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명절 연휴가 끝나고, 이제 일상으로 복귀할 때다.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의 기본 구도는 바뀌지 않은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인들이 명절을 나는 동안 세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일본에서는 새로운 자민당 총재로 ‘여자 아베’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가 선출됐다. 최근 선거에서 나타난, 참정당 등으로 보수 표심 분열을 우려한 당원표가 극우색이 확실한 다카이치 사나에로 몰리고, 당내 최대 파벌인 아소파와 이시바 시게루 체제에서 비주류였던 구 모테기파 등이 표를 몰아준 결과다.
연립 정부 구성은 내각제의 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노선이 워낙 극우적이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총리 지명 투표 이전 자신들의 우려에 대한 확답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야당들은 공명당을 포함한 사실상의 반 다카이치 연정을 꾸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현실성이 크지는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자민당이 이러한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이시바 시게루의 대미 협상안을 희생양으로 삼는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 개막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2박 3일간 일본을 먼저 방문하지만, 정작 APEC 일정은 29일 당일치기로 참석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외교 무대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형국'이라고 보도했다. 다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일정 참석을 미중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나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9일 한층 강화된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미국 관세 압박에 맞서 발표한 조치에 강도를 끌어 올린 모습이다. 이는 결국 APEC 일정 중에 있을 미중정상회담을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테이블 위에 올릴 카드를 한 장 더 추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방일은 추가 누수를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보이기도 한다. 만일 새로운 총리가 취임하게 돼 이시바 시게루의 대미협상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사태라도 일어나게 되면 곤란해진다. 따라서 누가 총리가 되든 방일 일정을 확정해 놓고 압박을 가하려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입장에서 여러 어려움을 우려하게 된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협상의 고삐를 죄고 있는 형국이라면 한국의 대미 관세협상 역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새로운 총리로 유력한 자민당 신임 총재가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것도 골칫거리다. 한일 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조건이 계속 돌출될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의 상황이 이렇다면 APEC 정상회의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 여의도 정치는 쓸데없는 논쟁으로 날을 지샌다. ‘냉장고를 부탁해’ 논란 같은 입씨름이 그렇다. 국민의힘은 어찌됐든 제1야당이다. 책임 있는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명절을 맞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것만으로 연휴 내내 시빗거리로 삼을 일인지 의문이다. 물론 대통령실의 설명이 더 정확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전면적으로 반발할 일인가?
책임 있는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문제다. 이를테면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하라고 하면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권이 친중적이어서 미국, 일본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에 기댄 전형적 비난으로 일관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조건에서 봤듯 현재의 난국은 비전통적 방식으로 일관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극우 색깔의 총재를 선출한 일본 자민당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오로지 ‘프레임 짜기’에만 골몰하는 국민의힘에 제대로 대응해야 할 여당이 딴청을 피우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전히 사법 및 언론 등에 대한 ‘개혁 드라이브’를 강조하고 있다. 개혁은 필요하다. 그런데 ‘개혁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개혁을 잘 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대통령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당이 좀 더 전략적으로, 섬세하게 움직여 줄 것을 주문하고 있음에도 계속 같은 태도인 것은 문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이제 사람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이중 플레이’를 의심할 것이다.
정청래 대표는 선거에 있어 ‘중도는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지지층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내부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과거 집권 경험의 사례를 의식한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좀 더 유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권이 검찰, 사법부, 언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정권이 아니라 이례적 대외 정세 속에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권이라는 점을 유권자들이 인식하는 것이 여당에도 도움 되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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