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소설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내게는 2016년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다시금 귓바퀴를 흠칫거리게 한 소식이었다. 노벨상이란 이름 자체가 대수로운 것은 없다. 100여 년 전부터 해마다 수상자들을 내고 있는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20여 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한 차례도 노벨상을 얻지 못한 나라에서 드디어 수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진귀하다. 몇몇 한국 문인이 설익은 기대를 떠안는 역할로 매년 신문 지상에 불려 나오는 민망함을 겪은 문학상이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이 국가적 경사 앞에서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한강의 소설에 담긴 광주 5.18과 제주 4.3에 대한 기억과 고발의 시선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파라 불리는 이들 중엔 보수 정권으로 분류되는 정부가 자국민을 학살한 역사를 인정하기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 등에선 한강의 수상 소식과 작품의 문학성을 폄하하는 댓글도 달린다고 한다. 이들의 반응은 부인하고 싶은 역사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근원으로 보인다.

여기서 던지고 싶은 물음은 노벨 문학상, 나아가 수상 제도 일반의 기능과 의미다. 저들의 두려움은 노벨상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과 통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에 의해 작품에 담긴 역사적 메시지도 공인받을 것이다. 자국 내에서 반론과 부정에 시달리던 역사가 세계 시민들에게 권장 도서로 소개되며 자국 내에서 빚는 논쟁으로 어찌하기 힘든 지위를 얻는다. 이것은 문학이 품은 사회적 영향력이다.
예술상의 영향력과 예술의 작품성은 혼동되곤 한다.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발간되었고, 이번 수상과 함께 거론된 『소년이 온다』는 2014년에 나왔다. 그렇다면 맨부커 상을 받은 2016년과 노벨상을 받은 2024년 이전까지의 10년, 17년 동안 한강은 지금보다 격이 높지 않은 소설가였을까? 아니면 노벨상을 수상하며 그는 한 단계 높은 작가로 진화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한강이 국제 문학상을 수상한 건 그의 작품 세계에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 서구 문학계의 시야에 들어가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계기가 되어 준 것이 흔히 이야기되는 활발한 번역 사업과 비서구 여성 작가에 대한 서구 문학계의 관심 같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국내에서 한강처럼 좋은 평가를 받던 작가들이 그 시야에 충분히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강보다 낮은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한강의 수상은 그 개인을 떠나 한국 문단 전체의 상황을 반영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한림원이 한강에게 시선을 집중한 것엔 그의 작품이 역사성을 담고 있어 한국이란 나라에 접근하는 통로가 된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 같다. 때문에, 수상 소식이 한국 문화의 달라진 위상을 반영한다는 평들은 적절하다. 그 위상을 보다 확장하는 받침대가 될 것이다. 국가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집단이 국가적 위상의 기폭제가 될 소식에 웃지 못하는 것은 딱한 일이다. 이들은 노벨상의 파급력에 대해 작품의 가치를 분리하는 어조를 취하지만, 그것은 한강의 소설을 그 자체로 판단한 결과가 아닌 그들 자신이야말로 노벨상의 권위에 전전긍긍하며 얽매이는 태도다. 그들이 비판하는 한강 수상에 대한 막연한 열광과 뿌리에서 다를 것이 없다.
예술상과 작품성은 동의어가 아니지만, 둘은 얽히고 공존하며 예술의 현실적 가치를 엮는다. 필요한 건 그 사이 경계와 교차점을 면밀하게 짚어내는 문화적 비평이다.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낡은 세계관과 “노벨상 위원회가 로비를 받았다”가 시상에 대한 비판 논거인 수준이라면 한국 문화계가 ‘좌파’ 일색인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세계화된 한국 문화의 현실과 함께, 한국 국내의 문화적 관점의 결핍은 물론 문화적 수준의 격차 또한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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