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8일 ‘유료방송 규제체계 정비 방안(가칭 통합방송법(안))’을 공개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방송법․IPTV법 통합 등 ‘유료방송 규제체계 정비’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공동연구반을 구성‧운영한 결과다. 많게는 25개에 이르는 쟁점이 걸린 문제인데도 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오히려 “소문 듣고 왔더니 먹을 게 없다”, “규제하기에도 진흥하기에도 실효성이 없는 애매한 통합”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내용을 보자. 이종원 KISDI 미디어시장분석그룹장이 발표한 안을 보면 △방송법 중심으로 IPTV법을 통합하고 △실시간방송, 비실시간방송의 특성을 명확하게 규정해 규제하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위성방송의 직접사용채널 성격을 공지채널로 제한하고 △방송채널사용사업자간 채널별 양도·양수를 허용하고 △의무전송채널 규모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자는 게 핵심이다. 나머지는 입법기술적으로 법을 통합하는 조문작업 수준이다. 소유·겸영 규제를 방송법 수준으로 맞추고, 사문화된 조항을 없앴다.

▲방송산업 구조도. KISDI 이원종 미디어시장분석그룹장 발제문에서 갈무리.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드러난 종편 특혜, 로비 창구 힌트 준 '공백'에도 주목해야

우선 분명히 드러난 것은 ‘종편’ 특혜다. 정부안은 케이블과 위성방송의 직사채널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인데, ‘유사보도’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에만 ‘보도기능’을 주겠다는 의지다. 여기에 의무전송채널 규모를 현행대로 유지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는 보수언론과 종편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밖에도 채널 간 인수합병 허용은 일부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실시간과 비실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겠다는 것은 IP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입법기술적 작업이라 쟁점이랄 게 없다”지만 통합방송법(안)의 ‘공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지상파 등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영향평가’를 진행하지 않고 안을 만들었다. 대신 연구반은 유료방송사업자들과 비공개 워크숍을 열어 민원을 접수했다. 미래부 내부에서는 “연구반이 로비창구가 됐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 이번 정부안에 있는 ‘공백’은 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결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국정과제 일정에 쫓겨 부랴부랴 만든 내용 없는 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문제는 ‘공백’의 내용이다. 지난해 12월 미래부와 방통위가 공동 발표한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 지난 7월 미래부가 제시한 ‘PP산업발전전략’, 8월 방통위가 발표한 ‘제3기 방통위 비전 및 주요과제’에 나온 정책방향은 총 25가지인데 이번 ‘통합방송법(안)’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는 △유료방송 규제 일원화 △PP간 채널별 양도·인수 허용 △의무전송채널 유지 정도 △직접사용채널 정리 등 4가지다. 나머지 21개 쟁점들은 모두 정부와 국회가 ‘알아서’ 결정하게 됐다. 정부와 국회가 로비창구를 자처한 셈이다.

▲ 유료방송사업자 가입자 현황. 2014년 6월 기준. KISDI 이원종 미디어시장분석그룹장 발제문에서 갈무리.

이미 33.3% 돌파한 KT, 유료방송점유율 규제 다시 논의해야 할 판

정부가 배제한 쟁점들을 살펴보자. 가장 뜨거운 쟁점은 KT 점유율 규제다. KT는 IPTV와 위성방송을 동시에 소유한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종 플랫폼 및 네트워크 사업자다. 지난해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KT와 KT스카이라이프를 특수관계자로 묶어 점유율을 합산해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이를 명분으로 국회 논의를 지켜봐야 한다며 이번에도 별 다른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1년여 의 ‘공백’으로 KT는 점유율 33.3%를 뛰어넘었다. 점유율 규제기준을 49% 이상으로 높여야 할 상황이다.

KT의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은 2014년 6월 현재 33.3%다. 디지털방송 점유율은 46.37%다. 여기서 스카이라이프의 실시간방송과 KT의 VOD를 결합한 방송서비스인 ‘올레TV스카이라이프’ 가입자 230만 명을 빼면 730만 명인데, 이 경우 점유율은 25.33%로 떨어진다. 그러나 KT는 OTS가 KT와 스카이라이프 동시가입이고, 두 사업자 모두 수익을 얻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33.3%로 점유율 규제는 이미 있으나마나한 셈이다. 게다가 통계에 빠진 7~10월까지 고려하면 점유율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합방송법의 쟁점은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의무와 책임 구분 △수신료 등 공영방송 재원 문제 △OTT, 스마트TV 등 서비스 구분과 규제 방법 △종합편성채널 의무전송채널 유지 여부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과 광고총량제 도입 여부 △CJ E&M 등 MPP 시장점유율 규제 완화 여부 △8VSB 클리어쾀 DCS에 대한 지원 및 규제 방법 △지상파 재송신 제도와 재전송료 산정 △방송평가 및 재허가 심사기준 변경 등을 폭넓게 묶여 있다. UHD방송과 지역방송 지원계획, 다채널서비스도 논의대상 중 하나다.

▲ 유료방송사업자 규제 현황. KISDI 이원종 그룹장 발제문에서 갈무리.

입법으로 종편 특혜 유지하고, 입법 공백으로 KT 이익 보장한

그러나 정부는 “공적서비스 방송(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정립과 역할 규정이 중요하나 유료방송 시장질서 확립 이후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스마트미디어는 “아직까지 확립된 정의가 부재하고, 관련 유료방송시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 판단의 근거가 부재”하다는 이유로 규제 정비를 미뤘다. 이번 통합방송법(안)의 내용과 공백은 ‘KT 같은 플랫폼사업자를 중심으로 유료방송을 재편하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연구반 관계자는 “시장에 포획된 안”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정부는 입법기술을 활용해 종편 특혜를 유지하고, 입법공백을 핑계로 KT의 이익을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문난 잔치에 갔더니 먹을 게 없다는 사업자들의 불만은 이제 의미가 없다. 정부는 이미 일 년 전 잔치를 차렸고, 그새 KT와 종편이 모두 먹어치웠다. 지금 먹을 게 없는 게 당연하다. 수신료 인상, 방송광고 규제 완화 등 남은 것을 놓고 로비전, 여론전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관련 시행령과 고시를 활용해 고객 나눠갖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가 밀실에서 특혜통합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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