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 사태는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피프티는 어트랙트란 이름 없는 기획사 그룹이다. 케이팝 사상 최단기간 빌보드 핫 100 차트 진입의 기염을 토한 후 외주 기획사 더기버스가 그룹을 빼돌리려 한다는 논란이 생겼고, 멤버들은 어트랙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 상태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피프티 사태의 유일한 출구는 어트랙트 측 제안에 따라 소속사와 그룹이 재결합하는 것이었다. 법정 공방이 결론 나려면 한 세월이 걸린다. 그동안 국내 이미지는 복구하기 힘들어지고 해외 성공을 이어갈 모먼트도 놓친다.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피프티 2기’ 제작은 황당무계한 소리다. 어트랙트 같은 작은 기획사가 그만한 제작비를 다시 조달하기도 힘들고 독자적으로 그룹을 성공시킬 역량도 불분명하다. 피프티는 회사를 배신했다는 여론이 고착된 채 활동을 강행해 봐야 그룹 장래는 물론 멤버들 인생에 해가 될 수밖에 없다. 멤버들 인생이야 어찌 되든 돈만 벌면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그건 피해야 하는 결론이다.

하지만 어트랙트가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8월 5일이 훌쩍 지난 지금, 사태의 비상구는 폐쇄돼 버렸다. 지난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피프티에게 유리한 편파 방송을 했다는 의혹으로 역풍을 맞으며 실타래는 더더욱 엉켜서 잡아당길 가닥조차 보이지 않는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빌보드와 걸그룹 - 누가 날개를 꺾었나’ 편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빌보드와 걸그룹 - 누가 날개를 꺾었나’ 편

생각해 보고 싶은 건 피프티 사태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논란 이후 피프티를 통해 ‘케이팝의 지속적 발전이 가능한 구조’를 돌아보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피프티를 비난하는 여론은 피프티의 성공이 “원히트 원더”일 뿐이라고 치부하곤 한다. 전자가 피프티의 추락을 케이팝의 구조적 문제와 무리하게 엮어 보려는 시도라면, 후자는 피프티의 성공을 지나치게 예외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태도다. 다른 한편 피프티의 빌보드 입성 직후엔 “케이팝의 새 역사를 썼다”는 피상적 수사가 언론 지상을 뒤덮었었고, 이는 그 성공을 케이팝의 성취로 편입시키려는 태도다. 피프티의 성공은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할 수도 없지만, 케이팝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케이팝에 대한 그 비대표성이 그들을 둘러싼 여러 상황에 대한 열쇳말이다.

피프티 사태는 ‘케이팝의 구조’를 돌아볼 사례로선 산업의 관례와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 소속사와 아이돌 사이 전속계약 분쟁은 흔한 사건이지만, 데뷔 직후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봐도, 중소기획사 신인 그룹이 1인 1실∼2실의 숙소와 영어 레슨까지 제공받는 건, 케이팝 산업의 이면에 깔린 어둠 같은 것과 거리가 멀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케이팝의 “지속 발전 가능한 구조”를 톺아보고 싶었다면, 오히려 중소기획사가 기적적으로 거둔 결실이 “지속”되지 못하도록 분쟁을 만든 정황과 주체를 더 엄정하게 들여다보는 게 옳았을 것이다. 작은 기획사가 일군 성공에 대한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고 큰 자본에 의해 전유되는 사례가 관행이 된다면, 케이팝 생태계의 저변과 공정성을 해칠 것이라고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현 사태의 선행 사건이 된 피프티의 노래 ‘큐피드’의 흥행 역시 성공 비결을 다른 각도에서 짚어 볼 수 있다. 많은 매체들이 분석을 내놨고, 해외 시장 맞춤형 프로듀싱과 틱톡에서의 유행 등을 원인으로 진단했다. 유효한 의견이지만 근본적인 성질을 짚어 보면 ‘큐피드’가 해외의 일반적인 청취자들, 비 케이팝 팬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 케이팝 신 내부에서 아무런 지분이 없었던 그룹 인지도를 봐도 그렇고, 무엇보다 빌보드 핫 100 차트인 기간을 보면 명백하다.

