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관련된 두 개의 파업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첫 번째 파업은 할리우드에서 시작되고 있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할리우드 창작자 7인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일러스트레이터, 아트 디렉터, 콘셉트 아티스트 등 영상 제작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기존 창작자들의 글·그림·사진 등을 마구 학습해 비슷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생성하는 인공지능 때문에 급격하게 일자리가 말라붙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분노는 투쟁 직전 상태이며 파업은 물론 생성형 AI 반대 국제 연대 투쟁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파업이 일어난다면 지난해 발생한 작가·배우 조합의 파업에 이어 AI로 인한 두 번째 할리우드 파업이 된다. 

다른 파업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규정된 집단행동권과는 다른 차원의 의사표시이지만 확산될 경우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일반적으로 파업이라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방 의료 서비스 확대와 필수 의료 분야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의과대학 정원을 2025년부터 2029년까지 해마다 2000명씩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의사협회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며 끝까지 저항할 것을 선언했다. 의협의 이런 결정에 주요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으로 호응하면서 의료대란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미국작가조합(WGA) 회원들이 2023년 5월 3일(현지시간) 뉴욕 넷플릭스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작가조합(WGA) 회원들이 2023년 5월 3일(현지시간) 뉴욕 넷플릭스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할리우드 파업의 경우 생성형 AI가 본격적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해 5월 이미 대규모로 발생한 사례가 있다. 할리우드 작가조합(WGA)과 미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의 조합원 수십만 명이 영상제작에 생성형 AI가 이용되는 것에 반대하면서 오랜 기간 파업을 했고 그 결과 제작사단체와 의미 있는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특정 배우의 이미지로 만든 가상 배우를 영상 제작에 활용할 경우 실제 배우에 대한 보상 규정과 작가들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AI를 활용한 시나리오 작업 제한 등이다. 요약하자면 배우와 작가에 대한 생계 보장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조만간 할리우드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두 번째 봉기의 주요 이유는 더 급진적이다. 파업의 결과로 얻은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는 것은 물론, 인간의 창작 행위 자체가 더 이상 의미 없는 행위가 될지 모른다는 근본적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할리우드 창작자들이 만든 글·그림·사진 등을 AI가 학습, 유사 이미지를 만들고 이것들이 바로 유통되는 것을 지켜본 창작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 충격적 소식이 며칠 전 보도되었다. OpenAI가 만든 동영상 제작 서비스 ‘소라(Sora)’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최대 1분 길이의 고화질 영상을 신속하게 만들어냈다. 영상의 품질도 매우 좋다. 문제는 계속 더 진화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할리우드의 사례는 기술의 발달이 기존 직업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경우다. 할리우드 창작자들의 우려가 실제 파업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실행되고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AI 활용에 대한 사회적 통제 또는 제약이 이루어질 수 있다.

비대면 진료(연합뉴스 자료사진)
비대면 진료(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면 의사들의 파업은 의료 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지난 18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 총리 대국민 담화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의사파업 대비책의 하나로 비대면 진료 폭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내용까지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의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면 원격 의료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비대면 진료는 의사들의 반대로 지극히 제한적 조건에서만 허용되었다. 코비드19로 인한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자 비대면 진료 조건이 완화되면서 많은 국민이 혜택을 봤고 비대면 진료에 대한 사회 인식이 좋아지면서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코로나 종료 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 종식 후 정부의 발표 내용을 보면 대면 진료가 원칙이고 비대면 진료는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돼 있다. 비대면 진료 대상은 의원급 의료기간 중심으로 시행하고 진료허용대상은 의사 환자의 상태를 충분히 알고 있는 만성질환자 재진 환자나 도서지역과 같은 의료 취약지 환자 등에 해당된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 보건복지부는 더 이상 의사협회 주장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하고 관련 법령 등의 개정을 통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미 비대면 진료 관련 기술은 개발돼 바로 적용될 수 있고 해외 몇몇 나라에서는 국내보다 더 개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대면 진료가 전면적으로 도입된다면 다시 말해 의료기기 시장이 개방된다면 그만큼 기술 역시 발전하게 된다. 기술은 이렇게 비극적 상황에서 그 몸집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카타스트로피적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과학과 기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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