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호모사피엔스만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돼 오던 것들이 하나둘씩 인공지능에게 넘어가고 있다. 낮은 차원의 인간지능에 대해서는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고 추상적 사고, 예술적 심미안과 같은 높은 차원의 영역도 어느 정도는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에 더해 또 하나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인간의 감정을 분석할 수 있다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동안 감정은 지능보다 더 인간적인 요소라고 생각되었다. 특정 감정이 표현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이 삶의 시간 동안 고유하게 겪은 경험이 몸과 표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치화되기 힘들다고 생각되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김지윤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착용형 인간 감정인식 기술’은 인간의 감정 역시 분석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연구팀은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기 위해서 두 개의 주요 요소를 상정한다. 하나는 얼굴 근육이 변화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음성이 변화하는 모습이다. 구체적으로 미간, 눈, 코, 입술, 턱 및 성대에서 발생한 전기신호를 감지하여 얼굴 피부의 긴장 정도 및 성대 진동 정도를 포착한다. 일차적으로 얻은 이 데이터를 ‘개인화된 피부 통합 안면 인터페이스’로 보내면 모아진 데이터를 분석해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분석해 준다.  

감정 인식 무선 안면 인터페이스 개념도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감정 인식 무선 안면 인터페이스 개념도 [울산과학기술원 제공]

이를 위해서 연구팀은 얼굴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동시에 인지할 수 있는 다중 모드 마찰 전기 센서, 무선 데이터 전송을 위한 데이터 처리 회로 및 딥러닝 분류기로 구성된 개인화된 피부 통합 안면 인터페이스 시스템 등을 고안했다. 연구팀은 인간 감정 분석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수치로 표현 가능한 물리적 신호라고 판단하고 머리 위 여러 부분에서 흐르는 모든 전기신호의 수집, 전송, 분석을 위한 시스템 일체를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취합된 데이터들은 글자 그대로 순수 데이터들의 집합이다. 기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데이터의 신뢰성은 손상되지 않는다. 

연구팀이 물리적 데이터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기존 분석 방식에 대해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한 논문에서 얼굴 표정의 이미지나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는 방법은 조명 조건, 소음 간섭, 물리적 장애물과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방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 인지 후 대안으로 등장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텍스트 분석을 통한 감정 분석 역시 언어 고유의 다양한 모호성과 새로운 용어의 지속적 도입으로 감정을 정확하게 감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신체 여러 곳에서 전기신호는 계속 흐르고 기기가 고장 나지 않는 한 물리적 데이터는 계속 축적된다. 이 데이터는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분석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실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맞느냐, 감정 표현이 맞는다면 제대로 표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몇몇 테스트가 진행되었다고 논문에 나와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 행복, 놀람, 혐오, 분노, 슬픔과 같은 특별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물리적 데이터 역시 구별적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인공지능(AI) 관련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공지능(AI) 관련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적어도 이 기술은 테스트 베드 차원에서는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제 남은 과제는 데이터의 체계적 분류와 해석이다. 같은 감정이라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른 수치를 보일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보편적 또는 체계화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 단순히 행복, 놀람, 혐오, 분노, 슬픔과 같은 큰 카테고리 정도로만 분석한다면 모르겠지만, 그 이하로 내려가서 더 세밀하게 감정의 상태를 분류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랜 기간 데이터 분류작업이 필요하다. 성별, 연령별, 인종별에 따른 차이 또한 적절하게 고려되어야 의미 있는 솔루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기대와 우려와는 별도로 이 기술은 감정 역시 데이터의 집합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철학적, 신학적 어젠다를 던져준다. 그동안 감정은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육체와 정신의 상호작용이라고 여겨져 왔고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속성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기술은 이제 이런 오랜 사고도 조금씩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우리는 호흡, 맥박 등 신체 데이터에 의해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기기 사용을 경험하고 있다. 이 기술은 기존의 심리 분석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의 영역까지 진입하고 있다. 다시 우리는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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