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산업 구조개편이든 방송의 발전과정을 보면 우리나라 방송법은 ‘주인 없는 방송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소유규제와 겸영규제, 점유율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한 것으로 본다. 문제는 (통합방송법 논의가) 경쟁을 촉진하겠다면서 플랫폼의 대형화를 인정하는 부분에서 이율배반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 전제가 맞다면 유효경쟁체제를 어떻게 만들지 두 번째 답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원 이야기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고,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비공개로 운영 중인 ‘유료방송 규제정비’ 연구반 구성원이다. 그는 22일 국회에서 열린 ‘2014 국정감사현안토론회: 방송통신 정상화와 공공성 확대를 위한 제안’ <사업자 민원으로 얼룩진 정부의 방송규제 완화> 토론회에서 현재 진행 중인 통합 방송법 제정 논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 22일 국회 의원회관 제9 간담회실에 열린 통합 방송법 논의 관련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미래부-방통위 공동 연구반의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종관 연구원은 “방송시장의 경우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대립의 정도가 극단적이기 때문”에 통합방송법 논의가 법률 조항 ‘미세조정 우선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미세조정으로 가다 보니까 (방송철학과 공적 책무 같은) 거대담론,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반은 연내 정부입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미래부와 방통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연구반은 방송법과 IPTV법을 수평으로 통합하는 ‘법기술적’ 조문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미 통합 방향에 대해서는 정리를 끝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연구반이 ‘비공개’인데다 연구반이 사업자들과 비공개 워크숍까지 진행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통합 방송법이 유료방송사업자의 민원 창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 미디어미래연구소 이종관 연구원. (사진=미디어스)

실제 이종관 연구원은 방송법 통합 논의가 전체 로드맵 없이 사업자 민원 해결에 대한 ‘미세조정’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산업성과 공익성이 양립하는 법체계, 궁극적으로 규제를 통합하고 일원화하는 것이 원칙이 돼야 한다”면서도 “산업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공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이를 방어할) 복수의 정책수단은 미미하고, 관련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회와 정부가 KT-스카이라이프 점유율 합산규제, 종합편성채널의 의무전송 관련 문제 등 방송통신업계 현안을 제때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는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어느 쪽 편을 들어줄까’ 하며 시그널만 보내고 있는데 이를 사업자들 입장에서 보면 정책의존적 성장이 불가능하고 ‘정부와 국회를 포획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라며 지금 연구반의 논의도 이같이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미세조정을 하겠다고 하면 다음에는 공익성을 실천하는 로드맵이 정리돼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없다. 아쉽다. 자본시장통합법을 예로 들면, 금융시장 활성화라는 이유로 관련법을 통합했지만 결국 서민경제에 부채부담을 안겨주는 쪽으로 갔다. 금융소비자에 대한 내용이 따라오지 못했다. 금융소비자보호원도 부처이기주의로 전혀 추진이 안 되고 있다. 통합방송법 논의가 이런 길을 밟을지 우려된다.”

▲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사진=미디어스)

연구반의 방향은 ‘플랫폼 대형화’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방송통신 현안들을 살펴보면 부각되는 기업이 있다”며 “그것은 KT”라고 말했다. “전체 사업자들을 달래는 방향으로 통합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방송, 통신의 전체 판을 KT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산업적인 관점에서 관성에 따라 법을 만들면 ‘KT 집중’이 된다”고 꼬집었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통합방송법은 목적과 방향성이 중요한데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방송의 공적 역할이 축소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며 “정부가 방송에 대한 정부의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해 KT 같은 사업자의 규모를 키워주는, 정부가 컨트롤하기 위한 사업자가 사업을 하기에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이 같은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사진=미디어스)
▲ 박상호 공공성TF 연구위원. (사진=미디어스)

전체 로드맵 없이, 또 관련 영향평가를 진행 않고 통합 방송법을 만들면 미디어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상호 공공성TF 연구위원(한국방송협회 연구위원)은 “미래부의 의도는 방송의 공적 역할, 정치적 독립성, 시청자 권익 등 시끄러운 방송철학과 관련된 논의를 제외하고 ‘통합 유료방송법’만을 정비하려는 것”이라며 “방송의 공적 역할에 대한 논의를 회피 또는 고립하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사업자 말만 듣고, 방송에 대한 철학 없이, 졸속으로 진행하는 통합 논의는 결국 미세조정 방식으로 규제를 풀고 조이고 맞추며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민원해소를 위한 규제완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플랫폼 대형화’는 방송시장의 독과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공정경쟁과 공공성의 조건 등 포괄적인 논의를 선행하지 않으면 후과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사진=미디어스)
▲ 신태섭 동의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사진=미디어스)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방송시장을 완전경쟁 시장이 아닌 각축 시장으로 전제하고 소유와 진입, 그리고 편성규제를 짜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방송법은 민원 해결 창구, 사업자들의 ‘정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통합 방송법은 무료보편 서비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만약 정부가 지상파에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 같은) 떡을 하나 준다고 이걸 받으면 공멸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오용수 미래부 방송산업정책과장은 “MB정부 때 통합하지 못한 부분을 뒤따라가는 부분으로 입법기술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시민단체들이 우려하고 제안한 부분들은 이미 논의에서 걸러내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연구반 구성과 지금까지 내용을 공개하라’는 의견에 대해 그는 “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쟁점은)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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