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장동혁 체제의 등장은 여의도 호사가들에게 어떤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그동안 어느 정도 소극적 차원에서 가까스로 부정할 수 있었던 국민의힘 ‘극우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신호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 같다. 21세기 세계 극우정치는 ‘극우포퓰리즘’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장동혁 체제의 등장은 한국의 보수정치가 이 문법을 따르는 과정의 필연적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먼저 ‘극우포퓰리즘’이라는 명명에 대해 생각해보자. 극우포퓰리즘은 포퓰리즘적 시도가 극우정치적 형태로 나타나거나, 극우정치가 스스로의 목표 달성을 위해 포퓰리즘적 문법을 활용하는 것을 일컫는 표현일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포퓰리즘적 수단을 통한 극우적 세계관의 정치적 동원이라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동일하다.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프랑스 국민연합(R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이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과 글로벌 극우포퓰리즘의 연결고리를 우리가 최근 확인한 것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셜미디어에 쓴 것은 마가(MAGA) 진영의 악선동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악선동은 국내의 극우주의자들로부터 이어진 연결고리가 트럼프 주변의 인사들에게까지 닿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권에서, 특히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러한 흐름은 노골적으로 강화되었다.

이런 현상이 국내의 소수에 지나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이 트럼프라는 지도자의 특이성에 영향을 미친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면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사안의 본질은 이 문제를 다루는 국민의힘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전당대회 막바지인 상황에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트럼프의 메시지를 두고 “정치보복 중단 및 입법 폭주, 사법 유린 등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정을 멈추라”는 등의 입장을 냈다. 나경원 의원도 “그간 이재명 민주당 정권이 보여준 독재적 국정운영, 내란몰이, 사법 시스템의 파괴, 야당에 대한 정치보복, 언론에 대한 전방위적 장악이 미국의 눈에 숙청과 혁명처럼 비치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사실상 트럼프 메시지에 동조한 것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간 직통라인이 작동하면서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만일 이게 작동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브라질의 경우를 떠올려보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쿠데타를 시도한 전직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에 대한 사법 절차를 룰라 행정부가 멈추지 않는다는 이유로 브라질에 50% 관세를 부과했다.

국민의힘이 국익을 생각하는 수권정당이라면 트럼프의 메시지에 동조하는 것은 이례적이고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김문수 전 장관보다 더 노골적으로 극우적인 캠페인을 벌인 장동혁 의원이 대표로 당선됐다. 주진우 의원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은석 특검을 향해 “조은석 미국 이름이 혹시 J. Smith?”라고 했다. 자제하기는커녕 ‘트럼프 코드’에 적극적으로 맞추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월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서울=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월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있다. (서울=연합뉴스)

과거 한국 사회의 주류를 책임졌던 보수정당을 이런 꼴로 만든 것은 물론 윤석열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극우포퓰리즘(그러니까 극우+포퓰리즘) 정치의 맹아는 윤석열 이전에 이미 국민의힘에 존재했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을 전체주의, 독재 등으로 칭하면서 자신들을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자로 규정하는 논리를 구사하던 때부터 시작됐다. 이는 포퓰리즘의 전형인 기득권 대 민중의 구도를 ‘북한-중국식 전체주의 대 미국식 자유주의’의 대결 구도라는 현대적 색깔론과 겹치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 윤석열의 대선 캠페인은 자신이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핍박받은 피해자라는 서사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이 구도의 효용을 극대화 한 것이었다. 즉, 국민의힘이 원래 하던 정치를 더 열심히 한 것뿐이었다는 얘기다.

장동혁 체제를 버티지 못하고 비주류가 탈당해 새로운 세력을 꾸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별로 희망이 생기지 않는 건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한동훈 전 대표를 비롯한 그 비주류에 해당하는 인사들은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힘의 한국적 극우포퓰리즘을 이루는 정치 코드 자체는 공유하는 인사들이다. 그러니 신당 창당 등 새로운 세력을 만들기 위해 나설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고, 그런다한들 거기에 어떤 희망이 있을지 장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즉, 보수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지 윤석열에 선을 긋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해온 정치와 다른 새로운 노선과 전망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아무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보수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