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십여 년 전쯤 빅데이터가 한참 유행일 때 빅데이터에 대한 서로 다른 전망이 있었다. 하나는 빅데이터 미래에 대한 과도한 찬사였고 다른 하나는 빅테이터는 결국 테이터의 집합이라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론이었다. 한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례로 든 것 중 하나는 컴퓨터가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이미지를 컴퓨터가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컴퓨터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데이터의 축적과 데이터에 기초한 판단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과거의 주장들이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지능보다 더 탁월한 분별력을 보여주는 생성형 인공지능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로봇 전문업체 코보시스, 전동특수차 전문업체 화인특장과 함께 개발한 '무인 자동화 스마트팜 정식로봇'이 그 대표적 사례다. AI가 탑재된 이 로봇은 토마토 모종과 파프리카 모종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사실 농장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이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주말농장을 어느 정도 한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오이와 호박 모종도 육안으로 쉽게 구별하기 힘들다. 이 어려운 일을 AI는 쉽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개 로봇 팔로 모종 이식하는 스마트팜 정식 로봇 [사진=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공]
2개 로봇 팔로 모종 이식하는 스마트팜 정식 로봇 [사진=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공]

개와 고양이 구별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다. 실제 딥드림(Deep Dream), 달리(DALL-E),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이미지 생성 AI는 고양이 모습 정도가 아니라 특정한 종의 고양이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수초 내로 실행한다. 단순히 고양이 모습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맥락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고양이를 그려달라고 주문하면 그대로 그려준다. 고양이를 특정 화가의 화풍으로 그려달라는 요청 역시 가볍게 수행한다. 불과 수년 사이에 AI는 인간의 지능보다 고양이에 모든 것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고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활용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논의된 주요 어젠다였다. 2016년 서울에서 열린 이세돌 구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전 예측과 대결 후 보도도 그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체스와 달리 바둑은 경우의 수가 많아 오랜 기간의 습득 과정 및 실제 대국 경험이 많은 이세돌 기사가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사람들은 컴퓨터의 한계를 현장에서 목격하고 싶어했다. 당시 높은 시청률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결과가 알파고의 4승 1패로 끝났을 때 사람들은 그래도 인간 이세돌이 한판은 이겼다고 자위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두 사례는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기본적인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근대 과학문명의 철학적 기반은 결정론적 세계관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초기 자본주의 전성기의 대공장이었다. 잘 구축된 대량생산 시스템에서는 투입양과 생산량이 예측 가능했으며 특정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었다. 모든 것은 선형적 체계로 구성되었고 중요한 것은 최초 기획자의 지능이었다. 인간의 지능이 모든 것을 결정했으며  과학기술은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편리한 도구에 불과했다. 예측 불가한 또는 예측과 어긋나는 다른 결과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인 이세돌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대국을 벌인 이세돌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사고체계에 오래 익숙해져 온 상태에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AI 모두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기 쉽다. 즉 특정 목적을 위해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TV, 선풍기, 냉장고는 처음 기획자의 의도대로 만들어졌고 그 목적에 맞게 사용된다. 이것들은 그 처음 목적과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없다. 사람들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구성물 또한 처음부터 어떤 기획과 의도 하에 만들어졌다고 여긴다. 상품 기획의도와 용도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분명하게 제시되고 소비자들은 쉽게 이해한다. 일종의 결정론적 사고방식이 여기에서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챗GPT가 출시되어 인기를 끌자 챗GPT의 문제점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을 잘못 알고 있거나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처럼 서술한다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이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사이 AI는 이전보다 놀라울 만큼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그 진화의 속도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다. 인간 외 다른 개체에 지능이 있고 그 지능이 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AI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진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다. AI 역시 환경에 적응하면서 더 지능적이 된다는 것을 수용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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