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참사 피해자에 대한 배상·지원책을 발표했다. 오직 진상규명만을 요구해 온 유가족들은 "돈으로 모욕하냐"며 정부를 규탄했다.
30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헌법 질서에 부합해야 하나, 이번 법안에 담긴 특조위는 그 권한과 구성에서부터 이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며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과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취임 1년 8개월 만에 9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다 기록이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특조위를 구성해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를 밝히는 것이 골자다. 현재까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진 고위공직자는 전무하다.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국회의장이 3인, 여당과 야당이 각각 4명씩 추천한다. 특조위는 형사재판이 확정된 사건이나 불송치 또는 수사가 중지된 사건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정부는 ‘10·29참사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의료비·간병비를 확대하고, 재판 확정 전이라도 배상과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울러 ▲희생자 추모시설 건립 ▲신체적·정신적 피해 노동자에 대한 치유휴직 지원 ▲심리안정 프로그램 운영 ▲피해 아동 지원 등의 대책을 밝혔다.
그러나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정부에 요구한 것은 '진상규명' 한 가지였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지원책 발표에 울분을 토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성명을 내어 “유가족들이 바라고 요구했던 것은 오로지 진상규명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끝내 배보상을 운운하며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묵살했다”며 “어떻게 진상규명의 책임은 외면하면서 돈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이렇게 모욕할 수 있나. 참담함을 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최소한의 명분도 근거도 없는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은 국민적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진실은 반드시 드러날 것이고 참사의 진상규명과 정의를 바라는 국민의 뜻은 기필코 이루어질 것이다.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은 지난 29일 윤 대통령의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참사 현장에서부터 대통령실까지 진행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아내의 범죄 의혹을 덮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대규모 인명참사가 발생한 진실마저 가로막으려 하는 것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거부권”이라고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는 “(특별법은)정부·여당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국회의장 중재안”이라며 “민주당은 법에서 특검을 제외하고 법안 시행을 총선 이후로 했으며 특조위 활동 기간도 단축하는 등 양보의 양보를 거듭했다. 정당성 없는 거부권 행사는 대한민국을 참사에도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진실규명 노력도 없는 나라로 추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어 “국가의 무능과 부재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했어도 국가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원하는 유가족들을 돈으로 입 막겠다고 기만하는 윤 대통령을 확인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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