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은 20대 국회에서 공공기관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며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입법 논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관련 입법안은 자동폐기됐다. 그리곤 여당이 되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해 사퇴를 압박하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는 국무회의에 불참할 것을 통보했다. 한편에서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산하 기관장 사퇴를 종용한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퇴를 종용한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현행법상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3년,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불일치하기 때문에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최다선(5선) 정우택 의원은 지난 10일 공공기관장의 임기·연임 기간을 2년 6개월로 정해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키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지난 2019년 9월 민주당 김정우 의원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에 연동하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정치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차기 정부 출범일에 맞춰 2022년 5월 9일부터 시행토록 했다. 윤석열 정부는 10일 출범했다.

야당에 필요한 법안 자동폐기…여당 되자 미국식 엽관제 법안 발의

해당 법안은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에서 한 차례의 축조심사를 거친 뒤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 축조심사 당시 정부는 찬성 의견이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정부는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장이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를 넘어서게 되면 일률적으로 다 임기 종료하는 데 동의하나'라는 질문에 "예,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 차관은 "공공기관장이 국가정책 수행을 위한 중요 직위인 만큼 국정철학 공유 등을 위해서 대통령과 임기를 연계하는 개정안은 타당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누가 집권을 하든지 간에 책임정치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공공기관의 장들은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킬 필요는 국민들도 바랄 것"이라며 "다음 정부를 누가 맡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이 시기에 여야 유불리를 떠나 합리적인 제도개선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다음 정부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추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이것은 야당한테 필요한 법 같다. 사실 여당한테는 별로 필요한 법은 아니다"라면서 "준정부기관 감사를 했던 적이 있는데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 이명박' 이렇게 대통령 명의로 다 사표 쓰라고 공문이 내려오더라. 그때 그걸 가지고 고발하거나 위반으로 제안했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왼쪽),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반면 소위원장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은 법안을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의원은 "깊이 검토가 되어야 될 사항 같다. 공공기관장 중 전문성을 중시해 임명을 한 경우도 상당히 있다"며 "정치적인 것에 따라서 일괄적으로 이러한 법률 규정을 두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추후 계속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에는 외국 사례도 참고할 수 있도록 제시해주면 좋겠다"면서 "미국은 아무래도 승자독식 체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일괄적으로 하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다른 외국 사례의 경우에는 이런 게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은 미국식 엽관제(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를 주장하며 독립기관장 등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바른미래당(현 국민의힘) 김성식 의원은 공공기관의 정치화를 우려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선거 때 공기업이나 준공공기관 장들, 혹은 임원들이 결사적으로 정치 투쟁을 하겠다"며 "그렇지 않나, 자기가 미는 대통령이 되어야 자기가 보장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몇 가지 중요한 국가의 정책 방향과 연관된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의 장의 경우 함께 임기를 시작해 사람을 찾아서 하는 경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통으로 공기업·준정부 기관 몽창(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에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대통령 임명직으로 한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면 67개다"라며 설득했지만 김 의원은 "리스트를 놓고 다음에 한 번 더 논의를 하자. 이것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21대 국회 들어 같은 법안이 민주당에서 재차 발의됐지만 국회 심사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지난 2020년 11월 4일 공공기관장 임기를 3년으로 하되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는 경우 해당 임기가 만료된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한 차례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원욱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상혁·전현희 위원장에 대한 국민의힘의 위법적 압력이 도를 넘고 있다"며 "역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법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의원총회 등을 통해 여러번 '대통령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명하는 정무직 공직자는 임기를 같이하도록 하자'고 주장해왔다. 법도 발의했지만 이 법은 지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며 "국민의힘은 이 법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다. 사정이 달라지니 내로남불하나? 불법·탈법의 권력으로 할 일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합의제 위원회는 미국서도 대통령이 해임 못해"

사퇴를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는 모든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합의제 독립기구 장에 대해 사퇴를 종용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통화에서 "통상 산하기관장이라고 하면 부처정책을 집행하는 기능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 방통위나 권익위는 합의제 위원회 아닌가"라며 "위원의 임기가 보장돼 있다. 다른 기관장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위원회는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하게 구성하고 임기를 둔 것인데 위원장을 '그만두라'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공직자 파면권이 있지만, 합의제 위원회는 대통령이 해임할 수 없다. 미국 대법원 판결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동아일보에 기고한 <낯 뜨거운 ‘직권남용 정치보복’ 시비 끊어내자>에서 공공기관장을 새 정권의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사회인식이 문제라며 법률에 명시된 기관장 임기를 보장하되 ▲공공기관장 장관추천제를 통한 책임성 확보 ▲공공기관장 임기-대통령 임기 연동 등 제도개선으로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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