. 300인 이상 500인 미만 기업은 4.6%인데 1만인 이상 거대기업은 32.5%다. 파견이나 용역이 대부분인 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 64만 명을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분류하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은 33.9%로 늘어난다. 직접고용 비정규직까지 하면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43.8%가 된다. 대기업에 다니는 100명 중 44명은 비정규직, 34명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셈이다.

간접고용 문제는 임계점을 넘었다. ‘무노조 경영’ 삼성에서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삼성 서초동 사옥 앞에서 41일 동안 노숙농성을 벌이며 사상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건’은 이 문제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을 보여준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은 18일 국회에서 열린 <씨앤앰·티브로드 케이블방송 실태로 본 간접고용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토론회에서 “회사가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만 지켰더라도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교섭도 제대로 안 됐고, 파업을 해도 대체인력을 넣어 원천적으로 파업을 막아버렸다”며 “삼성 같이 수십 조 단위를 계산하는 재벌이 일당 몇 만원의 등골을 빼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 티브로드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농성장. (사진=미디어스)

삼성 LG SK 티브로드 씨앤앰 등 대기업 간접고용노동자들이 지난해부터 잇따라 노동조합을 설립한 이유도 여기 있다. SK브로드밴드는 IPTV와 인터넷을 설치하는 기사들을 ‘반은 노동자, 반은 자영업자’라는 기형적 형태로 고용하고 있다. LG유플러스에는 최대 4단계의 다단계하도급으로 방송·통신사업을 꾸리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같이 기본급 없는 건당 수수료 체계다. 케이블업계도 심각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실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제출받은 ‘케이블방송업체 간접고용/비정규직 현황’ 자료를 보면, 대기업이 소유한 5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은 최저 41.5%(씨엠비)에서 최대 70.2%(티브로드)에 이른다. CJ헬로비전은 68.7%, 현대HCN은 67.9%, 씨앤앰은 60.1%다.

2012년 대선을 전후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다. 지난해 티브로드와 씨앤앰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수십일 동안 파업을 통해 월급을 35~45만 원 끌어 올렸다. 희망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이들의 월평균 임금(실지급액 기준)은 200만 원 안팎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원청’은 돌아섰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케이블방송통신 불법 간접고용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원청 티브로드와 씨앤앰은 2013년 협력업체 교섭에 배석했지만 2014년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노동조합의 교섭요구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티브로드와 씨앤앰은 하도급업체의 동시다발 ‘공격적’ 직장폐쇄를 방치하고, 60일이 넘은 파업과 노숙농성에도 사태를 장기화하고 있다.

특히 두 원청 사업자는 지난 5월 말 노동조합의 ‘적정노동’ 시기부터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제3의 위탁업체와 소사장들을 활용해 업무공백을 메웠다. 씨앤앰의 경우, 하도급업체들이 임금총액 20% 삭감안을 제시했고, 그 사이 원청은 직접 각 지역·센터별 하도급업체 조합원들의 규모와 업무를 파악하면서 ‘노조 무력화’ 계획을 세웠다. 티브로드와 씨앤앰은 연인원 수천 명의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하루치의 4배에 이르는 20~25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씨앤앰은 5월 말부터 7월20일까지 8천여 명의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데 15억7천만 원을 썼다. 두 원청 사업자는 국회의 압박과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개입 의지에 사태 초기 ‘해결’ 의사를 보였으나 이내 입장을 바꿨다.

   
▲ 15일 밤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씨앤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 농성장 모습. (사진=미디어스)

티브로드와 씨앤앰은 지난해 원·하청과 노동조합, 그리고 국회까지 개입한 ‘사회적 합의’를 한 바 있다. 두 원청 사업자가 일 년이 채 안 된 시점에 합의를 파기하고 ‘임금 및 단체협약’ 후퇴안을 종용하는 배경을 두고 ‘이대로 가다가는 방송·통신 대기업에 간접고용 문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사업자들이 공동대응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씨앤앰은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맥쿼리가 직장폐쇄와 노조 파업을 이유로 이 참에 고정비용을 줄여 ‘매각가 높이기’에 나섰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남신 소장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조들의 성과에 기반한 급속한 업종 연쇄조직화에 대해 원청 사용주들이 자본간 담합과 결속을 통해 전면적인 탄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 케이블SO 관계자는 “티브로드와 씨앤앰 사태로 불똥이 튈 것을 걱정해 선제적으로 도급비를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일부 사업자가 이 같은 ‘달래기’에 나서고 있지만 대다수 사업자는 노동조합 깨기에 나서는 중이다. LG유플러스 하도급업체에서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에 가입하라는 ‘압박’이 시작됐다. 희망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씨앤앰·티브로드와 하도급업체들은 “노조에 더 이상 밀릴 수 없다”, “100~200억 원 손실은 감수하겠다”, “직장폐쇄하고 연말까지 가면 조합원이 이탈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노조에 전했다. 특히 두 회사 하도급업체들의 교섭을 대리하는 곳은 한국경영자총협회다. 이남신 소장은 “비정규직 조직투쟁을 막기 위한 재계의 담합과 압박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 티브로드 간접고용노동자들 농성장에 걸린 정당, 시민사회단체 플래카드들. (사진=미디어스)

민교협 권영숙 위원장은 “현대차와 GM대우 등 제조업이 만든 꿈의 ‘간접고용’ 공장이 서비스업으로 옮겨왔다”며 “노동3권이 부정돼 파업권 자체가 무력화되고, 고용이 불안한 불안정노동으로 노동시장을 재편한 대자본들이 ‘간접고용’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티브로드와 씨앤앰 문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총노동과 총자본의 싸움”이라며 “재벌 중심의 노동시장 재편 문제를 정중앙으로 겨냥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소장은 시민사회의 기업정보공개 운동과 함께 민주노총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며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신철 정책국장은 “정부와 자본은 간접고용 문제를 ‘핵심/비핵심’으로 분리해 얘기하고 있고,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비안전’ 프레임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 같은 틀을 깨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이종탁 위원장은 “‘파업권 무력화’ 목적인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을 막아내고 공격적 직장폐쇄를 막는 법제도 개선, 투쟁기간을 최소화하는 민주노총 차원의 집중, 간접고용 노동조합의 자율적인 연대 통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 조돈문 교수는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사회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고, 핵심에는 간접고용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남신 소장은 간접고용 투쟁 장기화, 합의 번복 같은 학습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장준 기자  wesh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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