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스포츠를 총괄하는 단체이자 대한민국의 올림픽위원회인 대한체육회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의 올림픽 출전 문제가 걸린 국제 소송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대하는 태도가 어찌 이렇게 얄팍하고 졸렬할 수 있는지 개탄스럽기 이를 데 없다.

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이 국제수영연맹(FINA)의 도핑 관련 징계가 해제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묶여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한 문제와 관련, 대한체육회가 CAS로부터 온 질의사항에 대해 내놓은 공식입장에 대한 이야기다.

아래는 대한체육회가 17일 배포한 보도자료 전문이다.

대한체육회(회장 김정행·강영중)는 지난12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박태환 선수 항소사건의 답변 요청과 관련 「지난 4월7일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이 대한체육회(KOC)의 최종 의견인지 여부」 등 KOC에 질의한 사항에 대해 오늘(17일) 공식 의견을 전달했다.

CAS의 「지난4월7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결정한 내용이 최종 의결인지 아니면 변경 가능한지 여부」 질의에 대해서 대한체육회(KOC)는4월7일 내린 결정이 최종 결정인지에 대해 이견은 있을 수 있으나 특정인을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는 박태환 선수로부터 그 규정을 개정해달라는 공식적인 의견을 받은 바 없으며, 박태환 선수의2016리우올림픽 참가에 대하여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바 없다. 따라서 박태환 선수의 중재 신청서는 이와 관련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중재 대상이 될 수가 없다고 본다.

이번 항소와 관련하여 대한체육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토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2016년 6월16일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대한체육회의 이와 같은 입장 표명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통합체육회 정관의 분쟁 해결 관련 조항인 제65조 제1항에는 '체육회 내부 또는 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 등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포츠 또는 제도와 관련된 분쟁은 체육회의 관할 기구 또는 별도의 규정에 따라 체육회에 설립된 조정·중재 기구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고, 제2항에는 '제1항에 따른 관할 기구에 의한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 항소하려는 경우에는 스포츠 관련 중재규정에 따라 분쟁을 명백하게 해결할 수 있는 CAS에만 항소할 수 있다. 다만, 항소는 항소 결정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21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박태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와 관련, 앞서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날 "통합체육회 정관 제65조 분쟁의 해결 관련 조항에 따르면 박태환은 국내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서만 CAS에 항소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이 걸린 국가대표 선발 관련 규정 개정 문제에 대해 대한체육회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으므로 CAS 중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이 관계자가 전한 대한체육회의 입장 요지였다.

한 마디로 ‘박태환 케이스’에 대해 공식 논의도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최종 결정이라는 것도 내려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여기까지만 봐도 사실 대한체육회가 말장난을 하고 있거나 궤변을 펼치고 있다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왜냐면 박태환이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올림픽 출전 의지를 밝혀 왔고, 그렇기 때문에 대한체육회 역시 절차적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기력향상위원회조차 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박태환 문제를 논의한 끝에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개정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때도 대한체육회는 박태환 한 선수만을 위해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규정 유지의 이유로 설명을 했고, 사안이 시급하다 보니 경기력향상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은 가운데 급하게 논의해 결론을 내렸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대한체육회의 공식 입장을 보면 참으로 기가 차다. 박태환 측이 국가대표 선발규정 개정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아서 공식적인 조정.중재 기구를 꾸려 논의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최종 결정 역시 내릴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대한체육회의 입장인 셈이다.

지난달 26일 제88회 동아수영대회에 출전한 박태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말장난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다고 했는데 대한체육회에서 말하는 공식적인 요청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박태환이 대한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 규정 불가 입장을 듣고도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해 치러진 동아수영대회에 출전했고, 대회 기간 중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선수의 올림픽 출전 의지가 분명했고, 그 방법은 국가대표 선발규정 개정이 유일했다면 당연히 선수가 대한체육회에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개정해달라는 SOS를 요청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체육회는 박태환의 요구에 애써 눈을 감았다.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규정을 만든 데 대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싶지도, 국제기구로부터 지적을 받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CAS의 질의 사항에 대한 대한체육회의 입장은 결국 CAS의 심리를 받지 않기 위한 방법을 짜내던 중 도출된 미봉책이자 꼼수다.

대한체육회가 얄팍하고 졸렬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CAS가 대한체육회의 이런 말장난과도 같은 설명에 속아 넘어가 대한체육회의 바람대로 ‘박태환 케이스’를 심리전에 각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체육회의 꼼수에 놀아난 CAS도 한심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그 이전에 이번 ‘박태환 케이스’를 다룬 대한체육회 집행부는 한국 체육 역사상 최악의 ‘팀킬’을 한 집행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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