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엠넷은 몰락하고 있다. 변명할 수 없는 객관적 지표, 수치가 말해준다. 엠넷의 대표 방송이자 역대 최장 기간 방영된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작년 열한 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연간 편성표에서 사라졌다. <쇼미더머니> 11의 최고 시청률은 고작 1.2%였고 5화를 지나며 0%대로 주저앉았다. 10년 넘게 장수한 간판 방송의 대미는 망신과 망조였다. 이뿐이라면 글을 쓰지도 않았다. 엠넷을 먹여 살린 주력 라인업이자 케이팝을 대표하는 방송사라는 허명을 안겨 준 아이돌 오디션 방송도 줄줄이 쪽박을 찼다. 2020년 <I-LAND>는 평균 시청률 0.9%였고, 21년 <걸스플래닛 999>는 11회 모두 0%대였고, 올해 방영된 <보이즈플래닛>은 그래도 마지막 2회 차에선 1%는 넘었다. 이미 데뷔한 아이돌을 모아 서바이벌을 연 <퀸덤> 시리즈 세 편 역시 단 한 번도 1%를 초과한 적이 없다.

'투표조작 의혹' 오디션 프로그램 (CG) [연합뉴스TV 제공]
'투표조작 의혹' 오디션 프로그램 (CG) [연합뉴스TV 제공]

엠넷의 위세가 이 지경이 된 변곡점은 4년 전 발생했다. 저 유명한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 사태다. 시청자 참여로 아이돌 멤버를 선발하는 방송의 유료 문자투표 집계가 조작됐고 장장 몇 달에 걸쳐 신문지상이 뒤흔들렸다. 방송 책임자였던 김용범과 안준영은 감방에 들어갔고 <아이돌학교>의 조작 역시 밝혀져 PD를 맡은 김태은도 실형을 살았다. <프로듀스> 마지막 시즌이자 투표 조작이 폭로된 방송이었던 <프로듀스 X 101>의 최종화 시청률은 3.9%에 달했지만 그 후로 나오는 아이돌 오디션 방송마다 선동열 방어율을 기록했다. 이건 단지 수치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방송사가 담보하는 가치와 신뢰, 브랜드가 뿌리부터 파산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와중 하늘에서 떨어진 흥행작이 <스트릿 우먼 파이터>였다. 래퍼와 아이돌에 비해 이름값이 없는 댄서들이 참여하는 서바이벌 방송으로서 론칭 단계에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 회가 공개되며 잭팟이 터졌다. 평균 시청률 2%가 넘었고 최고 시청률은 2.9%까지 찍었다. 이 방송이 정말로 대단한 건 시청률이 아니라 화제성이었다. <스우파>는 그해 한국 사회의 히트 상품 중 하나가 됐고 각 팀 리더들은 무명 댄서에서 셀러브리티로 승천했다. 왜 엠넷의 모든 방송이 무덤에 들어가는 와중 이 방송만은 성공했을까. 댄스 신이란 블루 오션을 발견한 것이 가장 컸다. 여성 댄서들 특유의 날 것의 애티튜드가 대결을 부추기는 엠넷 식 선정주의와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즉, 엠넷이 무언가 새로운 걸 계발한 것이 아니라 늘 쓰던 공식을 대상을 바꾸어 대입했을 뿐이고 그것이 성공의 확률을 충족한 것이다.

