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재보선 야권 참패의 후폭풍이 거세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동반사퇴했다. 최고위원들도 동반 사퇴하면서 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고 전당대회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기동민 후보와의 후보단일화에는 성공했지만 나경원 후보에게 패하며, 야권연대 재정비의 고민을 남겼다.

이 일련의 정치적 상황들이 세월호를 잊자는 주장과 인과 관계를 갖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언론들은 야권이 패배했으니 이제 그만 세월호는 잊자고 말하고 있다. MBC는 야당이 패배한 원인을 두고 “세월호 심판론에 대한 여론의 피로도 때문”이라는 명료(!)한 분석을 내놨다. 이제 그만 세월호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영상까지 끄집어내 배치하면서 경제 활성화 방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KBS와 SBS 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르지 않았다.

MBC, 야당 참패…세월호 심판론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 작용

MBC <뉴스데스크>는 31일 7·30재보선 결과를 전하며, 분석과 여야의 분위기 등을 상세히 다뤘다. MBC는 <15곳 중 11곳 승리, 새누리 예상 깨고 ‘압승’…야당 참패> 리포트를 통해 “전국 15개 지역구 가운데 새누리당은 예상을 깨고 11곳을 휩쓸었다”며 “새누리당은 서울 동작을을 비롯해 수원을과 수원병 평택을 김포 다섯 곳에서 승리한 반면 야권은 수원정에서만 한 석을 건졌다”고 전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야권의 초강세지역이던 전남에서도 소선거제가 도입된 88년 이후 처음으로 당선자를 냈다”, “새누리당은 또 지지세력이 두터운 부산과 울산을 지키고, 대전 대덕, 충주, 서산태안 등 충청권 3곳 모두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고는 “반면에 야권은 수도권 한 석 외엔 전통적 텃밭인 광주 광산을과, 나주 화순, 담양 함평 영광 장성을 지키는데 그쳤다”고 덧붙였다.

▲ MBC '뉴스데스크' 7월 31일자 캡처
MBC는 이런 ‘야당의 참패’에 대해 “전략공천에 따른 후유증과 세월호 심판론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MBC는 <재보궐 선거, 결과와 의미는?…심판보다 희망 택했다> 리포트를 통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의 의미’라면서 여당을 선택한 이유를 “야당이 내세운 세월호 심판보다 민생과 미래가 더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세월호 피로도’에 대한 후속 리포트였다.

MBC는 “새누리당은 세월호 정국의 슬픔과 무기력감을 극복하기 위해선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해 경제살리기를 전면에 내세웠다”면서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규제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등 과감한 대책으로 당정 간의 호흡을 맞춘 것도 유권자들의 기대를 높였다“고 전했다. 이어, “(반면)새정치민주연합은 정권 심판론에 집중했다”면서 “그러나 국정조사와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지리한 논쟁, 국민적 슬픔을 정쟁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고 비판했다. MBC는 목진휴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정부에게만 책임을 떠넘긴 야당의 전략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실망감과 피로감을 만들어냈다”는 발언을 함께 배치하기도 했다.

MBC 해당 리포트의 마무리는 “이제는 슬픔을 딛고 더 나은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였다. 이 결론은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대목이다. ‘세월호 보도참사’라고 불리는 지난 5월 7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박상후 전국부장은 “어린 넋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크나큰 슬픔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노와 슬픔을 넘어라"고 주문했던 바 있다. ‘세월호는 잊으라’는 MBC의 입장은 이미 5월부터 였다.

KBS “세월호 심판론 피로도”…SBS “야당도 책임의 한 축인데 심판론만”

이 같은 7·30재보궐 선거의 패배와 관련해 ‘세월호 심판론 피로도’는 KBS와 SBS에서도 등장했다. MBC와의 온도차는 있지만 어조는 분명했다.

KBS <뉴스9>는 <세월호-민생 법안 처리 돌파구…‘경제 활성화 가속’ 기대> 리포트에서 “‘세월호 심판론’을 무리하게 고집한 것도 (야당의)패인으로 지목된다”며 “세월호 정국에 대한 민심의 피로감이 선거로 드러난 상황에서 야당의 입장 변화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보도했다. 물론, 리포트는 “여당이 잘했다기 보다는 야당이 못해서 졌다”는 평가를 덧붙였지만 그 자체로 위험한 리포트이다. 특히, 세월호특별법 관련 야당의 입장변화를 전하며 ‘수사권 포기’를 언급한 점은 논란이 예상된다.

▲ KBS '뉴스9' 31일 리포트 캡처
SBS <8뉴스> 역시 <텃밭마저 외면한 재보선…야당 참패의 원인은?> 리포트에서 “세월호 참사 106일째 치러진 어제(30일) 재보궐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야당의 ‘세월호 심판론’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며 “집권여당만큼 책임이 크지는 않아도, 야당도 정치권의 한 축인데, 반성과 대안 없이 심판만을 거듭 외치는 데 피로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전했다. SBS는 그나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야당의 반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 정도였다.

야권의 7·30재보궐 선거 패배는 다양한 원인이 제기된다. 지상파3사 공히 거론하고 있는 야권의 ‘전략부재’, ‘공천파동’, ‘(정책없는)야권연대’ 등도 모두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세월호 심판론에 대한 피로도’를 끌어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리포트로 배치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현실을 오도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국회에서는 아직도 세월호특별법 논의가 공전되고 있다. 당초 ‘책임을 지겠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세월호 참사 100일, 청와대는 세월호 관련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가 책임을 전가하며 검거를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공권력을 투입했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변사체로 발견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언론인들의 반성이 있었지만 지상파 뉴스의 관심은 이미 팽목항을 떠난지 오래다. “세월호는 그만 잊어야 한다”는 권력의 암묵적 요구에 가장 충실했던 곳이 바로 지상파 뉴스였다.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 7·30재보선에서 국민들이 세월호 심판론에 대한 피로도 때문에 새누리당에게 표를 몰아 준 것이라면 세월호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지상파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일, 지상파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관련해 청와대가 취하고 있는 행태(자료 국회 미제출 등)와 유가족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세월호특별법은 진작 국회에서 처리됐을지 모른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 어떤 문제인지 공론이 훨씬 풍부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뉴스는 줄기차게 유병언만 쫓았고, 정치권의 ‘지리한 공방’에만 포커스를 두었다. 7·30재보궐 선거 야권의 패배를 두고 ‘세월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지상파의 뉴스는 또 다른 '호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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