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호반건설의 서울신문 대주주 등극이 기정사실화된 것과 관련해 "편집권 독립이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내부 반응이 나왔다. 우리사주조합은 호반건설과의 협상을 통해 발행인-편집인 분리 등을 약속받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약속"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우리사주조합이 13일부터 15일까지 실시한 조합원 투표 결과, 투표자 57.84%(236명)가 호반건설의 지분 인수에 찬성했다. 반대는 42.16%(172명)다. 투표율은 96.45%로 423명 중 408명이 투표에 나섰다. 우리사주조합은 주주들에게 주식 매각 동의를 얻는 위임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서울신문 (사진=미디어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에 제시한 지분 인수 최종 제안은 ▲고용보장 ▲편집권 독립 ▲위로금 6천만 원~9천만 원 등이다. 구체적으로 호반건설은 기존 노사 단체협약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호반건설은 우리사주조합과 전직 배치, 구조조정, 분사 등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편집권 독립’은 발행인과 편집인을 분리하고, 편집인이 제작회의를 주관하는 방식으로 보장된다.

이호정 우리사주조합장은 15일 투표가 끝난 후 내부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 “큰 틀의 협상안, 인수금액, 고용보장, 편집권 독립, 임금과 복지, 투자는 확정되었지만 가장 효율적인 세금 납부 방법을 포함해 세부적인 디테일 조정을 객관적인 외부 출신 전문 변호사와 세무사 등의 검증을 통해 확정받겠다”고 밝혔다. 이 조합장은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호반 측이 공표했던 모든 제안이 실제 문서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호반건설이 우리사주조합에 제시한 고용보장, 편집권 독립 조건이 추상적이라는 내부 비판이 나온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없어 향후 호반건설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사주조합은 호반건설에 구체적인 방안을 요구했으나 호반건설의 반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

당초 우리사주조합은 ▲사원들의 동의 없는 분사를 금지하는 조항 ▲이사 불신임 시 임명 철회 ▲회사의 주주, 경영진에 의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사 출고 금지 ▲상업적 이익 출고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징계 금지 ▲편집국장 연임 금지 ▲임금 및 정기상여금 인상 ▲위로금 1억 원 이상 보장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호반건설이 이를 거부했다.

우리사주조합은 최종 합의가 끝난 후 조합원들에게 “전직 배치 금지, 구조조정 금지, 분사 금지 등은 호반과 이미 합의했고 호반건설 회장도 같은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에 최종 협약서에 넣도록 할 것”이라며 “편집권 독립을 위한 대다수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금인상은 애초 제시안보다 결국 한 걸음도 못 나갔다”고 밝혔다.

내부 구성원 "편집인-발행인 분리, 의미 없다"

서울신문 구성원 A 씨는 “발행인·편집인 분리는 얻어낸 것이 맞다”면서 “하지만 편집인과 발행인을 사실상 호반건설이 지명하게 될 것이다. 반쪽짜리 약속”이라고 지적했다. A 씨는 “사원 입장에선 편집국장에 힘이 실려야 하는데, 직선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현재 사장이 편집국장 2명을 지명하면 사원 투표를 통해 최종 1인을 선발하는 구조다. 호반건설 측 편집국장이 2명 지명되면 투표가 의미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모든 협상이 그렇겠지만, 악마가 디테일하게 숨었다”며 “한 번 만들 때 잘 만들어야 했다. 호반건설이 큰 틀에서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만으론 고용안정이나 편집권 독립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A 씨는 고용보장 방안에 대해 “단체협약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구성원 B 씨는 “우리사주조합의 요구사항이 다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면서 “호반건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이번 지분 매각 결정은 앞으로 서울신문이 어떻게 될 건지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구성원 C 씨는 “편집인과 발행인을 분리한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이제 서울신문은 스스로 ‘독립언론’이라고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사원대표를 이사로 임명하게 하고, 편집이사와 편집국장을 우리 손으로 뽑게 해야 했지만 결국 남은 건 독립언론이라는 자부심보다는 ‘빵’”이라고 토로했다.

(사진=연합뉴스)

호반건설은 2011년 KBC광주방송을 인수할 당시 “지역방송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지역문화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광주방송은 이듬해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을 종영했고, 호반건설 홍보 기사를 다수 작성했다.

서울신문이 2019년 작성한 <광주방송 호반 보도, 인수된 뒤 ‘12배’…건설자본의 ‘언론 사유화’ 우려 현실로> 기사에 따르면, 광주방송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74건의 호반건설 관련 보도를 했다. 이 중 호반건설 비판 기사는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은 “건설자본에 의한 ‘언론 사유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면서 “시청자들은 원치 않아도 호반건설 관련 보도를 접하고 있는 셈”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호정 우리사주조합장은 15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세부 사항은 결렬된 것도 있지만 (최종 제안에) 고용안정·편집권 독립 조항이 있다”며 “결렬된 세부 사항만 강조한다면 선택적인 주장이다. 편집권에 간섭하지 않고, 보복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합의가 됐다”고 반박했다. 이 조합장은 “호반건설은 간섭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면서 “(반영되지 않은) 세부 조항으로 전체를 바라본다면 불공정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호정 조합장은 편집국장 직선제가 무산된 것에 대해 “모든 기자가 직선제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며 “투표 결과 직선제에 찬성한 기자는 42%, 현행 체제를 유지하자는 기자는 37%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 조합장은 5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더 우선한 편집국장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A 씨는 “호반건설이 제시한 일정에 따라 서두르다 보니 디테일을 해결하지 못했고, 협상 과정이 공개되지 않았다”며 “중간중간 조합원들의 의문을 풀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C 씨는 “협상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굉장히 시끄러웠다”면서 “내부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결국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정리하기 쉽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호정 우리사주조합장은 사내 게시판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1번의 상견례, 2번의 공식적인 실무협상이 적은 것은 사실이나 상견례가 있었던 날부터 오늘까지 우리 요구안에 근접하기 위해 거의 매일 협상을 계속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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