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사업자들이 올해 들어 ‘재핑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TV에서 채널을 바꿀 때마다 발생하는 이른바 ‘채널전환시간’에 광고를 집어넣는 방식이다. 그러나 규제기관은 방송법 상 방송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내년 총선부터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규제방안을 논의해야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도 모두 “규제 근거도 없고 담당자도 없다”는 해명만 내놓고 있다.

방통위 이헌 방송광고정책과장은 2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티브로드와 씨앤앰이 재핑광고를 하고 있고 다른 곳도 확대하려고 한다”며 “관련해서 민원이 들어와 규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핑광고 기술을 개발하고 서비스 중인 ‘재플’에 따르면, 씨앤앰은 지난해 11월 시범광고를 시작해 올해 1월부터 상업광고를 송출하고 있다. 티브로드는 지난 8월부터 1.0~1.2초의 재핑타임에 상업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재플의 재핑광고 서비스는 지난해 6월 미래부가 주최한 스마트미디어 X캠프 사업에 선정됐고 그해 12월에는 미래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재핑광고 메커니즘. 재플 사업소개서에서 갈무리

재핑광고는 통신망을 활용해 셋톱박스에 광고를 미리 저장한 뒤 채널전환시간(1초에서 1.5초 안팎)에 TV 화면에 띄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방송법 상 방송광고가 아니다. “방송법 상 방송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규제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방통위 설명이다. 방통위는 최근 씨앤앰과 티브로드 가입자에게 재핑광고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으나 규제방안이 없는 탓에 재핑광고를 방치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자를 규제하는 미래창조과학부 또한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래부 디지털방송정책과 관계자 또한 “인터넷망을 이용한 광고이기 때문에 방송광고로 구분할 수 없고,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또한 따로 있지 않고, 약관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부에는 재핑광고는 물론 ‘간접광고 상품-T커머스 연동형 광고’ 같이 새로운 유형의 광고를 규제하는 실무자가 따로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규제공백 때문에 재핑광고 같은 변종광고를 내보내는 유료방송사업자가 늘어나고, 사업자들이 재핑시간을 인위적으로 늘려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재핑과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인위적으로 재핑시간을 늘릴 수는 없다”고 설명하지만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가입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시간’까지 재핑광고를 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광고 내용이다. 재플 관계자는 “사업 초기 단계라 공익광고와 케이블사업자의 ‘채널광고’가 대부분”이라고 했으나 규제가 없는 탓에 정부 정책 홍보, 정당광고, 사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정부와 정당은 “경제는 새누리당입니다” “노동개혁으로 청년 일자리 만듭시다” 같은 광고를 내보낼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거운동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재핑광고 예시. 재플 사업소개서에서 갈무리

일부 사업자들이 재핑광고를 늘리는 것은 ‘가입자 이탈’이라는 측면에서 부담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방통위에 접수된 민원 때문에 사업자들과 만났고 사업자들은 ‘실제 재핑광고가 광고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미미하고 재핑시간과 광고가 늘어난다면 시청권 침해 논란도 있고 가입자가 광고 때문에 이탈할 수 있어 재핑 광고를 늘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료방송사업자 대다수가 재핑광고를 시작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CJ헬로비전의 경우, 재핑광고를 하지 않고 있지만 씨앤앰보다 먼저 재플과 서비스 계약을 맺고 현재로 사업을 검토 중이다. KT스카이라이프 또한 현재 재플광고를 집행하지 않고 있으나 이미 지난 2012년부터 재플광고 상용화를 시도하고 서비스를 검토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시청권 침해 논란도 크다. 재핑광고를 내보내는 유료방송사업자에 가입한 가입자가 채널 상승 버튼을 눌러 5번에서 11번으로 전환한다면 채널전환은 6번이다. 최소 6초에서 9초의 재핑시간이 생기게 된다. 이럴 경우, 가입자는 보지 않아도 되는 광고에 6초 이상 노출된다. 그러나 정부는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 이헌 과장은 “셋톱박스 설정에서 재핑광고를 지울 수 있다는 안내 정도만 하고 있다”며 “규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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