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다이내믹 코리아는 갑자기 또 ‘영일만 석유’ 국면이다. 윤석열 대통령 덕분이다. 이런 일은 또 처음 본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면 될 것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국정브리핑’을 자처한 맥락에 대한 의문은 한두 개가 아니다. 이날 대통령의 ‘국정브리핑’은 8분 전에야 공지됐다. 주식시장 등 영향을 고려한 거라는 설명이 따라 붙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오히려 ‘국정브리핑’ 덕에 과열됐다. “최대 140억배럴”, “삼성전자 시총의 5배”란 구체적 표현이 이 자리에서 등장한 덕분이다.
대통령의 설명에 쓰인 시간은 4분 정도였고 질의응답도 없었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맞춘 10개국 정상들과의 연쇄 회담 일정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긴급하게 알려야 할 내용이 아니었다면 짬을 내 ‘국정브리핑’을 갑작스레 자청할 이유가 없다. 한겨레 등의 보도에 의하면 심지어 산업부는 자기네 장관 동선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했던 걸로 알려졌다. 모든 일이 비상하게 진행된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분석을 종합해보면, 이게 그렇게 긴급하게 알려야 할 일은 아니었던 걸로 보인다. 지금 단계는 가스와 석유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유망구조’가 확인된 것에 불과하다. 실제 매장량은 탐사시추를 진행해봐야 그나마 추정 가능하다. 그래서 용어도 ‘매장량’이 아닌 ‘탐사자원량’이라고 쓴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 정도면 관계기관의 보도자료 정도로도 충분하다. 대통령이 굳이 나설 일이 아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영일만 석유론’의 근거를 제시한 액트지오사의 창립자인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를 불러왔다. 아브레우 박사는 한국석유공사 등으로부터 데이터를 넘겨 받아 분석을 통해 ‘유망구조’의 가능성을 제시한 걸로 알려져 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아브레우 박사의 이력엔 큰 문제가 없는 걸로 보인다. 지난 2008년부터 석유공사와 물리탐사를 진행해 온 호주 최대의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2023년 동해에서 철수한 사실도 있고, 액트지오사의 분석 이후 국내외 전문가들의 자문 과정도 긍정적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보도도 있지만, 여기까지는 어찌됐든 나름대로 정상적 프로세스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브레우 박사의 결론은 ‘최소 35억배럴, 최대 140억배럴’의 가스-석유가 존재할 수 있는 유망구조가 존재할 걸로 추정’된다는 거다. 거기에 실제 얼마만큼의 자원이 매장돼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 탐사시추를 진행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더라도 아브레우 박사는 틀린 게 아니다. 책임질 일도 없다. 어느 정도의 자원 매장량이 확인되더라도 채산성이 맞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심해 광구라는 특성상 생산비가 많이 들 것이기 때문에 계산이 쉽지 않다. 이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해도 상업 생산은 2035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는 유의미한 결론을 얻기 어렵다.

결국 대통령이 이슈를 일부러 크게 키운 게 아니냐는 해석이 불가피하고, 그러면 ‘의도’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보수층의 분열, 채상병 순직 사건 관련 수사 및 특검 여론,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검찰과의 갈등 등의 불안 요소 등이 최근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름의 반전 카드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오물 풍선’에 9.19 군사합의 전면 무효화 등으로 대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수층부터 결집시키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는 거 아니냐는 평이 나올 만한 행보다.
정치를 하다 보면, 또 나라를 운영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는 그러한 정치공학적 판단이 어느 정도는 가미되는 게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사안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첫째, 결국 역효과만 났다. 자원부국이 되리라는 기대감보다는 배경에 또 무슨 황당한 맥락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훨씬 크다. 이제는 석유, 가스가 아니라 논란을 가라앉히는 데 들어갈 정치적 자원이 더 부담인 상황이 돼버렸다.
둘째, 그런 점에서 정무적 판단 능력 부족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인데, 이것은 위험하다. 박근혜 정권 이후 한국의 대통령은 어설픈 정무 기획 능력을 드러낼 때마다 ‘비선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는 상태다. 그렇잖아도 박영선-양정철 기용설, 함성득-임혁백 영수회담 특사설 등에서 비슷한 논란이 반복 제기돼 왔다. ‘140억배럴 영일만 석유, 삼성전자 시총 5배’와 같은 증권가 정보지에 실릴 법한 구호가 정치적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국정 브리핑’을 제안한 참모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를 교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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