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대표하는 이론가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대중문화’가 단순히 지배 이데올로기의 확성기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과 저항이 동시에 일어나는, 그렇기에 끊임없는 투쟁이 필요한 살아있는 정치적 공간이라 여겼다. 대중문화 텍스트와 수용자 경험 간 관계는 ‘코드화(encoding)’와 ‘해독(decoding)’으로 설명된다. 코드화가 다양한 코드(code)를 활용해 텍스트를 생산하는 행위라면, 해독은 수용자가 적절한 코드에 의거해 텍스트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의미란 텍스트로부터 단순히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구성된다. 여기서 코드는 재현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습의 과정적 체계이자, 한 사회가 채택하는 해석의 도구다. 해독과정은 ‘코드화 → (텍스트 속) 메시지 → 해독’으로 이뤄진다. 

코드화와 해독을 이해하기 위해 방송국을 떠올려보자. 방송국은 방송을 만들고 내보낼 수 있는 물적 기반을 갖춘 공간이다. 방송국에는 관련 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인력(방송인)들이 있다. 물적 기반과 그것을 토대로 텍스트를 만드는 사람들 간에는 특정 관계가 존재한다. 방송인들의 경험, 사회·문화·정치에 대한 생각이나 입장, 방송에 대한(혹은 방송을 향한) 태도 등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 프로그램은 언제나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여기서 메시지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방송국이라는 공간과 방송인들이 가진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다. 공영방송이냐 민영방송이냐, 지상파방송이냐 유료방송이냐 등에 따라 메시지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차이도 있겠다. 홀에 따르면 방송은 이렇듯 이미 시작부터 어떤 특정한 코드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그렇게 코드화된 메시지가 수용자들에게 전달되고, 수용자들이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나아가 사회적 행위로 옮기는 과정 전체가 해독이다. 여기서 해독의 핵심은, 방송국의 프로그램 속 코드화된 메시지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있다. 그렇게 수용자가 코드를 푸는 입장을 홀은 다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지배적(dominant) 해독’으로, 수용자가 텍스트의 코드를 의심의 여지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수용자는 프로그램의 메시지를 코드화된 그대로 이해하고 믿는다. 코드화의 주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독하는 것이다. 둘째, ‘교섭적 혹은 협상적(negotiated) 해독’이다. 수용자가 텍스트의 코드를 대체로 공유하는 가운데, 해독에 자신의 경험, 취향, 관심사 등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의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개인의 구체적인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생각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의미와의 타협과 절충을 통한 해독인 셈이다. 셋째, ‘저항적(oppositional) 해독’인데, 여기에서는 수용자가 지배적 코드에 정면으로 맞서고 대안적 입장을 취한다. 프로그램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을 거슬러서 읽어내고 해석한다. 수동적 수용자에서 벗어나 텍스트에 내재된 신화를 부정하고 능동적 의미생산자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장애인 단체의 시위·집회와 관련해 시위·집회로 인한 비장애인의 불편함을 부각하는 보도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장애인 단체가 진짜 문제다. 건전한 시위·집회 문화가 흔들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지배적 입장에서 코드를 풀어낸 것이다. ‘문제가 있긴 하다. 저렇게 출근시간에 지하철에서 시위·집회를 하면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지. 하지만 오죽하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저렇게라도 전달하려 한 것이겠어. 그걸 보고 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문제가 아닐까?’라고 반응하는 것이 교섭적 혹은 협상적 해독에 가깝다고 하겠다. 시위·집회에 대한 여러 맥락들을 찾아보고, 장애인 단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왜 시위·집회의 방식을 채택했는지,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야기되었는지를 찾아보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특정 행동을 한다면 이는 저항적 해독으로 볼 수 있다.

