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박대형 기자] 불법 매각 논란에 휩싸인 허핑턴포스트(이하 허프) 노동조합이 한겨레 경영진에 대해 당장 교섭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허프 노조는 1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우성 한겨레 사장이 허핑턴 매각을 위법적으로 강행하고 있다"며 "한겨레가 거의 하루 간격으로 '노란봉투법'을 지지하는 기사를 써왔는데 우리는 단 한 번의 교섭 기회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겨레는 허프의 지분 100%를 '비즈니스포스트'에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겨레는 협상 과정에서 허프 노조와 단 한 차례의 공식 교섭을 진행하지 않아 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한겨레 경영진에 대해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한겨레 기자 출신이 창간한 온라인 경제매체다.

(사진=허프 노조)
(사진=허프 노조)

"한겨레가 단체교섭 창구 봉쇄"

허프 노조는 "고용과 근로조건, 매체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단체교섭을 할 '사용자'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매각을 주도한 최우성 사장, 정연욱 경영관리본부장, 이상준 경영기획실장 등이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고 매각 관련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프 노조는 "최우성·정연욱·이상준 3인은 매각 과정에서 육아휴직자 고용승계 배제, 공채 일정 지연, 정규직 채용자의 갑작스러운 계약직 전환, 희망퇴직 강요 등 인사권을 행사하고 핵심 의사결정에 관여해 왔다"며 "특히 정연욱과 이상준은 허핑턴의 등기임원을 겸직하며 강력한 경영권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경영자문 성격일 뿐'이라며 사용자 지위를 극구 부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 3인은 '교섭이 가능한 유일한 주체는 유강문 대표뿐'이라고 하며 단체교섭 창구를 구조적으로 봉쇄했다"고 비판했다.

유강문 허핑턴 대표는 한겨레 디지털전략담당 상무이사 출신으로 한겨레 경영진의 지시를 이행하다 지난 7월 말 사임계를 제출했다. 허핑턴 노조에 따르면 최근 사무실에 나타난 유 대표는 매각 문제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후임 대표가 임명되지 않았으니 상법상 내가 여전히 사용자"라면서도 "소멸시효가 임박한 단체협약 재체결만 교섭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겨레와 허핑턴 경영진이 매각 관련 교섭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는 얘기다. 

(사진=허프 노조)
(사진=허프 노조)

"친기업 보수 매체로 팔아넘겨"

허프 노조 곽상아 부위원장은 정 본부장에 대해 "형식적으로 요구사항 받아서 매각 최종 타결 지으면 그게 노조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게 되느냐"며 "이전의 정규직 직장을 퇴사한 기자는 첫 출근하고 3일째 되는 날에 '3개월 계약직' 서류에 서명해야 했다. 이게 구성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정상적인 매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했다.

곽 부위원장은 "당시 우리는 '이제 허핑턴이라는 브랜드를 잊어야 할 것', '성수동 사무실로 이전하라', '협상 속도에 동의하지 않으면 희망퇴직하라', '7월 셋째주부터 희망퇴직 받을 것' 등의 발언을 경영진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곽 부위원장은 "우리를 팔아넘기려는 비즈니스포스트는 친기업 보수 성향의 매체로 CEO 동향을 쓰고 광고주들 사이에서 우려의 눈초리를 받는 곳"이라며 "호주머니에 돈 좀 채워보겠다고 자식을 이런 부모한테 팔아넘기는 게 맞느냐"고 질타했다.

한겨레21 신다은 기자는 연대 발언에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한겨레에서 '친자본' 매체 비즈니스포스트로 옮겨가면 언론사의 성향과 기사의 가치가 크게 바뀌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며 "허핑턴이 팔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구성원들이 이 사실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신 기자는 한겨레가 매각의 경위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고용승계 조건 등에 대해 충분한 협상을 진행해야 했다며 "노조와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고 사업을 넘겨줄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인식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허핑턴 기자들이 한겨레 소속으로 다양성과 브랜드가치에 기여한 시간들이 한순간에 한겨레 경영진의 결정만으로 내쳐지는 것을 보며 이것이 한겨레가 표방하는 '노동존중'인가 의문이 들었다"며 "한겨레를 위기에 빠뜨린 것은 최소한의 절차도 지키지 않은 경영진이지 그 경영진에 항의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한겨레 ⓒ허프포스트코리아,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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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란봉투법 강조하더니···" 

허프 노조는 "한겨레는 그간 보도를 통해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하는 사용자가 노조법상 교섭 의무를 져야 한다는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며 "실질 사용자인 최우성 사장은 매각 관련 교섭 책임을 회피하며, 지금껏 한겨레 구성원들이 쌓아 올린 한겨레의 명분과 가치를 뿌리째 훼손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허프 노조는 "경영진이 계속해서 교섭 책임을 회피한다면 이는 한겨레라는 이름을 배신하는 행위일뿐 아니라 '노란봉투법' 입법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용자 책임 회피 사례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겨레는 지난달 30일 <[사설] 노란봉투법 취지 왜곡하는 과잉 불안 조장 멈춰야> 기사에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의 삶이 파탄 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며 "이런 취지가 반영된 법원 판단이 이미 나온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에도 부합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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