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르세라핌이 일본 데뷔 싱글 ‘FEARLESS(Japanese ver.)’로 거둔 성적은 특별하다. 초동(발매 후 첫 일주일 음반 판매량) 음반 판매 222,286장이고, 이는 역대 케이팝 걸그룹 일본 데뷔 초동 신기록이다. 종전 최고 기록은 르세라핌 멤버 사쿠라와 김채원이 속했던 아이즈원이 가지고 있었다. 르세라핌의 기록은 6년 전 트와이스, 4년 전 아이즈원에 이어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는 또 다른 걸그룹이 나타났음을 가리킨다.

이런 성적을 거둔 동력은 무엇일까. 아이즈원에서 일본 인기가 많았던 멤버 두 명을 영입해 아이즈원의 후광과 팬덤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일본에서 평판이 높은 하이브의 브랜드 파워가 뒷받침 됐고, 일본인 멤버 두 명에 더해 현지에서 선호하는 매력 있는 한국인 멤버들이 포진해 있다. 또 다른 요소를 꼽자면 다른 그룹에 비해 르세라핌이 일본에서 ‘대중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르세라핌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는 다른 일본인 케이팝 아이돌과 달리 일본 아이돌 HKT48로 데뷔해 수년간 활동한 유명 멤버였다. 현지에서 케이팝 분야를 넘어서는 사회적 인지도가 있고, 일본이 낳은 아이돌이 케이팝 신 중심에서 활약한다는 엔터 분야 국가대표 같은 이미지가 있다.

걸그룹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걸그룹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르세라핌은 지난해 일본 최고의 연말 가요제 홍백 가합전에 출연했다. 현지에서 데뷔도 하지 않은 외국 그룹의 출연은 전례 없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쿠라의 존재가 거부감을 줄였고 르세라핌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기회가 됐다. 일본 트위터에선 “케이팝을 모르는 우리 삼촌도 사쿠라는 알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대부분의 케이팝 그룹이 현지 팬덤에 한정된 서브컬처로 소비되는 상황에서 이런 확장성은 경쟁력이 됐다. 최근 한국에서도 걸그룹 시대가 다시 열리며 ‘대중성’을 도모하는 것이 키워드가 됐다. 뉴진스가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그룹이 되어 간다면, 르세라핌은 주요 해외 로컬 시장에서 어떤 종류의 ‘대중성’을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둔 독특한 사례다. 미야와키 사쿠라는 르세라핌을 나타내는 랜드마크로서 눈과 귀를 불렀고, 그룹과 다른 멤버들의 매력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반면, 사쿠라의 일본 팬들 사이에선 실망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이브와 쏘스뮤직이 사쿠라에게 프로모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팬 계정을 운영하는 한 일본인 트위터 유저는 “은채는 키르시의 새로운 뮤즈, 윤진도 아마 웨이크메이크의 새로운 뮤즈, 채원은 메이크업 포에버의 새로운 앰버서더, 카즈하는 에뛰드… 사쿠라의 발표는 언제입니까”라는 트윗을 썼다. 물론 이 유저의 의견이 사쿠라 팬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팬들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런 목소리가 데뷔 앨범 발표 후 해외 팬을 중심으로 꾸준히 울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한국 앨범에선 혼자만 뮤직비디오 분량이 과소하고 무대 동선과 대형이 잘 보이지 않도록 배치됐다는 비판이 나왔었다.

