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 이전부터 오프라인 대중문화에서 유행해 왔던 N차 관람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및 해제와 함께 다시 본격화되고 있는 듯하다. N차 관람이란 같은 영화, 공연, 전시 등을 (한 번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는 행위를 말한다. 한 번만 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보고 난 이후 자꾸만 여운이 남아서, 취향에 너무 맞는 작품이라는 이유로, 혹은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나 작품 자체를 응원하기 위해...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관객들이 극장을, 공연장을, 전시장을 다시 찾는다. N차 관람은 특정 작품의 흥행을 견인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고, 흥행까진 하지 못했지만 일부 관객의 호응을 얻은 작품들의 롱런이나 재개봉/공연/전시를 가능케 하는 주된 요소가 되기도 한다.

대중문화에서 N차 관람이 가장 오래전부터 보편적으로 이뤄져 온 분야는 영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팬덤을 이끌며 N차 관람문화를 형성해왔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와 <형사 Duelist>(1999)에서부터 시작해, <왕의 남자>(2005), <후회하지 않아>(2006), <신세계>(2013), <아가씨>(2016), <아수라>(2016), <보헤미안 랩소디>(2018),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2018~), 그리고 최근의 <헤어질 결심>(2022)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N차 관람의 덕을 본(?) 영화로 꼽힌다. CGV 데이터전략팀에 따르면 7월 3주차 기준 개봉영화의 N차 관람률 1위는 <탑건: 매버릭>(6.1%)이다. <헤어질 결심>(4.7%)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3.9%)가 뒤를 이었다. 이러한 N차 관람에 힘입어 <탑건: 매버릭>은 개봉 39일 만에 693만명, <헤어질 결심>은 개봉 164만 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7월 30일 기준)하며 뒷심을 발휘 중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 〈탑건: 매버릭〉 포스터
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 〈탑건: 매버릭〉 포스터

뮤지컬에서는 보다 깊이 있는 N차 관람을 목격할 수 있다. 전반적인 N차 관람률이나 빈도 모두 영화를 앞선다. 인터파크가 2021년 뮤지컬 예매내역을 조사한 결과, 총 약 139만 명의 예약자 가운데 같은 공연을 2회 이상 반복해 예매한 인원은 17만 5,000여명(12.6%)이었다. 관람 횟수별로 세분해 보면 2회 관람이 57.3%로 가장 많았고, 3회 관람(17.3%), 6~10회 관람(8.6%), 4회 관람(8.4%), 5회 관람(4.8%)이 뒤를 이었다. 3회 이상 관람객은 2020년 약 5만명에서 2021년 약 7만 5,000명으로 150%나 증가해, 앞으로의 확장세가 주목된다.

아직까지 영화나 뮤지컬에 비해 N차 관람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전시에서도 N차 관람이 행해진다. 인터파크의 2021년 전시회 예매내역 분석결과에 따르면, 3.8%의 관객이 2회 이상 특정 전시를 재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2~3회 관람한 인원이 98%로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앨리스 달튼 브라운>,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와 같은 전시에서는 4~9회씩 예매를 한 관객도 다수 있었다.

단순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N차 관람을 하고 있는지만이 아니라, N차 관람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봤는지에도 주목해야 N차 관람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6월 22일부터 7월 10일까지 <헤어질 결심>을 2회 관람한 비율은 4.3%이지만, 3회 이상 관람한 비율은 0.9%에 그친다. 그 0.9%가 얼마나 더 관람을 많이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최근 탕웨이가 한 무대인사에서 영화를 13회 봤다는 관객을 안아줘 화제가 된 적은 있다. <아가씨>의 경우 N차 관람 평균횟수가 4.8회였지만, 총횟수 1위는 111회, 2위는 77회, 3위는 68회였다. 뮤지컬의 경우 2021년 같은 작품을 가장 여러 번 본 것은 <멸화군>을 총 86회 본 관객이었다. <미스터쇼>를 85회, <와일드 그레이>를 77회,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72회 본 관객들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정작 N차 관람이 가장 많았던 작품은 <프랑켄슈타인>, 2위는 <헤드윅>, 3위는 <위키드>, 4위는 <드라큘라>, 5위는 <엑스칼리버>였다. 최다 N차 관람객이 본 작품이 5위권 안에는 한 편도 없었던 셈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포스터, 뮤지컬 〈헤드윅〉 포스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포스터, 뮤지컬 〈헤드윅〉 포스터

