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유가족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을 시작한지도 20일이 됐다. 그런데 ‘세월호 특별법’은 아직도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보수단체들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폄훼하는 것만 간간히 뉴스로 나온다. 특히 새누리당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하면서 특별법도 국정조사도 청문회도 박근혜 정부 뜻대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야당은 시민들의 생각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고, 국회에서 입지는 더 좁아졌다. 이제 남은 것은 여론뿐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시민들을 불러야 했다. 2일 세월호 가족들(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을 초대했다. 이날 밤 광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휴가 광화문으로 가자!’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노래와 편지, 촛불이 이곳을 채웠다.

▲ 2일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가 시작할 때 서울 광화문광장 동쪽으로 무지개가 생겼다. 세월호 참사로 딸 경주를 잃은 유병화씨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뒤 시민들에게 “무지개가 생겼다. 꼭 우리 아이들이 이 자리에 왔다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미디어스.

딸 경주(단원고 2학년10반)를 잃은 유병화씨는 경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엄마는 딸에게 “사랑하는 우리 딸이 태어났을 때, 처음 엄마라고 불렀을 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 내가 학부모가 됐을 때 모든 게 신기했던 기억들이었다”고 썼다. 딸 경주는 엄마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희망이고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런데 지금 경주는 엄마 옆에 없다.

유병화씨는 딸에게 “지금은 너와 함께 한 지난일을 기억하는 것이 일상이 돼 버렸네. 경주야, 엄마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아파도 힘들고 아프지 않을 거야. 엄마가 아프면 경주가 아프잖아. (중략) 경주가 마지막까지 엄마를 불렀는데 그 이유를 엄마는 잘 알고 있다. 반드시 눈물을 닦아줄게. 웃으면서 우리 만나자. 엄마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내 새끼, 너무 너무 사랑해”라고 썼다.

▲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만 명이 가까운 시민이 모였다. 사진=미디어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미류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보다 먼저 지치면 안 된다”며 유가족들을 달랬다. 인권운동가는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함을 이기는 것은 없거든요.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사회가 달려져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은 사람들이 했습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나는 언니들의 시간을 곁눈질하며 배웁니다”라고 썼다.

2일 현재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294명이다. 실종자도 10명이나 남아 있다. 해경은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참사로 이어졌지만 청와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참사 이후에도 검찰과 경찰은 유씨 일가 잡기에만 집중했고 사고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다수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책임이 밝혀지지 않았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결과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이 7월29일부터 31일까지 전국 성인 1016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64%는 “세월호 사고 원인과 책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응답자가 53%로 조사됐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는 2일 밤 8시 반께 끝났다. 만 명이 가까이 모인 시민들이 이날 음악회 마지막 가수인 평화의나무 합창단 노래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법학자들 사이에 일부 이견이 있으나 지난달 28일 전국 법학자 229명은 “국회가 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단식 중인 유가족을 노숙자에 비유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날 음악회에서 <그리운 나무>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한 시인 정희성씨는 “재보궐선거 결과로 세월호 참사를 덮는다면 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구호는 딱 한 가지다. 청와대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움직이라는 요구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청와대여 깨어나라”를 외쳤다.

고 김빛나라(16)양 아빠 김병권씨(세월호 가족대책위 위원장)는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지난번에 여러분께 국민의 가족이 되게 해달라 요청했고, 오늘 다시 방문해주셨다. 여러분들이 있어 우리 가족들은 외롭지 않다”며 고마움을 표한 뒤 “한걸음 더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9일(토)과 휴일인 15일도 시민을 초대할 계획이다.

▲ 음악회 무대 옆에 설치된 노란리본 조형물.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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