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10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을 보도한 KBS에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해, 반나절도 안 돼 기사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KBS는 지난달 31일 <뉴스9>에서 <이완구 양도소득세 논란… 계약서 공개 거부>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완구 후보자가 2003년 1월, 11억 7980만원에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를 구입해 9개월 만에 16억 4000만원을 받고 팔아 양도소득세 9700만원을 냈는데 복수의 세무사 자문 결과, 3400만원 정도 세금을 덜 냈다고 해 ‘세금 탈루’ 의혹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완구 후보자 쪽은 매입 가격이 11억 7980만원이 아니라 12억 6000만원이라고 해명했으나, 매매계약서를 공개해 달라는 취재진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방송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은 1일 새벽 KBS뉴스 홈페이지 및 포털 사이트에서 삭제됐다. 이완구 후보자 쪽에서 31일 자정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는데 이미 인터넷 댓글이 달리는 등 피해가 너무 큰 상황’이라며 보도국 간부에게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완구 후보자 쪽은 1일 오전 KBS 기자와 부동산 전문가를 한자리에 불러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을 해명했다. 당시 배석한 부동산 전문가는 ‘문제없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KBS는 이완구 후보자 반론을 바탕으로 1일 <뉴스9>에서 <매매계약서 공개…“실무자 착오로 오해”>라는 단신을 보도했다. 하지만 3일 현재 두 기사는 KBS뉴스 홈페이지에서 기사 내용을 확인할 수 없고, 다시보기도 되지 않는다.

▲ 1월 31일자 KBS <뉴스9> 리포트. <이완구 양도소득세 논란… 계약서 공개 거부>라는 제목에서 <양도소득세 논란>이라고 제목이 달라져 있다.

KBS 내부는 이번 ‘기사 삭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KBS의 최초 보도(1월 31일 리포트)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없었고,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가능한 수준에서 할 만한 의혹제기를 했는데도 항의전화를 받고 너무 지나치게 빨리, ‘자진해서’ 기사를 내렸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더구나 취재기자, 담당 데스크와의 논의도 거치지 않은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KBS는 지난해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에서 활약을 보인 방송사다. 그렇기에 후보자에게 민감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사를 내린 이번 조치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더 높다. KBS는 지난해 6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교회 강연 동영상을 단독보도해, 문창극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이끌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당시 고위 공직후보자 인사검증팀은 해당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 등 많은 상을 석권한 바 있다.

“기사 삭제 조치 부당성, 간부들의 보신주의 문제제기할 것”

KBS기자협회 김철민 협회장은 3일 <미디어스>와 한 통화에서 “<경향신문> 보도 과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양도소득세 관련해서 KBS가 자체 취재로 보도한 것은 맞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내리는 바람에…”라며 “내부에서 불만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김철민 협회장은 “언론이 고위공직자를 인사 검증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다. 우리 기사는 의혹을 제기할 만한 수준에서 의혹을 제기한 것이었고 잘못된 내용도 없었다. 그런데 후보자 쪽 항의를 받았다고 해서 기사를 자진해서 먼저 내리는 것은 타당한 처신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기자들이 불만이 많다”며 “간부들이 본인 입장 곤란한 것 때문에 KBS뉴스 자존심을 너무 뭉개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 KBS <뉴스9>는 이완구 후보자의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보도를 한 다음날인 1일, 이완구 후보자의 반론을 보도했다. 하지만 원 리포트와 해명 단신 모두 다시보기가 막혀 있는 상태다.

김철민 협회장은 “(취재기자의 동의) 그게 없었다. 기사가 삭제되고 다시보기도 막아버린 게, 통상적인 절차에 비해서 너무 성급했다는 게 중론”이라며 “이완구 후보자 쪽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내려달라는 거였는데, 그렇게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취재기자들이나 데스크에게 동의나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생략됐다. 이는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부들이 해당 기자에게 비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긴 했다. 당시 너무 밤늦은 시각이어서 일일이 전화하기 어려웠다는 사정을 얘기했지만, 충분한 해명은 아니라고 본다”며 “기자협회 차원에서 보도위원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예정이다. 기사 삭제 조치의 부당성, 간부들의 보신주의 등에 대해 엄중 항의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는 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열린 공정방송위원회에서 이완구 후보자 기사 삭제 사태를 안건으로 상정해 경위를 따져 묻고자 했다. 그러나 사측은 관련 답변을 준비할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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