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영연맹(FINA)의 도핑 관련 징계가 해제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묶여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과 관련, 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중재 신청을 한 것에 대해 대한체육회가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 이 사안이 CAS에 갈 사안이 되지 못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이날 "통합체육회 정관 제65조 분쟁의 해결 관련 조항에 따르면 박태환은 국내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서만 CAS에 항소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태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참고로 통합체육회 정관65조 분쟁의 해결 관련 조항 1항에는 '체육회 내부 또는 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 등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포츠 또는 제도와 관련된 분쟁은 체육회의 관할 기구 또는 별도의 규정에 따라 체육회에 설립된 조정·중재 기구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 2항에는 '제1항에 따른 관할 기구에 의한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 항소하려는 경우에는 스포츠 관련 중재규정에 따라 분쟁을 명백하게 해결할 수 있는 CAS에만 항소할 수 있다. 다만, 항소는 항소 결정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21일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결국 대한체육회는 '도핑 관련자는 징계 만료 이후에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원칙대로 지켰을 뿐 체육회에 설립된 조정·중재 기구를 통해 박태환 문제에 대해 박태환 측과 중재나 조정을 한 일이 없고, 어떠한 최종적인 결정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박태환의 CAS 제소는 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CAS의 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대한체육회의 입장인 셈이다.

통합체육회 정관65조 분쟁의 해결 관련 조항 1항과 2항에 명시된 내용과 관련 쟁점이 될 만한 부분은 ‘체육회의 관할 기구 또는 별도의 규정에 따라 체육회에 설립된 조정·중재 기구’가 어떤 기구여야 하는가 정도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박태환 문제에 관해 지난달 7일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앞으로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에 대한 요청이 있더라도 법률의 형평성을 위한 일반적인 법 원칙에 따라 특정인을 위한 규정 개정은 있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박태환의 문제를 논의한 대한체육회 관할 기구는 스포츠공정위원회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당시 발표는 박태환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으로 대한체육회의 최종적인 결정이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CAS [연합뉴스TV 캡처]

박태환 측도 이 발표를 대한체육회의 최종적인 결정으로 보고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

박태환 측은 "4월7일을 관련 사실을 인지한 날로 봐야 한다는 법률 자문이 있었다"며"그로부터 21일 내 중재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해서 우선 지난달 말에 중재 신청서를 CAS에 낸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면 박태환 측의 행보는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대한체육회의 행태는 어딘지 이 문제에 관해 논의 자체를 피하려는 듯 당당하지 못하고 분명하지도 못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기본에 존재하는 규정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에 해당 규정에 대한 CAS 제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싶겠지만 통합체육회 정관 65조 1항에는 대한체육회와 선수의 중재 내지 조정의 대상으로 ‘제도’ 즉, 대한체육회 규정도 포함시키고 있다.

만약 대한체육회가 이 사안으로 박태환 측과 어떤 중재나 조정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대한체육회의 직무유기다.

사실 이 문제 이전에 대한체육회는 내부 규정에 따라 경기력향상위원회조차 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박태환 문제를 논의함으로써 정당한 절차를 무시한 월권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때도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선발규정을 1차로 심의할 경기력향상위원회가 아직 구성되어 있지 않고, 이번 달 중 사실상의 국가대표선발전이 열리는 만큼,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지만 내부 규정 위반은 위반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논리도 궁색했다.

지난달 26일 제88회 동아수영대회에 출전한 박태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리고 지금은 아예 말을 바꿔 박태환 문제화 관련 대한체육회 산하 기구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규정을 준수했을 뿐이라는 궤변과 함께 CAS에서의 관련 절차를 피해가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도핑 관련자는 징계 만료 이후에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국내 규정은 ‘이중 처벌’을 금지하는 국제적 원칙과 판례에 어긋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며, 정상적으로CAS 제소가 이뤄질 경우 박태환 측의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현 국가대표 선발 규정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CAS를 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박태환 측과 함께 CAS 중재 절차에 응해 관련 규정과 대한체육회의 결정이 정당한 것임을 인정받는 것이 훨씬 당당한 태도일 것이다.

국내 체육단체들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범하는 가장 멍청한 실수는 국제기구가 제시하는 기준을 스스로 멋대로 해석하고, 그러다 뭔가 일이 잘못될 것 같으면 ‘로컬룰 우선’ 운운하면서 고집을 피우는 일이다.

‘배구여제’ 김연경의 국제 이적 문제와 관련, 국제적 규정과 관행을 무시하고 ‘로컬룰 우선’을 운운하고 고집하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한국 배구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한체육회는 지금이라도 궤변을 접고, CAS 중재 절차에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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