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른바 양대세력의 오늘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는 유권자들이 많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 출범 이후 ‘한동훈 대 이재명’ 구도를 만들어 정권심판론 프레임을 돌파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특검법, 윤심 공천 등 문제에 대해 ‘윤석열 아바타론’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적 문제를 안고 있거나 성비위 논란에 휩싸인 인사들이 공천 과정에 적격 판정을 받은 사례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정치 테러에 대한 수사를 둘러싼 논란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러니 정권심판 여론을 당이 온전히 흡수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제3지대’는 잠재력이 있다. 그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제3지대’가 기성 정치와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점을 확인하기 어렵다.
가령 각자 당을 따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하는 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현재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주축이 된 개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탈한 이들이 만든 조직이 시작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런데 이낙연 전 총리와 더불어민주당 탈당 3인방이 각자 창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다수 유권자들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제3지대’가 총선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첫째, 하나의 조직으로 재편돼야 한다. 둘째, 기호 3번을 확보할 수 있는 숫자의 현역의원이 합류해야 한다. 정의당 상황으로 보면 그 숫자는 대략 6~7명 정도다.
시작점에서 가장 유리한 입장에 선 것은 ‘미래대연합’ 창당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3인방이다. 시작부터 현역의원 3인을 갖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가 앞서가니 우리 중심으로 모이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입장에서 보면 이낙연 전 총리가 시작부터 함께하는 건 메리트가 없다. 미래대연합이 ‘이낙연 신당’으로 비춰지면 확장성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낙연 전 총리는 현역의원도 아니고, 움직일 수 있는 현역의원을 확보한 상태도 아니다. 호남에서의 여론도 그다지 호의적인 것 같지 않다. 그러니 “나중에…” 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이낙연 전 총리 입장에선 정치를 그만둘 것도 아니고 대선까지 가는 과정에 자신이 뭔가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번 판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그러나 ‘현찰’은 없는 상태이므로, 판에 끼려면 실제 창당을 해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니 독자 창당을 감행하며 “나 아직 안 죽었어!” 하는 거다.
어쨌든 속도를 내는 모양새가 뚜렷한 민주당 계열 신당에 비하면 이준석 전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은 속도조절에 가까운 모양새인데,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첫 번째는 지지층의 존재이다. 다른 정당과 비교하면 이준석 전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은 뚜렷한 대중적 지지층이 있다. 이들은 개혁신당의 당원 상당수를 차지할 것인데, 이 때문에 다른 세력과의 연대 연합 논의를 이준석 전 대표 혼자서 이끌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 지지층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한 거다.
두 번째는 여당 내 공천 파동의 가능성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여당 내 공천 학살 등의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이 경우 공천을 받지 못한 현역의원이 개혁신당에 추가 합류하는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만일 이 규모가 충분히 크다면 개혁신당은 단숨에 제3지대 안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어쩌면 단독으로 기호 3번을 확보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혁신당이 누구 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머지가 개혁신당 밑으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이준석 전 대표는 연일 최소한 대선까지는 동행할 수 있는 세력에 동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총선 후 다시 국민의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개혁신당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이른바 ‘마크롱 모델’을 지향하겠다는 절반의 진심도 있어보인다. 원래 당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대선을 경유해 최소 양당 중 하나를 대체하는 세력이 되는 것을 꿈꾸겠다는 거다. 문제는 이 경우 누가 ‘마크롱’ 역할을 할 것인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거고, 그 경쟁이 이미 시작된 측면도 있다는 거다.
이런 조건들을 보면 일각에서 얘기하는 ‘가치관과 노선의 차이’는 오히려 통합 문제에서 핵심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누가 어떻게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정치라는 건 현실이므로 주도권 경쟁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이런 사정을 모르리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제3지대’를 말하는 이들이 별로 절박하지 않고 기성 정치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치 문법을 모두 부숴버리겠다는 각오 없이 양당 체제 극복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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