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송법-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법(IPTV법) 통합을 논의하면서 ‘유료방송플랫폼 대형화’ 등 유료방송 진흥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유료방송을 관할하는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가 통합방송법 논의를 주도하고, 공적섹터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실상 논의의 중심에서 비켜 있는 상황이다.

법기술만 다룬다는 연구반, 사업자들만 비공개 접촉

4일 ‘유료방송 규제체계 정비’ 합동 연구반을 운영 중인 미래부 방송산업정책과, 방통위 방송정책기획과에 따르면 연구반은 오는 11월 법안 제출을 목표로 통합방송법 입법을 준비 중이다. 연구반은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 대표 사업자와 비공개 워크숍까지 열어 의견을 수렴했다.

방통위 양한열 과장은 “연구반은 동일서비스-동일규제 체계의 필요성과 규제 일원화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이라며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기득권도 있는 만큼 사업자들의 의견을 여러 차례 들었고 앞으로도 만나면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구체적인 안도, 결정된 방향도 없다”고 말했다.

미래부 오용수 과장은 “특정한 경향성을 가지고 논의를 하기에는 국회도 걸려 있어 쉽지 않다”며 “가치 판단을 제외하고 방송법과 IPTV법에 나온 개념을 일원화하는 등 입법기술적인 논의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철학 문제는 방통위 소관”이라며 “이번 연구반 미션은 그런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피트인 K-POP 홀로그램 공연장 'Klive' 를 방문해 스타 포토박스 및 스타 라운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미래창조과학부)

유료플랫폼 거대화가 목표, 운동장 더 기운다

그러나 미디어스 취재결과, 통합방송법 논의는 공적 섹터에 대한 논의 없이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방식, 특히 KT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케이블SO 관계자는 “결국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KT가 그린 그림대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통합방송법TF를 구성하고 대안 논의를 진행 중인 언론개혁시민연대에 따르면, 미래부-방통위 합동 연구반은 △방송을 실시간(양방향/단방향)과 비실시간으로 역무를 구분하고 △유료방송플랫폼에 대한 소유겸영과 점유율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의무전송채널 중 공익채널을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연구반은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위한 정책방향으로 ‘플랫폼 대형화’를 선택했다. IP기반 플랫폼의 몸집을 키우면 이용자 편익을 높이겠다는 이야기다. 이는 공적 섹터와 유료방송사업자의 관계를 역전하고, 지상파를 일개 PP로 만들 수 있으나 연구반은 시청자·시장에 대한 영향평가는 진행하지 않았다.

창조경제 성과 급급 미래부의 극단적 산업론

이를 두고 언론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지상파의 직접수신율이 낮고, 광고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연구반이 유료방송플랫폼의 거대화를 방치하는 방향으로 방송법을 통합하면 공적 섹터의 유료방송플랫폼 의존도가 심해져 공공성이 약화될 뿐더러 지상파방송사가 일개 PP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연구반의 과반은 대형로펌 변호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방송법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과 미디어생태계에 대한 고민 없이, 입법기술적 방식으로만 법을 통합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며 “이런 방식으로 플랫폼을 거대화한다면 KT와 CJ 등의 독점구조가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흐름이라면) 지상파는 물론 중소PP, 지역민방 등 모든 영역에 피해가 우려된다”며 “특히 공적 섹터는 보완책도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유료방송산업에 내몰리게 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발목 잡혀 성과 위주의 논의를 하는 것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방송사업자 소유겸영 규제의 현황. (자료=미디어 경제와 문화 2014년 제 12권 1호 ‘수평적 규제 하에서의 지상파 방송사업자와 유료 방송사업자 간 겸영 허용 판단 기준에 관한 고찰’에서 갈무리)

방통위 수수방관, 지상파 몰락 빨라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미래부는 규제를 완화하는 게 아니라 사업자에 포획돼 휘둘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흐름으로 통합법이 제정되면 SBS와 MBC가 KT와 CJ에게 ‘의무전송을 해달라’고 빌게 될 것”이라며 “지상파가 유료방송플랫폼에 줄을 서고, 지상파가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공적 섹터의 몰락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공적영역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해야 할 방통위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통위 양한열 과장은 “지상파에 대한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안이 나오면 영향평가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래부 오용수 과장은 “연구반은 서로 다른 기술체계와 방식을 법기술 차원에서 조정하는 것이 목적인데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근거 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며 “(연구반에 참여하는) 로펌 변호사들이 어디를 대리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 상황(이라 특정사업자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성과 급급, 수혜자는 ‘KT’

한편 KT 특혜 논란도 예상된다. 미래부는 국회에 ‘KT+스카이라이프’ 점유율 합산규제 법안이 제출된 상황에서 점유율 규제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KT 입장에서는 합산규제 법안 처리를 늦추고 이 동안 현행 규제기준인 33%를 넘기면 된다. 이렇게 되면 ‘49%’를 주장할 명분이 생긴다.

통합방송법 논의가 극단적인 산업론에 치우치고 KT 편향으로 진행되면서 중소SO는 물론 케이블업계 전체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미래부는 케이블SO들을 만난 자리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최적 수단은 IP기반 방송·통신서비스라며 ‘케이블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를 묻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케이블 관계자는 “KT는 자신들이 49%까지 점유해 이동통신시장처럼 독과점 구조를 만들고 싶어 한다”며 “최근 미래부가 ‘접시 없는 위성방송’(DCS)을 허용하고, 주파수 특혜를 주는 것을 봐라. KT가 쥐락펴락한다”고 말했다. 그는 “통합방송법도 결국 네트워크가 있는 KT 뜻대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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