4월 21일 TV조선 '뉴스9' 방송화면 갈무리
4월 21일 TV조선 '뉴스9' 방송화면 갈무리

프로그램을 통해 코드화된 메시지가 전달되지만, 그 메시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의도를 통해 메시지를 만든 입장에서는 수용자들의 지배적 해독을 가장 원하고 저항적 해독이 일어나는 상황을 기피할 수 있다. 스튜어트 홀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순간이 발생하는 때는 지배적이거나 교섭적인 입장에서 해독을 하던 수용자들이 갑자기 저항적 입장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지배계급의 메시지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전복될 때, 비로소 의미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코드화-해독 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용자들의 해독은 다시 방송국에 의해 수집돼(여론조사, 시청자조사 등) 방송을 제작하는 데 반영될 수 있다. 수용자들의 해독이, 다시 창작자들의 코드화를 가능케 만드는 것이다. 이때 새로운 메시지는 대개 더 해독하기 어렵게 코드화된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코드화가 이루어지면 수용자들이 그것을 지배적 방식으로 수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복잡한 메시지를 수용자들은 또 다시 (대체로 전보다 힘을 들여) 해독해야 한다. 이러한 재생산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물론 지배적 해독만을 취하는 수용자들에게는 재생산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저항적 해독을 하는 수용자들은 끊임없이 메시지에 담긴 코드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저항적 해독의 대표적인 전략이 전유(appropriation)다. 전유는 특정 목적에 맞게 나머지 다른 것의 의미를 빌려오거나 훔치거나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전유의 목적은 이미지를 차용해 그 의미를 변화시키고 재구축하는 데 있다. 문화적 전유는 예술가가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해석을 내릴 때 그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전유가 항상 저항적인 해독인 것도, 저항적인 해독이 항상 비판적인 해독인 것도 아니다. 대중문화 수용은 즐거움과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경우 수용은 대중문화 안에서 혹은 그것을 가지고 노는 행위와 다름없다. 텍스트 자체에 개입해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고 많은 노력이 수반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수용자는 텍스트를 해석하거나 거부하거나 재구성함으로써 즐거움과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브리콜라주(bricolage)는 수용자들이 기존의 것에 새로운 의미를 입힘으로써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며, 전유의 구체적인 전술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대표사례가 패션브랜드 닥터 마틴(Dr. Martens)이다. 1940년대 독일 군의관 클라우스 메르텐스(Klaus Märtens)가 스키 사고로 다친 발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 기존 군화에 에어쿠션을 덧대 개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 신발은 1960년대 영국에서 군용 신발로 사용됐지만, 1970년대 들어서는 네오펑크 문화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었다. 브리콜라주는 지배문화에 대한 거부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칼하트 데님(Carhartt Denim)은 노동자 작업복의 대표명사였지만, 1990년대 저항적이고 자유로운 힙합문화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MBC 〈무한도전〉 ‘YOU&ME 콘서트’ 특집
MBC 〈무한도전〉 ‘YOU&ME 콘서트’ 특집

능동적 해독자들은 창작자가 의도한 의미를 빈번하게 전유한다. 2008년 12월 27일 MBC <무한도전> ‘YOU&ME 콘서트’ 특집이 방송된 이후, 원제작자가 아닌 이들에 의해 편집돼 재미가 반감됐다는 팬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MBC 파업에 <무한도전> 제작진들이 동참하면서 빚어진 결과였다. 이에 팬들은 한 포털사이트에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무도빠들의 자막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전유).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몇 명이 모여 동영상 편집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 제작진의 파업을 지지하고 그들을 빨리 현업으로 복귀시켜 <무한도전>을 정상화하라는 의도를 담은 것이기도 했다.

수용자의 전유를 창작자가 다시 전유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재전유(re-appropriation)라 부른다. 전유에서 언급했던 <무한도전> 사례를 이어가 보자. 2009년 1월 현업으로 복귀한 <무한도전> 제작진은 동월 17일 감독판 ‘YOU&ME 콘서트’를 다시 방송했다. 여기에는 본방에서와는 달리 무대 뒷모습과 미공개 촬영분뿐 아니라, 팬들이 제작한 동영상에 응답하는 자막들이 달려(재전유) 큰 화제가 됐다.

너무나 많은 기사와 콘텐츠들이 그야말로 쏟아지는 시대다. 그런 속에서 은밀한 메시지들이 교묘하게 담기지 않은 기사와 콘텐츠들을 찾는 일이 오히려 쉽지 않아진 지 오래다. 정보의 외적 팽창과 내적 은밀화·교묘화가 동시에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실제 의도와 의미를 붙들어 살피기 위한 수용자들의 상상력과 전망이 요청된다. 창작자와 수용자 간 관계에 긴장을 주고 그것을 싸움으로 만드는 것은 저항적 수용자들 혹은 수용자들의 저항성이다. 물론 홀이 말한 세 가지 해독의 입장들은 실제 수용자를 설명하기 위한 규범적 모형으로 제안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설적인 모델이다.

애초에 완전히 지배적 해독이나 저항적 해독만을 하는 수용자들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대부분 그 중간 어디쯤에 있거나, 같은 사람이라 해도 지식과 경험,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른 해독을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항적 해독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대중문화의 변화, 나아가 사회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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