미야와키 사쿠라의 웹 예능 〈겁도 없꾸라〉
미야와키 사쿠라의 웹 예능 〈겁도 없꾸라〉

우선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자. 사쿠라도 개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콘택트렌즈와 의류 브랜드 모델을 하고 있고, 루이뷔통 행사에 출연했었고, 이번엔 첫 단독 TV 광고 모델을 맡았다. 이것들은 사쿠라가 따로 계약을 맺은 일본 소속사가 잡아 준 것이고, 하이브가 지원해 준 건 거의 없다는 것이 어떤 일본 팬들의 지적이다. 한국 개인 활동을 보면 신인 멤버들에 비해 많은 편이었지만, 각각 고정 출연을 포함해 같은 '경력직' 김채원이 방송/웹채널 출연 10번, 사쿠라는 웹채널 출연 5번이다. 한국 잡지 화보의 경우, 단체 촬영을 뺀 개인/유닛 촬영은 김채원 5번, 허윤진 3번, 홍은채 3번, 카즈하 6번이고, 사쿠라는 1번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외부 출연은 소속사뿐 아니라 상대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며 함께 작용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잡지사들이 멤버 중 인지도가 높고 잡지를 구매할 코어 팬이 많은 사쿠라만 선호하지 않는다는 가정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팬들의 지적은 단지 파트나 기회가 적다는 점 때문에 나온 건 아닌 것 같다. 회사의 처우가 다른 멤버들과 다른 점이 보이고,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는 것 같다. 사쿠라의 개인 활동은 일본에 치우쳐 있는데 르세라핌 일본 계정에서 소개를 해주지 않고 있다. 반면 같은 일본인 멤버 카즈하의 일본 잡지 촬영은 소개를 해주고 있어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처우가 다른지 알 수 없지만, 하이브가 아닌 일본 회사에서 잡은 스케줄이기 때문일 거라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팬들이 반년째 문의를 해도 설명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이 전체적인 서포트 문제와 맞물려 불만을 일으키는 것 같다.

사쿠라는 얼마 전부터 <겁도 없꾸라>라는 유튜브 개인 예능을 찍고 있다. 팬들은 이 역시 하이브가 지원한 것이 아니라 사쿠라 팬으로 알려진 PD가 섭외한 것이라 받아들이는데, 어찌 됐건 출연이 이뤄지고 촬영을 위한 스케줄을 비워 주는 건 하이브 측 결정일 것이고, 이 채널은 사쿠라의 팬들을 위한 지속적 콘텐츠를 제공해 준다. 반대로 사쿠라의 외부 노출에 있는 편향도 저런 것이다. 개인 활동이 잡혀도 케이팝 신 내부와 르세라핌 팬덤으로 잘 수렴되지 않는 방식, 매체를 통해 이뤄져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겁도 없꾸라>는 따로 개설된 유튜브 채널이라 확장성이 제한되고, 하이브에서 섭외해 준 걸로 보이는 단 한 번의 개인 화보도 한국이 아니라 싱가포르 잡지에 실렸고, 일본 활동은 회사가 팬덤에게 소개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론 개인 활동을 해도 구색에 비해 프로모션 효과가 클 수 없다. 또한 일본에서 진행 중인 광고 활동이 곧 종료되는 것으로 알려져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을 것이란 웅성거림이 들린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미야와키 사쿠라 (사진=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미야와키 사쿠라 (사진=연합뉴스)

이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문제다. 아이돌은 그룹 활동을 하기에 멤버 개개인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해도 누구를 노출할지 결국 회사가 정한다. 회사의 결정에도 나름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로 인해 이 산업에 투신한 이들의 젊은 날 땀과 꿈의 결실이 좌우되는 면이 있다. 케이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한국 기획사의 처우에 기쁨과 분노를 느끼는 이들도 나라마다 존재한다. 이 주제가 케이팝 산업에서 꾸준히 논쟁되어 온 이유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사쿠라에 대한 처우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이들은 사쿠라가 그룹 활동에 만족감을 표해 온 사실을 말하며 “자기가 괜찮다는데 무슨 기회가 필요하냐”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멤버가 그룹에 품은 애정을 멤버에게 불리한 맥락으로 거론하는 것에 비판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혹시 케이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낯선 쟁점에 나름의 판단을 내려 보며 ‘공정성’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테스트해 보는 기회로 삼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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