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지난 5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인하·종부세 인하 등 세제개편안을 ‘부자감세’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대기업을 부자로 보는 프레임, 그 인식부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경제가 어렵고 기업 활력 제고가 필요한 이때 기업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여러 수단 중 하나가 법인세 인하”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은 영국 트러스 신임 총리의 ‘부자 감세’ 정책과 닮은꼴이다. 영국 트러스 총리는 지난달 23일 1972년 이후 최대 규모인 연간 약 72조 원의 감세안을 발표하고 열흘 만인 3일 ‘소득세 최고세율 45% 폐지’안을 철회했다.

법인세 깎아 줄어든 나라 세금, 월급쟁이들이 메꿨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법인세 깎아 줄어든 나라 세금, 월급쟁이들이 메꿨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감세 정책을 철회한 트러스 총리는 4일 B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복지 정책 축소까지 시사했다. “중기적으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을 어떻게 낮출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의 감세와 복지 축소 정책은 영국 보수당 내에서도 공개적인 반발을 사고 있다. 트러스 내각의 페니 모몬트 국제통상부 부장관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복지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러스 총리의 정치적 미래는 매우 불확실해졌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감세 정책과 국가 재정, 복지 정책의 방향에 대한 합리적 논쟁을 찾기 힘들다. 

지난 5일 많은 신문이 “법인세 인하 땐 장기적으로 경제 규모가 3.4% 성장한다”는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의 보고서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김 연구위원은 ‘법인세 세율체계 개편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리면 투자와 취업자 수가 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가 부자 감세라는 비판에 대해 “정치적으로 제기된 구호에 불과하다”면서 “법인세 감세가 일부 부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사설을 통해 김 연구위원의 보고서 내용을 마치 국책연구원인 KDI의 입장인 것처럼 보도하면서 “감세정책의 낙수효과는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고 거들고 나섰다. 한국경제는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25%→22%)한 10년 뒤 법인세수가 82% 급증했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인세 증가는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로 환원한 영향이 크다. 경향신문은 KDI 보고서를 가리켜 “국감용 ‘방탄보고서’ 또는 정권 코드 맞추기라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최근 감세 철회로 돌아선 영국 사례를 감안할 때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환영하는 재벌신문들의 더 큰 문제는 아전인수식 보도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은 확인도 하지 않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집중보도하지만, 다른 의견은 철저히 묵살한다. 

한겨레는 유럽의 경제학술지인 ‘유럽경제리뷰’ 8월호에 실린 논문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가’를 소개하며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평균적으로 ‘0’에 수렴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고 보도했다. 법인세와 성장의 관계는 연구자가 설정한 ▲성장의 측정 기간(장기 또는 단기) ▲법인세 측정 방법(법정세율 또는 실효세율) ▲세입과 재정지출을 함께 살피는지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 논문이 “평균적으로 보면 법인세 변화가 경제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경제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설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MBC는 지난 5일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들의 법인세를 깎아준 이후 국세 수입이 어떻게 달라졌나 봤더니, 법인세가 줄어든 빈자리를 월급쟁이들이 내는 근로소득세가 메꾼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전체 세금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23%였는데 2021년에는 20%로 줄었다. 반면에 근로소득세 비중은 2008년 8%였는데 2021년에는 13%로 늘었다. 

법인세 깎아 줄어든 나라 세금, 월급쟁이들이 메꿨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법인세 깎아 줄어든 나라 세금, 월급쟁이들이 메꿨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MBC는 “기업 수익이 늘어나면 주주 배당금이 늘어나니까 길게 보면 모든 국민을 위한 거라는 새로운 논리도 등장했다”며 KDI가 낸 보고서를 언급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MBC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전체 배당 소득의 63%가 상위 1%한테 가요. 결국 법인세를 낮춰준 혜택은 상위 1% 사람한테 귀속된다는 거잖아요”라고 KDI 보고서를 반박했다. 

“법인세 인하에 따른 낙수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중앙일보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정재홍 기자는 [서소문 포럼] <현실 외면한 정책의 대가> 에서 “대처 전 총리의 감세에 따른 경제 성장 효과는 비슷한 시기 높은 세금을 유지했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차이가 없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자 감세도 기대했던 성장을 이끌지 못하고 재정 적자만 키웠다. 오히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부자 증세를 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기에 미국 경제는 고속 성장했다”며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낙수 이론을 ‘좀비 이론’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현실 적합성이 없어 사라져야 할 이론임에도 좀비처럼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OECD는 2021년 불평등 보고서에서 한국을 가리켜 ‘혼란스런 인식을 가진 나라’라고 규정했다. 누구보다 불평등을 심각하게 느끼지만 불평등을 해소할 국가의 역할에 가장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사라져야 하지만 ‘좀비’처럼 살아남아 국민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의 재벌신문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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