서울 강남구 어트랙트 앞 (서울=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어트랙트 앞 (서울=연합뉴스)

빌보드 핫 100 상위권 노래들은 보통 차트인 기간이 반년에 이를 만큼 롱런한다. 팬덤의 음원 스트리밍과 다운로드에 기반을 두는 케이팝 노래들은 훨씬 더 차트인 기간이 짧고, 빌보드가 몇 년 간 ‘음원 총공’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집계 방식을 바꾸면서 더 짧아졌다. ‘큐피드’는 이런 상황에서 무려 22주째 차트에 머물고 있다. 케이팝 역사상 BTS의 ‘Dynamite’ 32주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31주 다음 가는 기록이고, 여전히 20위권에 올라 있어서 역대 최장 기록을 쓸 가능성도 있다.

이 상태는 케이팝 글로벌 영향력의 동력과 한계를 모두 가리킨다. 케이팝은 팬덤 음악이기에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비아시아 지역에선 여전히 팬덤 음악일 뿐이다. 케이팝의 빌보드 차트 지속력이 약한 건 라디오 에어플레이 약세가 주요 원인이다. 현지 방송국의 보수성 때문이겠지만 현지에서 라디오가 범 계층적인 매체이며 그래서 특정 인종과 계층에 치우친 케이팝에 괴리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큐피드’의 흥행 비결을 다시 짚자면, 이 노래는 케이팝으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케이팝이 떠안은 불리함을 회피할 수 있었다. 기획 단계부터 케이팝 신 바깥의 해외 대중을 노렸다고 하는 프로듀서의 인터뷰를 봐도 의도된 전략의 결과이며, 영어 번안 가사는 물론 전혀 노출되지 않은 무명 신인 그룹의 입장이 역으로 확장성을 발휘한 것이다. ‘큐피드’가 ‘틱톡 픽’이란 말 역시 폄하가 될 수 없다. 해외에선 틱톡이 이미 음원 히트의 통로로 자리잡았고, 틱톡 바이럴 공세를 펼치는 다른 케이팝 그룹들은 그만큼 흥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 [어트랙트 제공]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 [어트랙트 제공]

피프티의 해외 성공을 곧 케이팝의 성취라고 보는 건 케이팝에 대해서나 피프티에 대해서나 알려 줄 수 있는 사실이 없다. 마찬가지로 소란스러운 전속계약 분쟁을 미뤄두고 좀 더 커다란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피프티’란 존재를 이 산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소화하려면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케이팝 기획사 시스템의 일부에 속하지만, 주류 케이팝 시장에 낄 수 없는 중소기획사가 그 시장 바깥으로 나아가며 케이팝의 외연을 넘어선 그 ‘변종성’을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케이팝의 본질일지 모른다. 국적과 문화의 경계가 뒤섞이고 산업의 콘텐츠와 외연이 계속해서 확장되며 발전해 온 혼종성과 환경에 대한 진화능력이다.

케이팝은 현재 신인 걸그룹이 대거 등장했고, 여전히 이전 세대 그룹들, BTS와 블랙핑크가 해외에서 케이팝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신인들은 역설적으로 케이팝의 경계 안에 덜 갇혀 있는 상태다. 뉴진스가 데뷔와 함께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하고 몇 주 정도 기간 동안 차트 지속력을 발휘한 건 케이팝 신 주류에도 ‘큐피드’와 같은 확장성을 얻을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케이팝 빅네임들이 팬덤 음악으로 성공했다면, ‘큐피드’는 팬덤 없이 노래만 성공했다는 점에서 역시 불완전한 모델이다. 이 두 가지 모델을 융합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러니까 팬덤 산업으로서 비팬덤 음악의 확장성을 얻는 그룹이 탄생한다면, 케이팝의 한계를 다시 한번 넘어서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케이팝의 새로운 세대가 진정으로 도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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