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정부가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일방적인 배상·보상안을 발표해 유족들이 모욕감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이태원 특별법이 위헌적·정치적이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을 답습하며 유족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논조를 나타냈다. 반면 동아일보는 참사 현장을 다시 찾아 진상조사로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30일 서울광장 10·29 이태원참사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 유족들이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30일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재의요구안을 재가하는 방식이었다. 취임 1년 8개월 만에 9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민주화 이후 최다기록이다. 

이날 정부는 참사 피해자 지원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피해자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의료비·간병비를 확대하고, 재판 확정 전이라도 배상·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유족들은 "진상규명 요구는 무시하고 돈으로 희생자와 유족을 모욕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31일 서울신문은 사설 <이태원 참극, 정쟁 아닌 치유의 해법 찾기를>에서 이태원 특별법은 위헌적·정치적 요소가 다분한 법이라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했다"고 썼다. 

서울신문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 범위와 권한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과도한 것은 이 법안이 가진 근본적 결함"이라며 "특조위 구성 절차에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결여된 것은 거대 야당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입법이라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 준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 피해자와 유가족 지원이라는 치유의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은 "무엇보다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막대한 예산과 행정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국민 분열만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는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된다"며 "동행명령, 수사기관 고발권, 출국금지 요청권 등 특조위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 입법 배경에 더불어민주당의 정쟁 의도가 도사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11일 사설<野 핼러윈특조위 강행, 또 ‘재난의 정쟁화’인가>에서 "핼러윈 참사는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인파가 몰려 빚어진 사고였다. 안타까운 참사였으나 감춰진 진실이 따로 있다는 의혹이 없다"며 "미흡한 현장 관리와 대처로 서울경찰청장,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23명이 이미 사법 처리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수언론에서 '수사와 진상조사는 다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사는 개인의 불법행위 입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참사를 야기한 구조를 규명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 신광영 논설위원은 31일 기사 <[수요논점]이태원 참사, 수사로 진상조사를 대체할 순 없다>에서 참사발생 1년 3개월만에 다시 현장을 찾아 취재한 결과물을 전했다. 신 논설위원은 이태원 참사 이후 관제센터·경찰상황실에서 인파 밀집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일부 변화가 시작됐지만, 근본적인 원인규명과 성찰이 이뤄지지 않아 '땜질처방'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2022년 10월 30일 사고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2022년 10월 30일 사고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 논설위원은 "유족과 생존자들이 제기하는 이 질문들은 안전관리 부실 그 자체보다 안전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원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신 논설위원은 ▲지자체·경찰·소방은 인파 밀집이 우려돼 현장 통제가 필요하다는 사전 논의·보고에도 왜 대비하지 않았는지 ▲참사 시작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는데도 왜 조치가 없었는지, 용산경찰서가 서울경찰청에 했던 기동대 지원 요청은 왜 묵살됐는지 ▲용산서장은 참사 시작 40분 전 상황보고를 받고도 도보 10분 거리인 사건현장을 두고 왜 관용차에서 50분이나 허비했는지 정확히 드러난 게 없다고 했다. 

이어 신 논설위원은 '이미 수사가 이뤄져 실체 규명이 충분히 됐다'는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 논리에 대해 "대형 참사 처리에 있어 수사 중심의 접근은 한계가 뚜렷하다. 수사는 수사 대상이 될 만한 일부 개인의 행위가 형법에 위반되는지를 확인할 뿐 사건을 야기한 원천적 환경과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규명하진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논설위원은 "수사를 통한 사건의 재구성은 불법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중심으로 관련 법리에 부합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제한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며 "'재발 방지'라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면서 참사의 시작과 끝을 촘촘히 밝히려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독립된 전문가 중심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후속 조치에 관여한 경찰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이태원 관련 의사결정자들이 만약 '세월호 같은 여객선이 침몰할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철저히 대비하고 조치했을 것"이라며 "압사라는 경험해 보지 못한 위험을 상정하지 못해 일을 그르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단순히 인파 관리를 잘하라거나 특정 기관에 ‘앞으론 너희가 책임지라’는 식의 1차원적인 대응으로는 제2, 제3의 참사를 막기 어렵다"며 "이태원 때와는 다른 새로운 위험을 예민하게 인지하고 막을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서울신문과 같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불기피했다'면서도 "여권도 거부권 행사를 끝으로 이태원 특별법 문제를 마무리하려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민심이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이 159명이나 죽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냐'는 상식적 여론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사설 <野 단독 처리에 거부권 반복, 유족 슬픔은 누가 헤아리나>에서 "159명이 사망한 참사를 단지 정쟁으로 치부하는 것은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 하루아침에 자식과 형제들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에게 억울함이 있다면 찬찬히 들어줘야 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라며 "정부는 지금까지 진심으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게다가 잇따라 부적절한 발언을 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당시 산악회 음주로 연락두절된 윤희근 경찰청장 등 핵심 지휘부가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은 유족들의 응어리가 됐다"며 "실제 참사 당시 우리 정부는 즉각적인 대응도 하지 못했고, 보고 체계도 엉망이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새해맞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불교 대축전'에서 합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새해맞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불교 대축전'에서 합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한국일보는 30일 사설 <이태원특별법 거부 가닥... 유족 원하는 게 지원책인가>에서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소중한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은 비극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혀 책임을 분명히 가려달라는 것"이라며 "159명이 희생된 참사가 일어난 지 15개월이 지났건만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윗선 문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검찰의 기소 지연으로 지난 19일에서야 떠밀리듯 재판에 넘겨졌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31일 사설 <맹탕 수사하고 이태원법도 거부한 국가의 불통과 독단>에서 "특별법은 특조위를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나 국회 국정조사는 참사의 발생 원인, 미흡한 대처, 책임소재 등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밝히지 못했다"며 "관련 기관에서 사실을 감추기 급급했고, 자료를 없애는 등 수사·국조 방해 시비까지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159명의 생때같은 젊은 목숨이 희생된 사회적 대참사에서 맹탕 수사와 진상 조사 외면, 책임 회피, 책임자 봐주기로 일관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인가"라며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정부처럼 이 정부도 이태원 참사를 정쟁이란 틀에 묻어버릴 건가"라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 막겠다고 거부권 쓴 윤 대통령>에서 "왜 159명이나 되는 시민이, 세계적인 도시라는 서울 한복판에서, 그토록 짧은 시간에 희생됐는지는 여태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며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일부 조항을 침소봉대하며 법안 자체를 거부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피해 지원 종합대책'이란 걸 들고나온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정확한 진상을 모르는데 배상·지원부터 하겠다니 본말전도 아닌가"라고 했다.

한편,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특별법은 유족과 야당이 최대한 양보한 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홍 원내대표에 따르면 최대 쟁점은 특조위 구성에 관한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여당의 동의없이 특조위원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민주당은 국회의장이 특조위원장을 정하도록 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이태원 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민주당 추천 4인, 국민의힘 추천 4인,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협의해 추천하는 3인 등 총 11인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특조위 의결로 상임위원 가운데 선출한다. 

홍 원내대표는 3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통화에서 "사실 유족측에서 (이태원 특별법)통과 당시에 뭐라고 얘기했냐면, '어렵게 애써준 민주당에게 고맙긴 하지만 박수 쳐주고 싶지 않다' 그랬다. 그분들 눈높이에 맞지 않았던 것"이라며 "여당과 협상은 해보겠지만, 여당이 기존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면 사실상 재협상의 실질적 진전이 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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