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부자 감세와 재정건전성 강화 정책이 결국 사회 안전망 구축 후퇴와 ‘복지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보수신문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각종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며 노골적으로 ‘복지 축소’를 위한 여론 형성에 나서고 있다. 또한 정부를 대신해 ‘유류세 인하 중단’ 등 부자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의 부담을 서민들에게 전가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21일 사설 <정치 포퓰리즘이 만든 에너지 과소비, '유류세 인하' 중단해야>에서 “유류세를 되돌려 에너지값을 올려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주세 인상에 이어 “부자 감세에 따른 세수 결손을 서민들에게 떠넘긴다”라는 여론의 비판에 정부가 머뭇거리자 정부를 대신해 여론 조성에 나선 셈이다.

올해 공동주택 평균 공시가격을 낮추기로 하면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수입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 1가구 1주택자에게 부과되는 보유세는 전년 대비 40%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에 각종 복지제도 지원 대상은 늘어 정부의 지출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공시가격이 낮아지면서 생계급여 수급자 등 각종 기초생활보장 급여 대상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가장학금과 근로·자녀 장학금 수혜 대상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반도체 등 국가전략 기술 산업에 더 많은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내년에는 3조 65억 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나라살림(CG) [연합뉴스TV 제공]
나라살림(CG) [연합뉴스TV 제공]

정부가 올해 예산을 편성했을 당시보다 경기가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전체 세수는 더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올해 1월 세수는 작년과 비교해 6조 8천억 원이나 줄어든 상황이다. 지난해 하반기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크게 악화해 올해 법인세 세수에 반영되고 올 하반기까지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 내년 법인세 세수도 매우 감소할 수밖에 없다.

14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이 시행되면 2023∼2027년 조세 수입은 연평균 17조 4593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법인세와 소득세는 올해부터 각각 연평균 4조 1163억원, 2조 2956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2027년까지 5년 동안 법인세와 소득세 감소 폭은 총 32조 591억원에 달한다.

애초에 낙수효과를 거론하며 부자 감세를 주장하던 보수신문조차 세수 결손에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부동산세, 법인세, 반도체 투자 등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나라 가계부에 경고등이 켜졌다”며 경기 침체로 세수가 악화하면 ‘낙수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높은 복지 수준과 낮은 조세 부담, 건전한 재정건전성은 양립할 수 없다”는 ‘재정의 트릴레마(3중고)’를 무시하던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복지 정책 구조조정’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3일 복지·노동 분야 직종의 종사자를 초청한 자리에서 “무분별한 현금 복지는 포퓰리즘 정치 복지”라고 비판하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맞춤형으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국민연금, 건강·고용보험 같은 사회보험은 물론 공공부조(생계급여·의료급여 등)와 사회서비스(노인·장애인·아동복지 등) 개선 방향을 직접 공개할 방침”이라며 ‘5,000개 복지 정책 구조조정’ 공론화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사회복지정책의 구조적 합리화에 관한 총체적 밑그림이 없이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현금 살포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하며 전임 정부의 현금 복지부터 손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정부는 ‘복지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약자 복지’에 집중한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복지제도의 후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양곡관리법, 기초연금 인상,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학자금 무이자 대출’, 건강보험기금 정부 재정 지원 등을 ‘포퓰리즘 융단폭격’이라며 재정의 위기를 ‘전 정부 탓’으로 돌렸다. 

조선일보 3월 27일 자 보도
조선일보 3월 27일 자 보도

조선일보가 이러한 복지 정책이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매표’ 행위라고 비판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사회적 합의를 거친 취약 계층 지원제도들이다. ‘건강보험기금 정부 지원’은 건강보험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2007년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됐다. “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에서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한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 해당하는 금액은 일반회계(국고)에서, 담뱃세로 조성한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지원해 총 20%를 지원하도록 했지만, 지금까지 국고 지원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국고 지원이 중단되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큰 폭의 건강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라도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노인 기초연금을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기초연금 확대법을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은 이를 대표적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매일경제는 24일 사설에서 기초연금법 개정안을 “국가 재정을 망가뜨릴 게 뻔한 법”이라고 동조했다.

하지만 기초연금 40만 원(현재 30만 원) 인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19년 43.8%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13.5%)의 3배 이상으로 높다”며 ‘기초연금 월 40만 원으로 인상’을 약속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확정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도 “상생의 연금 개혁과 동시에 현세대 노인 빈곤 완화를 위해 기초연금을 단계적으로 인상(40만 원)”이라고 명시됐다. 

경기 둔화와 부자 감세 정책으로 세수가 줄며 올해 나라 살림에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3% 이내로 유지하는 내용의 재정 준칙을 발표했다. 국가채무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하면 적자 폭을 2% 이내로 유지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증세 없는 재정 준칙으로는 불평등 해소도, 기후 위기 대응도 못 한다”라는 비판이 거세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재정 준칙의 기계적인 준수 과정에서는 복지재정이 최우선으로 삭감 대상이 되기 쉽다”며 정치권의 재정 준칙 제정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냈다. 나원준 교수의 경고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약자 복지’ 발언과 조선일보 등 보수신문의 ‘포퓰리즘’ 공격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불평등이 가장 심하지만,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국가의 역할에 가장 부정적 인식을 가진 나라!

OECD가 대한민국을 ‘혼란스러운 인식을 가진 나라’라며 밝힌 이유이다. 이 ‘혼란스러운 인식’은 최근 우리 사회 연대를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며,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혼란’을 바로 잡으려면 무엇보다 ‘혼란스러운 인식’을 만들고 여기에 기생하는 부역언론, 보수신문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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