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으로 앞으로 열흘간 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하는데 자신의 코앞에 닥친 현안들 때문에 과연 국정이 눈에 들어올지 걱정입니다. 무엇보다 본인의 용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17일 오전 KBS1 <뉴스광장> 2부에서 <이 총리 결단해야>라는 제목 아래 나가기로 했던 <뉴스해설> 클로징이다. 그러나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이완구 총리의 3000만원 수수 여부가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 사퇴 요구를 하는 것은 시기가 빠르다며, 보도가 나가기 전날 밤 전화를 걸어 수정 지시를 했고 결국 수정된 내용으로 방송이 나갔다. 제목은 <국정혼란 우려된다>로 바뀌었으며, 전체적인 내용과 해설위원까지 백운기 전 보도국장으로 달라졌다. 수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완구 총리는 무언의 메시지를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나라를 비운 동안 흔들림 없이 국정을 잘 이끌어줄 것과 온갖 의혹에 더욱 신중하게 처신해달라는 뜻일 겁니다”

보도본부장, 해설위원실 회의서 결정된 내용 전날 밤 통화로 ‘수정’ 지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는 20일 <총리 구하기 위해 해설까지 바꾸나?> 성명을 통해 총리 관련 뉴스해설 수정 지시를 내린 강선규 보도본부장을 엄중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노조에 따르면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방송 전날인 16일 저녁 해설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3천만 원 수수 여부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데, 검찰 수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여론재판해서 나가라는 것으로 사퇴 요구가 시기적으로 빠르다’며 클로징 멘트 수정을 요구했다.

▲ 17일 KBS <뉴스광장> 2부 <뉴스해설> 보도

하지만 강선규 보도본부장이 ‘시기적으로 빠르다’던 17일은 이미 보수언론이 사설과 기사를 통해 이완구 총리의 용퇴 필요성을 주장한 날이었다. <중앙일보>는 <이완구 총리, 조속히 사퇴하고 수사에 응하라>,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의 ‘시한부’ 예고, 이 총리는 거취 정리하라>는 사설로 이완구 총리의 자진사퇴를 직접적으로 촉구했다.

새 노조는 “공직자 가운데 가장 높은 도덕성을 지녀야 할 총리가 언제부터 검찰 수사에서 범법 사실이 들어날 때만이 물러나야 할 자리가 됐단 말인가? 강 본부장이 말하는 사퇴 요구를 할 적절한 시기는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라며 “보수지들조차 거부하지 못하고 있는 민심의 흐름을 공영방송 KBS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한 현 상황에 우리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새 노조는 “통상 <뉴스해설>은 해설위원실 회의를 통해 주제와 내용을 정한다. 해설위원이 하는 <뉴스해설>은 개인의 주관적 견해를 피력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의를 통해 합의된 해설위원실의 입장을 밝히는 자리”라며 “그동안 <뉴스해설>은 해설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본부장에게도 해설 내용은 물론 제목조차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 오랜 관행이다. <뉴스해설> 수정 요구와, 해설위원까지 교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새 노조는 ‘방송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저해하는 내외의 모든 간섭과 압력을 배제하여 방송의 독립을 지켜 나간다’고 규정돼 있는 <KBS 방송편성규약> 제4조(취재 및 제작의 규범) 2항을 들며, “이 같은 사태를 명백한 <KBS 방송편성규약> 위반이자 심각한 공정방송 저해 행위라고 규정한다”고 경고했다.

지난 1월에도 이완구 총리 후보자 리포트 삭제

새 노조는 강선규 보도본부장이 이완구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였던 지난 1월 31일자 <총리 후보자 양도소득세 논란…날마다 바뀌는 해명> 기사를 취재기자 동의 없이 일방 삭제한 데 이어, 다시 한 번 ‘이완구 기사’를 손댄 것에 주목했다. 당시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기사 삭제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 유사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편성규약>을 준수해 제작자와 협의를 거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 관련기사 : <KBS, 이완구 항의에 담당기자 논의도 없이 기사 ‘삭제’> / <KBS ‘이완구 기사’ 삭제 이유 묻자 “소송 가면 불리할 것 같아서”>)

새 노조는 “공영방송, 공정보도의 최후의 보루가 되기보다는 권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강선규 본부장에 대한 우리의 인내심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KBS와 보도본부 구성원들에 대해 즉각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조대현 사장에게는 “KBS 뉴스의 최고 책임자가 반복해서 공정방송을 가로막는 상황을 계속 방치할 경우 조 사장의 말로 또한 전임 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조 사장은 강 본부장을 엄중 문책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강조했다.

▲ 이완구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새 노조는 <뉴스해설> 삭제와 관련해 임시 공정방송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다. 당초 17일 열리기로 했던 정기 공정방송위원회는 현재 금동수 부사장 일정 때문에 연기된 상태다. 새 노조 관계자는 공방위 개최 시점에 대해 “30일쯤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강선규 보도본부장은 <뉴스해설> 내용 수정에 대해 “바뀌기 전이나 후나 똑같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스>는 강선규 보도본부장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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