Mnet 〈스트릿 맨 파이터〉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Mnet 〈스트릿 맨 파이터〉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이 말이 <스우파>의 성공을 깔아뭉개는 것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여성 댄서들의 매력과 투쟁심은 대단했지만 내가 묻는 건 방송을 총괄하는 엠넷의 역할이다. 만약 <스우파>가 그들의 역량이 낳은 흥행작이라면, 그 역량으로 후속 시리즈 역시 어느 수준까지는 물결을 이어 갔어야 한다. 실제로 엠넷은 <스우파>의 성공에 크게 고무돼 있었다. 세트장과 뮤직비디오 규모 등 모든 면에서 투자를 대폭 늘려 <스트릿 맨 파이터>를 야심 차게 출시했지만 결과는 쪽박이었다. 쓸데없이 <스우파>를 폄하하는 권영찬 CP의 성차별 발언으로 방영 전부터 여성 시청자들의 ‘불매’ 운동을 맞았고, 편파적이고 선정적인 진행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시청률은 1%대였고 콘서트 좌석은 텅텅 비어서 수요예측에 실패했다는 조롱을 샀다.

<스맨파>의 비극적 결말에선 방송의 성패를 떠나 엠넷 수뇌부들의 도태된 시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스맨파>는 척 봐도 <스우파>보다 흥할 수가 없는 기획이었다. <스우파>는 시쳇말로 걸크러시란 코드로 흥행했고 여성 댄서들이 꼭 여성 아이돌만큼 예쁠 필요는 없었다. 반면 여성 시청자들이 남자 댄서의 팬이 되려면 이성애적 코드가 필요한데 남자 댄서들은 외모로나 나이로나 절대로 남자 아이돌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스맨파>를 <스우파>보다 몇 배나 규모를 키워 제작한 건 남성 시즌 오디션이 여성 시즌보다 흥행하던 아이돌 오디션 방송의 관성을 의심 없이 따라갔다는 뜻이다. 저들의 앞을 보는 눈과 현상의 본질을 읽는 직관이 얼마나 흐리터분한지 처절하게 실토하듯 알려주고 있다.

<스우파>2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이 방송을 요약하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다. 여성 시즌답게 전작의 성공을 이어받아 <스맨파>보다는 시청률이 높고 바다리라는 스타가 탄생했다. 하지만 계급 미션 ‘smoke’ 챌린지는 <스맨파> ‘새삥’보다 현저히 반응이 약했고 유행을 타지도 못했다. 댄서들 팬덤 유입이 부족해 코어 팬덤 역시 <스맨파>보다 부족해 보인다. 자랑거리던 시청률마저 지난 6화에선 무려 1/4 가량이 빠져 2.6%에서 1.9%로 폭락했다. 가장 큰 문제는 볼거리의 부재와 제작진의 헛발질이다. 그동안 제작진이 공들인 서사와 연출은 시청자들 바람과 어긋나 불만만 샀고, 탈락 배틀에 방청객을 받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시도는 스포일러를 퍼트려 방송에 대한 궁금증과 긴장감을 저하했다. 갈수록 아쉬워지는 미션 퀄리티는 제작진이 글로벌 점수 폭탄을 먹여 초장에 돌아간 츠바킬의 빈자리를 더욱 생각나게 한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 (사진제공=Mnet)

가장 암울한 지점은 이런 <스우파>2가 현재 엠넷의 최고 아웃풋이며 이것마저 빼고 나면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스우파> 역시 수명이 끝나가는 기획이다. 시청률과 유튜브 조회수 등 이 방송이 수확한 낱알들은 모두 해외팀 섭외 파급 효과로 부양한 성과다. 엠넷의 가장 큰 문제는 문화를 주제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송사가 문화의 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악편'으로 서사와 논란을 빚는 십 년 전 슈스케 식 연출 하나에 의존한다. 출연자들 배역을 정하고 경연 과정을 주물러 싸구려 드라마를 만들 뿐 춤과 음악의 감동은 뒷전이다. 좋은 무대와 콘텐츠를 만들면 좋은 결과가 따라 올 거란 믿음이 이 사람들한텐 없다.

대국민 오디션, 힙합 오디션, 아이돌 오디션, 댄스 서바이벌… 끌고 올 수 있는 소재를 차례로 탕진해 더이상 미개척된 문화도 남지 않았고 방송사의 공신력도 파산한 엠넷을 기다리는 건 길이 끝난 채 황량한 바람소리만 울리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