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최근 정치 기사에서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는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과거 정치권에서 소위 '한가닥'했던 인사들이 당권을 틀어쥐고 쥐락펴락하려 한다는 것이다.

2018년 8월 정계의 올드보이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14~16대 국회의원, 경기지사를 지낸 손학규 전 대표가 바른미래당 당 대표 도전을 선언했고,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한 4선의 정동영 의원은 민주평화당 당 대표로 선출됐다. 손 전 대표의 나이가 72세, 정 대표의 나이가 66세다.

▲손학규 전 대표(왼쪽)와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연합뉴스)

피로감을 있는 게 사실이다. '또 그 사람이야'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한낱 노욕' 정도로 치부하는 댓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수 언론도 이들이 '올드보이'라며 비판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나이와 경력보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콘텐츠'가 하나로 모아졌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를 두고 양극단으로 치닫는다는 지적은 늘 있어왔다. 거대양당을 중심으로 한 영호남 지역주의와 반대를 위한 반대는 한국 정치를 후퇴시키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지난 5일 정동영 대표의 민주평화당 당 대표 선출 직후 던진 화두는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의회를 만들고,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이끌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동영 대표의 선거제도 개혁 의지에 동참했다. 문 대통령은 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선거제도 개혁에서 역할을 해달라"고 격려했다. 정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를 바꾸는 것을 잔다르크의 심정으로 뚫어보고자 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8일 바른미래당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앞세웠다. 손 전 대표는 "선거제도를 비롯한 잘못된 정치제도를 바꾸겠다"며 "이것이 손학규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밝혔다.

손학규 전 대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잘 알고 있다. 손 전 대표는 "'이제와서 무얼 하려고 하느냐', '무슨 욕심이냐'는 만류와 비아냥과 비난을 무릅쓰고 나왔다"며 "한국정치의 개혁을 위해 저를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여기 섰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대표는 "다원주의 민주사회의 특성을 살려서 다당제 정치로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갑자기 올드보이들이 선거제도 개혁을 들고 나와 어떻게든 한 자리 차지해보려 한다는 비난을 가한다. 그러나 손학규 전 대표의 행보를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지난 6월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인 비례민주주의연대에서 선거제도 개혁 추진 방안에 대한 토론 형식의 행사가 열렸다. 손 전 대표는 초대장을 보낸 것도 아닌데,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국회에서 열리는 각종 토론회에 참석해보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축사만 건넨 후 자리를 뜨기 십상이다. 그러나 손 전 대표는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경청했다고 한다. 지난달 15일에는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토론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토론의 주제로 올리기도 했다.

선거제도 개혁은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소수의 민심도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특성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영호남 지역주의를 허물어뜨리고, 정당의 정책경쟁을 유발하며, 다양한 원외정당의 의회 합류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민주성이 보장되며 의회의 대표성이 강화돼, 대의민주주의의 기틀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이러한 선거제도 개혁의 장점을 알면서도 거대 정당은 자신들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외면해왔다. 자유한국당은 철저히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외면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삼았던 민주당은 정권교체 후 미온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드보이라 비난하는 손학규, 정동영 두 정치원로가 선거제도 개혁의 선두에 선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두 분이 선거제도 개혁을 전면에 내건 것은 오랫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이런 식의 선거제도로는 정상적인 정치가 불가능하단 것을 느낀 결과라고 본다"며 "두 분이 나서주면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도 탄력을 받지 않겠나"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손학규, 정동영 두 정치인이 진정성을 인정받아야 할 대상은 언론이 아니라 국민이다. 이제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국민들에게 선거제도 개혁의 진정성을 어떻게 인정받을 것이냐이다. 두 정치원로의 발언에 답이 있다. 잔다르크의 심정으로 마지막 소명을 향해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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