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체험 한답시고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이번에는 팽목항을 찾았다. 그리고 여기서도 어김없이 억지 연출과 보여주기식 행태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가 팽목항에 머문 시간은 대략 50여분. 그 시간 동안 그가 한 일은 세월호 희생자 위령소 조문, 그리고 은화 엄마, 윤화 엄마를 불러내 '어깨동무 퍼포먼스', '함께 걷기 퍼포먼스'를 보여준 게 전부다. 아래 사진들을 보시라.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껴안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은화엄마, 다윤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오마이뉴스)
반기문 팽목항 방문에 동행한 박순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은화엄마, 다윤엄마의 손을 잡고 방파제로 향하고 있다. 이 자리엔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맨오른쪽)도 동석했다.(오마이뉴스)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나는 팽목항 방문 동영상을 보는 내내 들끓는 속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대선 출마를 공언한 반기문이 국민 시선 좀 끌어 보겠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별별 체험을 다 하겠다는 걸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억지 민생쇼 리스트에 팽목항까지 끼워 넣어 세월호의 아픔까지 이용해야 하는가?

백보양보 해서, 팽목항도 방문할 수 있다 치자.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식들이 잠들어 있는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 짓고 있는 은화 엄마, 윤화 엄마를 불러내 저 어색한 어깨동무와 손잡고 함께 걷는 퍼포먼스를 펼쳐야 직성이 풀리는가? 은화 엄마, 윤화 엄마가 반기문의 대선행보를 돕는 들러리인가?

반기문이 팽목항을 둘러보는 동안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를 빛내기 위한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반기문을 보좌한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은 두 엄마를 불러 반기문 양 옆에서 "손을 잡고 걸어라"며 추임새를 넣기 바빴고, 이렇게 진행된 역겨운 민생쇼는 "제발 질문 좀 받아달라"는 기자들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끝났다.

반기문은 2014년 참사 이후, 세월호에 대해 입 한 번 뻥긋한 적이 없다. 세월호의 눈물은, 대선이 아니라면 그가 눈길을 던질 주제조차 안 됐단 얘기다. 팽목항 현장에서 반기문은 인양 문제에 관해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정부를 믿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했던 "가만히 있어라"의 부모용 버전인 셈이다.

반기문은 팽목항 방문에서 무엇을 남겼을까? 반기문을 따라 팽목항에 간 '미디어몽구'는 그 느낌을 이렇게 술회했다. "정말 정 떨어졌습니다. 말하기도 싫습니다." 미디어몽구의 눈에 비친 반 씨는 사복경찰과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사람들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는 꽃, 접근불가의 VIP였다.

"경찰들이 반기문을 VIP로 호칭하더군요. 현장 도착하니 사복경찰들과 경호원들이 반기문을 에워싸고 과잉경호 하는데 접근을 못 할 정도였다는... 이게 민생행보인가요? 인간벽 치고 다니는데..."

"오늘 보니 기자들이 반기문한테 부탁을 하더군요. 제발 질문 좀 받으라고요. 들어 봤더니 오늘뿐 아니라 민생행보 중 질문을 한 번도 안 받았다고 하네요. 기자회견 빼고요. 반대로 사진기자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은 잘 만들어 주더라는. 이걸 보고 보여주기식이라는 겁니다."(미디어몽구)


이 모습을 보고서 '불통여제'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가 박근혜식 '정치교체'를 논하고 박근혜 정부 '연장'을 꿈꾼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이런 것까지 닮았다는 건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을 느낄 일이다. '여자 박근혜'에 이어 '남자 박근혜'를 들이자고 우리가 촛불을 든 건 아니잖은가?

글을 맺기 전에 한 마디. 반기문을 보좌한 박순자 의원은 세월호 참사에 직격탄을 맞은 안산시 단원구 출신이다. 누구보다도 희생자들의 아픔을 보듬어줘서 마땅한 사람이언만 그러나 팽목항에서 그가 우선한 것은 반기문뿐이었다. 그에게 미수습자 가족은 반기문을 빛낼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레 미제라블!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