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중국이 주도하는 정치 이벤트가 마무리 되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오른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와 함께 북중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연속된 장면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북미관계의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이재명 정권의 대외정책에 위기와 기회를 함께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언론의 분석은 거의 동일하다. 북한 중국 러시아가 뭉쳐 ‘반미연대’를 만드는 구도가 현실화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반미연대’는 늘 존재했고 중국은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늘 시도해왔다. 그런데 이번 시기에 이 점이 특히 강하게 강조된 것은 미국의 비상식적 대외정책이 ‘반미연대’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은 대부분 국가의 반발을 불렀다. 이 중에서도 인도의 사례는 의미심장한 데가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이라는 명명에서 보듯, 미국은 인도를 정치경제적으로 중국과 떼어 놓기 위한 시도를 역사적으로 계속해왔다. 특히 중국과 경제적 대립구도를 키우면서 미국에 있어서 인도의 필요성은 한층 더 커졌다. 중국의 빈자리를 인도게 메워줘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는 이유로 50% 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대러시아 제재의 한도 내에서 거래를 하고 있고 러시아산 원유 구매가 수요분산이라는 측면에서 국제유가에 도움이 된다는 인도의 항변은 무시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인도로서는 더 이상 미국에 기대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다면 중국 혹은 러시아로 기울어지는 게 당연하다.
인도가 상하이협력기구 회의에 참여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으로 가져가는 것은 인도로서도 부담이기 때문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전승절 열병식에 참가하는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다. 중국 방문 전에 일본에 들러 경제협력 메시지를 만든 것도 ‘줄타기 외교’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인도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외전략의 주요 축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의 시각으로 보면 미국의 실책(?)으로 일어난 이러한 세계 질서의 변화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최전선은 남중국해 일대와 대만이 될 것이다.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 여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의 푸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본래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고 핵실험에 대해서도 역내 평화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계의 목소리를 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연합 국가들이 나서는 최근 흐름을 볼 때 우크라이나 전쟁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종전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등 자신들만의 ‘다자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과 중국의 이해관계는 최근 일치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주장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만일 중국 등 주변국가가 북한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 하고 용인하게 되면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3단계 비핵화론(동결-축소-폐기)은 안갯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또 북한 중국 러시아의 삼각협력이 계속된다면 북한을 상대로 한 대화 시도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가령 북한 중국 러시아의 연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세계 질서를 이끄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선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과 러시아라는, 서방국가의 관점에서 ‘불량국가’의 존재는 향후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처지도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를 장기화 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결국 미국 등 서방국가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을 적대하는 국면에서 북중러의 연대가 러시아에게 득이 될까?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북한이 처한 모순은 결국 북미관계를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북한도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등의 언급으로 볼 때, 정상 간 대화 자체를 닫는 모습은 아니다. 북미대화의 전개 방향에 따라 톈안먼 망루의 구도는 얼마든지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몸값이 올라간 것 자체를 외교안보적 자율성 확보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단기적으로는 한미일 협력 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지만 미국을 상대로 조선업, 반도체 등을 지렛대로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관세협상 과정에서 ‘마스가 프로젝트’의 등장은 이런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두 자율성이 만날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일부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서 벌어진 정치 이벤트를 흥미 위주로 다룰 것이 아니라, 외교안보적 환경 변화와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다각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장기 전망을 다듬는 데 정부 언론 정치권이 지속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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