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다. 관련 뉴스는 다 예상대로다. 한일 양국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지만 방사성 물질의 농도 등은 큰 변화가 없다는 설명을 반복할 것이고, 야당은 양국 정부에 항의하는 캠페인에 집중할 것이며, 여당은 그런 야당을 향해 ‘방탄’, ’괴담’ 타령을 계속할 것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은 이런 구도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상 가능한 일이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항의하면서도 적절한 대안을 정부에 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결국 국민의 신뢰는 ‘저 세력에 정권을 맡기는 게 나았을 것’이란 생각을 얼마나 하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정부 여당의 경우 괴담 타령하며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자세를 낮추고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에 설득에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이 ‘그래도 정권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할 정도가 돼야 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좋은 정치를 보여줄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이른바 ‘제3지대’도 번잡스럽기만 하니 대다수 국민은 선거 때 투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매일 계속되는 정치권 입씨름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오염수 방류는 최소 30년 동안 지속되고 심지어 금세기 안에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하는 일본 언론도 있다. 30년 후에 과연 오늘 여야가 치고받은 기억이 남아 있기는 하겠는가.
지금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런저런 정치적 사정을 다 걷어내보자. 오염수 방류에 주요국 정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핵을 기반으로 한 문명을 지향한다는 점에선 사실상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이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수습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사고 원전도 수습 방법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절차이다.
핵을 무기로 활용하려는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보다 프랑스의 핵연료 재처리 시설에서 발생하는 오염수가 더 문제라는 유럽인들의 지적을 전하고 있다. 일본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갖고 있다. 거기서도 오염수는 발생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 핵발전도 핵무기도 다 포기해야 한다. 그럴 마음은 없으니 그냥 다들 이렇게 살자고 하는 거다.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역사적(?) 회담 이후 보수언론과 대통령실 일부 인사가 주장한 바 역시 이러한 구조를 드러낸다. 이들은 이제 한미일의 군사적 협력이 본궤도에 올라섰고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자 핵무장 가능성이라는 변수도 없앴으니,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일본 정도의 배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일정 수준 이상의 우라늄 농축이나 핵연료 재처리 등이 허용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즉, 핵무기를 갖지는 않더라도 핵무기를 가지기 직전 상태까지는 이뤄내야 하겠다는 얘기다. 핵개발을 위해서는 당연히 원전도 필요하다. 어떤 경로건 우리는 ‘핵’으로 상징되는 힘의 경쟁과 효율성 추구로 내달려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옳은가? 여기서 필요한 반성과 성찰이란 ‘핵’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의 어두운 면을 보는 것이다. 그 어두운 면이란 버섯구름과 낙진이라는 스펙터클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최소 30년’이라는 일정에 대해 생각해보라. 일어날 확률이 낮은 사건도 시행 횟수가 많아지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일본이 자랑하는 방사성 핵종을 걸러낸다는 시스템이 수십 년 간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원전 역시 미사일이 떨어져도 안전하다고들 했는데, 결국엔 사고가 나지 않는가?
즉, 우리가 붙잡으려 애쓰는 핵을 기반으로 한 문명이란 결국 미래를 위험과 불안에 저당잡히고 혹시라도 돌아올 피해를 지구 생태계나 약자들에게 전가하도록 정해 놓은 시스템이다. 얼마나 무거운 이야기인가? 오염수 방류 반대한다면서 일본 음식은 왜 먹느냐는 식의 말장난이나 할 때가 아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논의를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이 아닌가?
이런 얘기를 해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면 의정 활동에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좀 내서 요즘 화제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라도 관람해보시라. 영화에는 어쩔 수 없이 핵폭탄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이후에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성찰의 길을 가려다 실패하는 주인공과 여전히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핵개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주인공과 대립하지만 실은 작은 원한을 품었던 것에 불과한 악역이 등장한다. 우리 정치권 인사들은 누구와 더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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