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미국 할리우드의 작가와 배우 양대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작했다. 5월 할리우드 작가조합(WGA)의 파업 결정 후 수만 명이 LA·뉴욕 등에서 두 달째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고 16만여 명이 소속된 미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지난 14일 자정을 기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작가와 배우·방송인 조합의 동시 파업으로 할리우드의 콘텐츠 제작은 중단됐다. 파업의 이유는 스트리밍 수익 공유, 급여 인상, 연금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AI에 있다.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AI를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작가와 연기자들의 일자리는 없어지거나 남아 있다 하더라도 최소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에서 파업이 시작됐다. 

파업 시위 벌이는 할리우드 배우·작가들(AFP=연합뉴스)
파업 시위 벌이는 할리우드 배우·작가들(AFP=연합뉴스)

파업 참가자들은 AI가 당장 오늘이라도 자신들의 역할, 재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이들의 두려움은 현실적이었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실제 노사 협상 중에 제작자연맹은, 연기자들이 하루치 급여를 받고 촬영하면 연기자의 이미지를 동의나 보상 없이 제작자들이 원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AI로 작업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제안했다. 연기자들에게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배우들에게 중요한 초상권이 하루치 일당으로 영구 양도된다는 것에 동의할 연기자는 한 사람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동의한다면 이후 상황의 주도권은 제작자들이 갖게 되고 연기자들은 아바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런 우려는 연기자의 초상권에 그치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경우에는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AI가 쓴 시나리오를 할리우드가 채택하게 되면 할리우드에 남게 될 작가들은 거의 없거나 아주 극소수에 그칠 기능성이 많다. AI는 시나리오를 쓰고 평가는 제작자나 감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확산되면 AI 시나리오가 폭넓게 활용된다. 아직 AI가 쓰기 힘든 생소한 분야나 다큐멘터리 영역에서는 사람 시나리오 작가를 쓰겠지만 이런 분야 역시 오래 생존하기는 힘들다. 쉽게 쓴 시나리오는 명작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생성형 AI는 제작자 또는 연출자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수정을 할 수 있어 이런 주장의 유효기간도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다. 

AI의 공습이 미래가 아닌 현실이라는 면에서 할리우드의 작가와 배우 양대 노동조합은 절박해 보인다.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언제 끝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일부 전문가는 몇 달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파업의 결과다. 어떤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든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영향은 할리우드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 영화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파업이 성과 없이 끝난다면 이후 영화나 드라마의 주도권은 AI를 활용할 수 있는 제작사에게 귀속될 가능성이 많다. 인간 연기자들의 역할은 일회적이고 소모적 역할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파업 참가자들이 AI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그런 부정은 가능하지도 않다. 일단 발명되고 활용되는 기술을 무시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산업혁명 시기에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지만 우리 모두 잘 아는 것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기계화로 인한 대량실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 후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과 임금 조건은 개선되었고 신기술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변화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이번 파업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파업을 통해서 AI가 인간 창조 활동의 보조 수단이고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파업 결정 발표하는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로이터=연합뉴스]
파업 결정 발표하는 미국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로이터=연합뉴스]

구체적으로 노사 협상을 통해 배우와 작가의 직업을 보호하고 노동권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AI를 사용할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AI를 사용하는 방법과 수집하는 데이터에 대한 투명성, 자신의 연기나 창작물을 AI가 활용했을 경우 배우나 작가의 사전 동의, AI로 생성된 콘텐츠를 만든 배우와 작가의 공로를 인정하고 적절한 이윤 분배 시스템을 만드는 것, 스튜디오와 프로덕션 회사는 콘텐츠에 AI를 사용하는 데 대해 책임 등에 관한 문제가 정리되어야 한다. 협상을 통해 할리우드는 이러한 원칙에 동의하고 배우와 작가의 직업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동안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여러 분야에서 충격과 갈등이 발생했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우리는 AI가 작곡을 하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예술이란 무엇이고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있다. AI가 만든 결과물에 지적재산권을 부여할 수 있는지 사회적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논쟁과 질문은 충분히 생산적이며 미래지향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AI가 자본과 결탁되어 인간의 노동을 일회적, 부수적 차원으로 격하시키고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일은 막아야 한다. 할리우드의 파업이 AI 시대에 중요한 이유다. 어느 경우에든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주인공은 인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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