그렇다면 N차 관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대중성보다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지고 콘텐츠를 깊이 있게 즐기는 관객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팬덤을 넘어 덕후 문화의 확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과거 영화 마니아들이 다양한 작품을 계보학적으로 섭렵했다면, 이제는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특정 작품에 집중적으로 열광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N차 관람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해당 작품이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가 더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N차 관람객은 자신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는 데에도 대체로 익숙한 듯하다. 그 증거로 N차 관람 인증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나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둘째, 같은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관람하는 것의 보편화와도 연결된다. 누구도 집에서 TV수상기나 모니터를 통해 특정 작품을 N차 관람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도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대중문화는, 당연히 온라인에서와는 다른 현장 중심의 경험을 제공한다. 하나의 공간(극장, 공연장, 전시장 등)이 그 안의 관객들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가령 극장은 기술(4DX, IMAX, ScreenX, SoundX 등)이나 라이프스타일(템퍼, 골드 클래스, 프리미엄, 스위트 박스 등)에 따라 관을 구분한다. 누구와 언제 보느냐 등도 중요하겠지만, 관의 성격에 따라 같은 영화도 관객에게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멀티플렉스 지점별·관별 명당 좌석도 존재한다. 보는 자리에 따라 시야, 음향, 분위기 등이 달라지는데, 명당은 밸런스가 좋거나 관람의 특정 장점을 극대화한 자리를 말한다. 좋아하는 영화를 각기 다른 지점·관·좌석에서 여러 차례 보는 것은 보다 입체적인 경험을 가능케 한다.

스크린X 상영관 [CGV 제공=연합뉴스]
스크린X 상영관 [CGV 제공=연합뉴스]

현장감이 보다 중요한 공연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애초에 공연 자체가 같은 출연진들이 펼치는 것이라 해도 매 공연마다 조금씩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훨씬 더) 좌석에 따라 시야, 음향, 분위기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공연장별 명당 좌석과 그 이유가 팬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제일 먼저 예약 마감되는 이유다. 전시도 같은 작가의 작품을 어떤 전시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인식과 느낌을 준다.

셋째, 수용자 운동의 성격도 지닌다. 이는 영화 분야에서 두드러지는데,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CJ E&M(현 CJ ENM)이 투자·배급하고 설경구, 임시완과 같은 인기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칸영화제 초청작임에도 불구, 온라인 평점테러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으로 인해 개봉 초기부터 상영관 축소, 교차 상영 등을 겪었다. 이에 반발한 팬들이 배급사에 상영관 확대를 요구하고, 직접 대관과 상영 홍보에 나서면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팬덤이 완성시킨 영화’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러한 운동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어왔다. 이를테면 ‘와나라고 운동’은 2001년 작품성과 재미를 갖춘 네 편의 영화(<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비>, <라이방>, <고양이를 부탁해>)가 초반 흥행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극장에서 조기종영되는 것이 아쉬워, 일부 평론가와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재개봉 운동이다. 이후 <후회하지 않아>, <허스토리>(2017) 등의 영화에 대해서도 재개봉 운동이 있었다. 매 수용자 운동의 국면에서 N차 관람은 하나의 필수요소로 작용해왔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Thank You 상영회 현장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Thank You 상영회 현장

‘영혼 보내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영혼 보내기란 말 그대로 티켓을 예매하고 육신을 제외한 영혼만 보내 영화나 공연을 관람하는, 일종의 노쇼 후원 행위다. <미쓰백>(2018), <걸캅스>(2019) 등의 영화를 통해 이뤄진 후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관람을 통해 만족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해당 작품의 흥행을 돕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자발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영혼 보내기는 소비와 기부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 작품이 산업 시스템이나 여타의 이유로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밀려날 때, 관객이 주체가 되어 작품을 다시 소환하고 그것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라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정 관객들이 더 이상 산업이나 주변 상황이 만드는 대로만 작품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수용문화의 변화를 산업도 빠르게 흡수한다. N차 관람을 하나의 마케팅 코드로 활용하기도 하고, 작은 상영관을 N차 관람을 위해 빼놓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관객 차원의 N차 관람에 대한 오해나 비판도 없지 않다. 사재기에 대한 의혹도 있고, 비슷한 맥락에서 티켓 N차 구입 인증과 실제 N차 관람을 하는 행위가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후자의 경우 영혼 보내기와는 구분해야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N차 관람이 하나의 마케팅 코드가 될 수는 있지만 산업 쪽에 가시적일 만큼의 이익이 돌아가게 하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제 오프라인 영화, 공연, 전시 등의 성공을 단순히 관객 수로만 재단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여러 사람이 보는 것 못지않게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보는 것도 중요하다. 수용의 양만큼 깊이도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깊이 있는 수용이 운동을 만들고 산업과 수용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블록버스터에서의 N차 관람보다, 멀티플렉스의 여러 관을 차지하지 못하는 영화, 스타가 등장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덜 등장하는 공연, 작은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N차 관람에 특히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객들의 뜨겁고도 잦은 애정 속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는 작품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작은 작품들이 보다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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