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케이팝은 세계화의 또 다른 챕터에 들어선 상태다. 크게 보았을 때 케이팝이 세계화된 시기를 몇 개의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2000년대에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1기,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까지 아시아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남미 등 비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한 2기, 2010년대 중후반부터 BTS가 북미에서 스타가 되며 서구 시장이 열린 3기, 그리고 2020년 팬데믹이 도래한 이후 지금까지의 시기다.

이 시기 동안 온라인 비대면 콘텐츠가 메인 상품이 되며 해외 시장 비중이 커지고 케이팝은 한층 글로벌 산업이 되었다. 음반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팬데믹이 해제된 후엔 많은 그룹이 앞다투어 글로벌 투어에 도전하고 있다. 시장의 중심은 국내에서 해외로 넘어갔고 예전보다 보편적인 진입 문턱이 낮아진 서구시장 공략이 케이팝 신 공통의 ‘최종 미션’이 된 상황이다.

202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룹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빅히트 뮤직 제공=연합뉴스]
202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그룹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빅히트 뮤직 제공=연합뉴스]

산업적 측면에선 짧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외연이 확장돼 온 상황이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최근까지 다른 인종, 다른 문화들과 괴리된 환경의 국가에서 생산되어 온 문화가 경계를 넘어 확산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이다. BTS만 해도 다양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멤버 중 한 명이 원폭 사진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었던 것이 논란이 돼 일본 음악방송 출연이 취소된 적이 있고, 나치 군복 모자를 쓰고 찍은 화보가 뒤늦게 지탄받고, 한 멤버의 믹스 테이프에 집단 자살 사건을 벌인 해외 사이비 교주의 육성이 샘플링돼 비난받았다. 이 사건들은 해외에서 금기시되는 코드에 대한 인식 부재에서 비롯한 사건이다. 한국 사회 자체가 글로벌 사회에 대한 교양과 상대화된 자기 인식이 부족한 면이 있어 커져 버린 산업의 외연을 인식적 잣대가 쫓아가지 못한 것이다.

몇년 간 불거졌던 케이팝의 ‘문화적 전유’도 마찬가지다. 문화적 전유는 특정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의 문화적 요소나 정체성을 전용하는 걸 뜻한다. 마마무의 ‘블랙 페이스’ 논란,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의 힌두교 신상 소품, 오마이걸 유아 뮤직비디오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이미지 차용 등이 논란이 됐다. 문화적 전유 자체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이 역시 로컬 장르가 글로벌 장르가 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시행착오이며, 알면서 저지른 게 아니라 순전히 모르기 때문에 벌어졌다. 즉, 학습하고 교정을 하면 된다. 해외 시장 의존성이 큰 기획사들은 비판이 나오면 대부분 사과하고 조치를 취한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 '하우 유 라이크 댓' 편집 전과 후 (힌두교 신 가네샤의 모습이 있는 블랙핑크의 뮤비(왼쪽)와 삭제된 후의 장면) [네티즌 트위터 캡처]
블랙핑크 뮤직비디오 '하우 유 라이크 댓' 편집 전과 후 (힌두교 신 가네샤의 모습이 있는 블랙핑크의 뮤비(왼쪽)와 삭제된 후의 장면) [네티즌 트위터 캡처]

진짜 문제는 개별 사례를 떠나 케이팝 콘텐츠가 창작되는 원산지이자, 사회적 차원에서 해외 여론과 소통을 하는 국내의 문화적·윤리적 관점과 경향성이다. 문화적 전유뿐 아니라 케이팝에 관해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글로벌 이슈가 발생하면 국내 팬덤과 여론은 비판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벌어지며 미국 현지에서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 연대를 요청할 때, 국내에선 거기 응하는 것이 옳은지 찬반 논쟁이 벌어졌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보수적 경향과 케이팝을 둘러싼 국수주의, 나아가 케이팝의 정체성에 깃든 부정교합에서 빚어진다.

여론 차원에선 ‘PC’(정치적 올바름)으로 대표되는 마이너리티 이슈에 거부감이 존재하고 해외 여론의 비판 또한 그 연장선에서 받아들여진다. 국제 사회에서 강대국의 입지를 점한 역사가 없기에 자국의 행위 주체가 타 문화권에 어떤 종류의 침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한편 개별 아티스트나 콘텐츠에 대한 비판을 케이팝 자체, 나아가 한국에 대한 비판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BTS의 성공 이후 케이팝은 다른 아시아권 문화 산업과 차별화된 글로벌 메인스트림처럼 호명되며 국가적 자의식이 의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케이팝이 곧 국가적 위신으로 여겨지기에 비판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산업에 깃든 명암을 성찰하려 해도 외면되거나 기각된다.

아메리칸뮤직어워즈 美 3대 음악상 중 최초로 K팝상 신설, K팝 아티스트상 후보 [이미지 출처=AMA 트위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美 3대 음악상 중 최초로 K팝상 신설, K팝 아티스트상 후보 [이미지 출처=AMA 트위터]

익히 알려졌다시피, 케이팝은 미국에서 이민자, 소수 인종 등 마이너리티가 향유하며 팬덤이 형성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에선 국가와 민족 같은 메이저 집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소비된다. 산업이 글로벌하게 확장될수록 국내에선 케이팝이 국수주의적 이념으로 변환돼 배타적으로 재정의 되는 구조다. 로컬 산업의 성질과 글로벌 산업의 성질이 공존하는 동시에 서로 밀어내는 지점, 이 엇물림이 케이팝이 울려 퍼지는 무대 아래 깔린 균열이다.

이건 윤리적 차원을 넘어 산업의 기반을 침식할 수 있는 요소다. 국내에서 반중·반일 여론이 고조되며 엔터 회사들은 중국, 일본 시장에 커넥션을 확장하는 데 견제와 압력을 받고 있다. 한편으론 미국이란 신대륙이 나타났고 이제 아시아 시장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투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낙관론이 기사로 발행된다. 이런 동향은 케이팝에 걸린 국가적 자부심, 인접 국가들에 대한 경쟁의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케이팝은 세계화되었지만, 케이팝을 낳은 이 사회는 아직 세계화되지 못했다. 이 점을 직시하고 케이팝을 문화나 산업 자체로서 좀 더 건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계화는 한국의 문물이 세계 각지로 나아가 주둔하는 일방향의 과정이 아니며, 다른 정체성들을 우리 사회의 기준 아래 복속시키는 소제국주의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세계화는 지금 이곳에 타국의 정체성들을 받아들이는 한편, 서로의 문화를 매개로 평등하게 교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