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얼마 전 ‘에스파 초동 음판 백만 장의 의미’란 글을 쓴 후 아직도 아이즈원을 그리워하는 팬이 많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이즈원을 언급한 대목은 두세 단락 정도였지만, 트위터에서 글을 공유하며 아이즈원에 관한 추억을 토로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즈원 활동 종료 이후, 모든 멤버가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번 주엔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채연의 솔로 데뷔 소식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아이즈원의 잔상이 대뜸 떠오르는 건 미야와키 사쿠라와 김채원이 있는 하이브 걸그룹 르세라핌이다.

아이즈원으로 활동한 시간은 모든 멤버에게 평등하겠지만, 아무래도 솔로로 활동하는 이들보다는 다시 뭉쳐 그룹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서 아이즈원이 좀 더 쉽게 연상된다. 아이브도 안유진과 장원영이 소속돼 있지만 비교적 ‘새 그룹’이란 느낌을 주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르세라핌은 여러모로 회사 차원에서 사쿠라와 김채원의 과거에 대해 창구를 열어두고 있단 인상이 든다. 추측건대, 아이즈원을 참고하여 르세라핌을 ‘스몰 사이즈 아이즈원’처럼 운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르세라핌 김채원(좌)·미야와키 사쿠라(우)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가운데) [방시혁 인스타그램 캡처=연합뉴스]
르세라핌 김채원(좌)·미야와키 사쿠라(우)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가운데) [방시혁 인스타그램 캡처=연합뉴스]

데뷔 프로모션 과정부터 돌이켜 보면 하이브와 쏘스뮤직의 목표는 이미 데뷔해 팬덤이 있는 멤버들 중심으로 그룹의 기반을 갖추는 것이었고, 아이즈원이 남긴 팬덤 ‘위즈원’을 포섭하고 유치하는 것이었다. 사쿠라와 김채원 영입 오피셜 뉴스로 프로모션을 시작한 점, 신인 그룹으로선 이례적인 장충체육관 데뷔 쇼케이스, 그것도 무료입장 쇼케이스를 열며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초대장을 보냈던 점이 그렇다. 사쿠라가 유튜브 채널 ODG에 출연해 아이즈원 시절과 멤버들을 회고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 같다.

하이브는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위즈원에게 선호도가 높은 사쿠라와 김채원을 영입했고, 한일 합작 그룹으로서 한일 양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아이즈원의 노선을 답습하고 확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즈원은 국내-남성 팬덤이 주축이 된 그룹으로서 여성 아이돌 중 유례없이 큰 국내 팬덤을 모았던 그룹이다. 그런 면모를 특별한 강점으로 보고 흡수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실제로 하이브 임원진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즈원을 언급하며 걸그룹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걸그룹 르세라핌 '피어리스' 뮤직비디오 1억뷰 달성 기념 이미지. [쏘스뮤직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르세라핌 '피어리스' 뮤직비디오 1억뷰 달성 기념 이미지. [쏘스뮤직 제공=연합뉴스]

며칠 전 한 매체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르세라핌은 다음달 17일로 컴백 일자가 정해졌다고 한다. 르세라핌의 데뷔 활동은 성공적이었다. 걸그룹 음판 데뷔 신기록을 썼고, 데뷔곡 ‘FEARLESS’는 아직까지 차트 30위권에 있다. 위버스와 유튜브 자체 콘텐츠를 통한 팬덤 유입 또한 이어진다. 르세라핌은 데뷔 전부터 어마어마한 이슈를 모았는데,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신인 걸그룹이 그 정도로 화제를 일으킨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건 곧 이 그룹과 멤버들이 가진 잠재력과 파급력을 알려주는 것이다. 5인 체제로 재편된 후 처음으로 내는 다음 앨범은 어떤 의미에선 이들에게 또 한 번의 데뷔이기도 하다. 멤버 선발 과정에서 과실을 저지른 하이브와 쏘스뮤직은 어떤 방향으로 그룹을 재정비했는지 능력을 보여주고 증명하는 재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아이즈원은 불과 작년까지 존속했던 그룹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케이팝 산업이 처한 정세는 많이도 변했다. 국내 걸그룹 팬덤은 규모가 줄었고 남성 팬들은 그보다 더 많이 줄었다. 여성 팬덤 중심, 해외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됐고, 폭증한 앨범 판매 규모는 걸그룹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있음을 알기 쉽게 알려준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스윙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아이즈원은 케이팝의 한 시절을 수놓은 기념비적 그룹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들이 과거에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게다가 CJ E&M이 아이즈원을 운영한 방식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많았다. 멤버들 케어가 소홀했던 것은 물론, 소속사에 따라 멤버들에게 가는 기회가 편중됐었다. 한일합작임에도 일본인 멤버들은 한국 활동에서 거의 비중이 없었다. 이런 방식의 운영은 그룹의 성장 가능성 역시 저해한 면이 있었다. 아무리 글로벌화되었다고 해도 케이팝의 거점은 한국이다. 해외 팬들 역시 한국 활동을 보고 그룹에 유입한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사쿠라가 주변화되며 국내 팬덤에 비해 해외 팬덤은 확장되지 못했다.

걸그룹 산업은 아이즈원이 데뷔한 2018년과 비교할 수 없이 레드오션이 됐다. 그때는 앞서 데뷔한 그룹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상태라 새로 데뷔하는 그룹이 많지 않았다. 일본 시장 역시 트와이스를 빼면 특별한 경쟁자가 없었다. 반면 지금은 신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주기가 시작된 상태다. 일본 시장 진입 경쟁은 치열하고 중국 시장의 중요성은 현격히 커졌다. 르세라핌은 이런 상황 속에 컴백을 하는 것이다. 물론, 본격적인 5인 체제에 대한 기대감, 궁금증과 함께 데뷔 앨범의 성공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하이브와 쏘스뮤직이 그룹의 잠재력에 더 큰 불을 지피고 싶다면, 아이즈원이 남긴 유산을 활용하는 한편 아이즈원이 채우지 못했던 여백의 크기 또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주목해 그 멤버들을 영입하길 마다하지 않았던 아이즈원의 모든 족적을 정확하게 참고하는 길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