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이 보수언론이 정정·반론보도한 내용까지 동원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가 시작됐다며 한 위원장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해달라고 요청했다.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민의힘 의원 일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원장으로서 도덕성, 무능, 편향성 삼박자가 모두 결여된 것으로 드러난 한 위원장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즉각 국민에 대한 사과와 함께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과방위원들은 어제(15일) 조선일보가 제기한 한 위원장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반복했다. 조선일보는 한 위원장이 동생들과 함께 작고한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농지에 '별장'에 가까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고 보도했다. 농지에 별장이 세워져 있으면 불법이란 얘기다. 한 위원장은 해당 건물이 '농막'이며 부친이 생전 지자체에 신고를 마쳤고, 현재는 동생이 농지원부(농지대장)를 발급받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조선일보, "꿈의 별장"이라던 농막으로 방통위원장 흔들기?)
이들은 "명백한 농지법 위반이라 볼 수밖에 없다. 방통위원장이라는 무거운 공직의 자리에 나섰던 바로 그 해 불법적인 일이 시작되었다"면서 "도덕성 미달만으로도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이들은 한 위원장이 '언론계의 조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정치편향성을 제기했다. 이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출신인 한 위원장은 '매우 편파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인물로 언론계의 조국'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인사였다"며 "일례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 입학의 건'에 대해 '단정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정권에 비판적이던 일부 방송사에 대해 '주의 처분'을 내렸다"고 했다.
'언론계의 조국'은 한 위원장 인사청문회 당시 국민의힘 주장이다. 조국 전 장관 자녀 입학과 관련해 단정적 보도로 주의 처분을 받은 언론사는 TV조선이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2019년 8월 20일 방송분에서 조 전 장관 자녀가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 한 번도 시험을 봐서 들어간 적이 없다고 방송했다. 해당 발언을 한 TV조선 부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취재나 사실관계 확인 없이 방송에서 단정적으로 발언했다고 시인했다. 또한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주의 처분은 방통위가 아닌 방통심의위가 결정하는 것으로 한 위원장은 관련이 없다.
또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은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 당시 한 위원장이 MBC 단독보도 이전에 해당 의혹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권경애 변호사의 말을 인용하며 "편파적인 행위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였다. 좌파의 견해를 전파시키는 데 앞장서 온 선수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사안을 보도했던 조선·중앙일보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정정·반론보도를 게재해야 했다. 권 변호사가 기억에 의존해 작성,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썼다 지운 페이스북 글은 MBC 첫 보도 전 한 위원장으로부터 "한동훈을 반드시 내쫓을 것이고 보도가 곧 나갈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주요 보수언론과 정치권 일각에서 '권언유착' 의혹의 핵심 증언으로 취급됐다.
2020년 3월 31일 MBC 보도 1시간 이후인 9시 9분부터 23분간 통화했다는 통신기록이 공개되면서 한 위원장이 MBC 보도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1시간 반가량 압박성 통화를 했다는 권 변호사 주장의 핵심 내용이 근거를 잃게 됐다. 한 위원장 반박 이후 권 변호사는 "기억에 오류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 보도했던 조선·중앙일보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라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실 확인 결과, 3월 3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전에 미리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보도내용을 알았다는 권경애 변호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국민의힘 주장에 대해 민주당 과방위원 일동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장악 데자뷰인 듯한 음모가 시작되고 있다"고 규탄에 나섰다. 민주당 과방위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오자 약속이라도 한듯 국힘당이 한 위원장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2020년 7월 한 위원장 인사청문회 당시 국힘당 의원들이 요구한 모든 부동산 자료를 제출했지만 국힘당 의원 중 어느 누구도 이 농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없다"며 "느닷없이 보수 언론의 검증되지 않은 보도를 받아 비난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하는 국힘당의 행태는 남부럽지 않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이 모든 일의 뒤에는 한 위원장, 전현희 권익위원장의 국무회의 참석 배제를 선언한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며 "공정의 외피 속에 숨긴 불공정과 반칙이 있다. 이 치졸한 방송장악 굿판을 멈출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은 지난 14일 국무회의를 앞두고 방통위와 권익위에 '참석 대상이 아니다'라고 통보했다. 앞서 공공기관장 버티기 논란을 점화한 조선일보는 15일 기사 <전현희·한상혁엔 국무회의 참석 통보 안했다... 불편한 동거중>에서 "관가에선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동거를 불편해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조치'란 말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국무회의 규정상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배석할 수 있다. 그동안 대통령직속 합의제 독립기구인 방통위의 장, 국무총리 직속 반부패 총괄 독립기구인 권익위의 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외없이 국무회의에 참석해왔다.
민주당 과방위는 "국힘의 표현대로라면 좌파 위원장을 몰아내고 우파 위원장을 그 자리에 삼겠다는 것인지, 사퇴를 위한 편파적 좌판을 깔고 있다"면서 "한 위원장은 두려워하지 마라. 어떠한 사퇴 외압과 회유, 협박이 있을지라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주어진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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