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여자 아이돌 초동 앨범 판매량에 백만이란 숫자가 찍히다니. 에스파 컴백 앨범 ‘Girls’ 발매 후 일주일 판매량이 무려 112만 장이 나왔다. 직전까지 걸그룹 최고 기록이었던 블랙핑크 68만 장보다 40만 장 이상 많고, 신인 급 걸그룹 중에선 아이브 33만 장보다 80만 장이 많다. 보이그룹 중에서도 초동 100만 장 이상 판매한 그룹은 방탄소년단, 세븐틴, NCT DREAM, 엔하이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다섯 팀밖에 없다. 보이그룹과 걸그룹 앨범 매출은 현격한 차이가 있는 현실을 넘어 어지간한 보이 그룹만큼 앨범을 파는 걸그룹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초동 100만 장은 걸그룹이 도저히 닿을 수 없어 보여 빈말로라도 목표치로 얘기되지 않던 판타지 같은 숫자다. 이 경계가 드디어, 단숨에 부서진 것이다.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초동 판매량은 단계적으로 천장이 무너져 왔다. 2년 전 아이즈원이 ‘BLOOM*IZ’ 앨범으로 35만 장을 팔았을 때도 기존 최고 판매량을 20만 장 경신한 큰 폭의 도약이었다. 이때도 걸그룹의 한계를 넘었다는 수식어가 쏟아졌지만 불과 2년 만에 그 기록이 70만 장 이상 늘어났다. 케이팝 음반 시장은 비약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걸그룹보다 음판 규모가 큰 보이그룹은 상승세가 더 크다. 초동 100만 장 이상 판매한 다섯 팀 중 세 팀이 올해 상반기에 탄생했다.

차례대로 걸그룹 음판 시대를 열었지만, 아이즈원과 에스파는 그 동인과 매출 구조가 상당히 다르다. 아이즈원은 초동 35만 장 중 국내 판매량이 20만 장 이상으로 추정된다. 에스파는 상당수가 해외 판매량이고 중국 공구가 80만 장가량으로 추정된다. 즉, 아이즈원은 국내 시장 중심이었고, 에스파는 해외 시장, 중국 시장 중심의 매출 구조다. 어떤 이들은 에스파 초동에서 중국 공구 비중이 크다는 이유로 의미를 깎으려고 한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해외 지역에서 영향력이 크다는 건 폄하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중국 공구 비중 확대는 에스파에만 해당하는 경향이 아니다. 에스파는 절대적인 공구 수치가 큰 것이지 비슷한 체급의 그룹들에 비해 음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편이 아니다. 중국 공구는 대부분 초동 판매량에 투입되는데, 에스파는 전작 ‘SAVAGE’ 총판매량이 70만 장이나 되고 초동 주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이 팔렸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아이즈원 [오프더레코드 제공=연합뉴스]

에스파 초동 백만 장은 해외 시장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과 걸그룹 산업에 대한 중국 공구의 영향력을 시사한다. 국내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음반은 아이즈원의 20만 장 정도가 한계치였을 것 같다. 아이즈원은 국내 남성 팬덤 중심이었고 국내 걸그룹 시장은 파이가 적다. 국내 남성 팬덤과 해외 팬덤은 콘셉트와 비주얼 취향이 배치되는 면이 있어서 전자를 중심에 둔 그룹이 후자도 잡기는 어렵다. 보이그룹은 국내 팬덤 시장도 크고 다양한 해외 지역에 팬덤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 걸그룹은 중국 공구 비중이 더 높다. 방탄소년단이 아이돌 초동 최고 기록 337만 장을 팔았을 때 중국 공구는 77만 장이었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올해 판매한 125만 장 중 중국 공구는 19만 장이다. 반면 블랙핑크는 68만 장 중 50만 장이 중국 공구고, 레드벨벳은 44만 장 중 31만 장이다.

이제 걸그룹은 중국 시장을 잡지 못하면 일정한 수치를 넘어선 큰 판매량을 올릴 수가 없다. 저 그룹들이 중국에만 의존한다는 뜻이 아니다. 중국 공구를 무조건적 전제로 ‘깔고’ 가지 않으면 성장 동력에 한계가 있고 빅 네임이 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건 걸그룹 산업에서 특정한 멤버들의 개인 파워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팬덤은 개인 팬덤 성향이 그룹 팬덤 성향보다 우세하고 코어 팬 성향이 강한데, 특정한 타입의 아이돌을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기준이 뚜렷하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그룹 내 입지와 처우에 민감한 것도 특징이다. 즉 현지에서 선호되는 멤버가 기회를 얻어 성장해야 다른 멤버들에게도 팬덤이 유입되고 멤버 간 공구 경쟁이 일어나 그룹 전체 공구가 늘어나는 시너지가 발생한다.

케이팝 산업에서 중국 시장은 규모가 작은 내수 음반 시장을 보충해 주는 대안이 되었다. 특히 걸그룹 산업계 전반에 보이그룹만큼 음반을 팔 수 있는 잠재력과 일정하게 보장되는 매출액을 보급해 줬다. 국내 시장은 나눠 먹을수록 파이가 고갈되는 레드오션인 데다 규모가 줄어드는 시장이지만, 중국 시장은 계속해서 확장돼 가고 경쟁자가 생길수록 파이가 확대된다.

에스파, 미국 음악 축제 '코첼라' 출연 [SM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에스파, 미국 음악 축제 '코첼라' 출연 [SM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그럼에도 ‘중국몽’이 현실을 대체하는 비전이 될 수 있을까? 가령, 에스파 초동 100만 장은 아이즈원 30만 장보다 큰 매출 지표일까? 혹은 에스파는 음판 기록이 비슷한 보이그룹만큼 수익성이 좋은 그룹일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중국 시장은 현지 활동이 막혀 있어 음판 외에는 그룹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현지 투어 공연이 불가능하고, 제조업에 속해 가장 마진이 좋은 굿즈를 콘서트를 통해 파는 것도 불가능하다. 즉, 초동 음판이 곧 팬덤 세일즈 규모로 통하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시장이다. 여전히 가장 수익성이 좋은 것은 예전부터 투어 시장이 활성화된 일본 시장이고, 현재 활발하게 시도되는 미국 시장을 포함한 월드 투어는 글로벌 그룹이라 호칭할 수 있는 후광을 입혀 준다.

하지만 저 시장들은 각각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고 상관관계로 엮여있다. 중국 공구를 통해 음판이 늘어나면 여타 해외 시장에서의 지명도가 올라가고, 여타 시장에서 지명도가 있어야 중국에서도 팬덤이 붙는다. 케이팝 글로벌 시대에 각각의 해외 지역 시장은 성격이 분화된 채 연동되며 특수한 메리트를 주고 있다. 중국 시장은 단절돼 있지만 단절되지 않은 채 글로벌 시장의 중요한 영토로 부속되었다. 중국 공구의 영향력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 이 지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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